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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칼럼]Birthday Boy의 향수, 박세종 감독을 만나다   2004-11-29
안시와 시그라프에서 수상을 하면서 우리에게 알려진 Brithday Boy의 감독 박세종씨를 만나보았다.
씨지랜드기자 cgland@cglan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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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체취를 전하고 싶은 작가
Birthday Boy의 향수, 박세종 감독을 만나다.

2003 안시 애니메이션 신인상
Siggraph2004 Electronic Theater 대상수상

지난 여름 프랑스에서 열린 안시(Annecy)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 신인상을 받은 후, 시그라프(SIGGRAPH) 2004에서 단편부문 대상을 받으면서 화제의 애니메이션이 된 ‘축생일(Birthday Boy)’은 코가 약간 묻은 듯한 어린 소년의 웃고 있는 이미지로 많은 사람의 기억 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cgLand는 Birhthday Boy의 작가 박세종 씨를 이메일을 통해 만나보았다.

먼저, 자기소개를 짧게 부탁드립니다.
박: 안녕하세요. 박세종입니다. ^^

각 국제 영화제에서 Birthday Boy이 호주 영화로 소개되는데요, 많은 사람들이 왜 국적이 한국이 아닌지에 대해 궁금해 하고 있습니다. 이유가 뭔가요?
박: 첫째, 저는 호주인 아내, 아들과 함께 시드니에서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 국적은 아직 한국입니다. Birthday Boy이 한국의 이야기이지만, 제가 영화를 만든 곳이 Australian Film Television and Radio School(국립영화학교, 이하 AFTRS)이기 때문에 영화는 호주 영화입니다. 현실적으로 영화의 저작권은 어디든 제작비를 제공한 곳이 갖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한국에 계실 때는 무슨 일을 하셨나요?
박: 저는 7년 전에 시드니로 건너 왔습니다. 그 전에 한국에서는 광고 일러스트 프리랜서였고, 광고 영상 분야에서도 조금 경험이 있습니다.

호주로 건너가신 계기가 있다면 무엇이며, 어떻게 애니메이션을 공부하게 되었습니까?
박: 저와 아내는 11년 전에 만났고, 호주로 건너와서 살기로 결정했습니다. 홍익대학교에서 시각미술(시각디자인)을 공부해서, 호주에 왔을 때는 애니메이션을 공부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애니메이션은 제가 창작활동을 하는데 있어서 주류를 이루는 것 들 중 한 부분이었을 뿐이었습니다. 게다가 AFTRS는 애니메이션 학교가 아닙니다. 저는 제작비 지원을 받을 방법을 찾으면서, AFTRS에 지원하기 전에 2D 애니메틱 스토리 보드(콘티)로 Birthday Boy를 제작하였습니다.
AFTRS는 젊고 재능 있는 영화 제작자들에게 경제적, 기술적, 교육적으로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것보다 상당히 힘든 학교 입니다. 대개 정부가 호주 영화 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자본을 지원합니다.

Birthday Boy에 대한 아이디어는 어떻게 얻게 되었나요?
박: 제가 한국에서 처음 호주로 왔을 때, 아이들이 생일날 많은 선물을 받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보고 이 사회가 얼마나 물질만능의 사회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한국에서의 제 어린 시절의 경험과 너무나도 대조적이었습니다. 어릴 때, 저는 장난감도 없었고, 장난감을 만들면서 놀 수도 없었지요. ‘축생일’은 그런 저의 어린 시절을 반영한 것 입니다.
저는 애니메이션에 거의 미쳐있었는데, 코미디가 난무하고 대개는 해피 엔딩으로 끝나는 상업적인 애니메이션 스타일과는 전혀 다른 어떤 것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인간의 삶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싶었지요. 삶은 항상 즐겁지만도 않고, 행복과 함께 슬픔도 같이 공존합니다. 그래서 저는 어린이와 어른 모두에게 삶의 자취를 보여주려고 했습니다.

왜 6.25당시를 시대상황으로 선택했나요?
박: 제 주위에 한국전쟁을 직접 겪은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6.25는 한국의 가장 최근 역사적 사건이고, 아직도 한국인의 인식 속에 생생히 살아있습니다. 어린 아이의 순수함을 강조하기 위해서 아주 어려운 상황을 표현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한국전쟁 중의 어린 소년의 이야기를 그려내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를 통해서 어린 시절의 순수함과 전쟁시의 삶의 현실을 대조하고 싶었습니다.

‘축생일’을 만들면서 어떤 것이 가장 힘든 점이었습니까?
박: 소프트웨어 를 배우는 것이 가장 어려웠습니다. 3D 애니메이션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습니까?
박: 문제를 해결할 때까지 잠을 자지 않았습니다. 사실상, 관객은 만드는 과정이 얼마나 힘들었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지요. 그들은 영화에서 자신들이 본 것을 기억하고 이야기 할 뿐입니다.

그렇다면 왜 3D를 선택했습니까? 다른 방식은 생각해 본적이 있나요?
박: 네. 먼저 저는 나만의 방식으로 제 아이디어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나의 예술적 비전을 총 동원하여 애니메이션에 있어서의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고자 했지요. 결국 2D는 제작하는데 시간과 인력이 많이 필요해서 3D를 이용하기로 했습니다.
2D는 제작하는 과정이 좀더 복잡하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반면에, 3D는 물론 모델링하고 캐릭터를 설정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기는 하지만, 일단 그것만 준비되면 동화를 할 필요도 없고, 클린업을 하느라고 시간을 들일 필요가 없습니다. 3D는 적은 인원의 사람이 작업하기에 상당히 성취도가 높은 방식입니다.

그렇다면 간단하게 작업 과정과 사용한 툴에 대하여 설명해 주실 수 있습니까?
박: 먼저, 스토리보드(콘티)를 수작업으로 그렸고 스캔을 받아서 애프터 이펙트5로 2D와 3D 애니메이틱으로 만들었습니다. 그 다음에 사물들을 제작하였고, 포토샵과 마야로 텍스터를 작업하고 라이팅을 준 다음 마야로 렌더링을 했습니다. 매트 패인팅도 했는데, 포토샵으로 작업해서 플래임으로 합성했습니다.
주인공 만욱이는 스케치로 먼저 그렸는데, 마무리 작업은 마야에서 모델로 만들었기 때문에 2D와는 조금 다르게 되었습니다. 만욱이와 관련된 모든 텍트쳐는 직접 색을 칠해서 만들었는데, 옷은 컨셉 채색화에서 스캔해서 사용했고, 얼굴은 포토샵에서 채색했습니다.
만욱이는 온전히 키마다 값을 주어서 직접 애니메이션했습니다. 그 어떤 참고용 애니메이션 툴을 사용하지 않았지요. 사실 직접 키 애니메이션을 하면 결과물이 더 좋습니다. 이를 위해서 저는 6살짜리 조카를 몇 일 동안 만욱이와 비슷한 행동을 하게 하여 비디오로 찍고 나서 그 내용을 연구하고 6살 짜리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그 기본을 마음속에 세겼지요. 저는 이 비디오를 이용해서 로토스코프를 하지는 않았고, 기본적인 아이디어를 위해서 자료로 사용했습니다. 예를 들어 만욱이가 코를 훌쩍이고 손으로 코를 닦는 행동은 조카의 행동을 통해서 찾아낸 부분입니다.

주인공 ‘만욱’의 캐릭터는 어떻게 만들었으며, 누군가 모델이 되어 준 사람이 있습니까?
박: 많은 사람들이 만욱이가 귀엽다고 하더군요. 의식적으로 그렇게 디자인했습니다. 영화에는 만욱이의 어린 시절의 순수함과 현재도 끝나지 않은 군사적인 대립 사이의 긴장감이 살아 있습니다. 만욱이를 비현실적이지 않게 하면서 가능한 귀엽게 표현하여 그 긴장감을 유지시킬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아내의 조카를 모델로 삼아서 만욱이의 다양한 움직임을 연구했습니다. 우리들은 주말마다 조카와 함께 보내면서 스토리보드(콘티)상에 있는 움직임을 연기해달라고 요청했고 그 모습을 비디오로 담았지요.
만욱이는 스토리와 어울리는 실사체로 디자인했고, 애니메이션 되기에 보기 좋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실사체와 스타일리쉬한 점을 동시에 갖춘 캐릭터를 만드는 일은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몸과 얼굴의 비율은 실제 아이와는 다르게 스타일리쉬하게 디자인했고, 재질감과 얼굴표정은 실제 사람에게 가능한 현실적인 모습으로 창조했습니다.

영화 제작에 영향을 받은 작가나 감독이 있다면 누구이고, 작품은 어떤 것이 있나요?
박: 저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자랐습니다. 그 애니메이션을 통해 많은 영향을 받았지요. 저의 그림 스타일이나 채색 스타일도 그 영향을 받은 것이 사실입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애니는 ‘천공의 성 라퓨타’와 ‘이웃의 토토로’입니다. 또한 드림웍스의 애니메이션 ‘이집트의 왕자’도 좋아합니다.

국제적으로 유명한 영화제인 안시나 시그라프 드에서 수상을 하였고, 이번에는 국내에서 열린 부천국제학생애니메이션페스티벌에서도 대상을 수상하셨는데, 기분이 어떠신가요?
박: 저는 페스티벌 출품을 위해서 Birthday Boy을 만들지는 않았습니다. 그저 내 꿈을 달성할 수 있는 하나의 단계로 제작을 한 것이지요. 어쨌든, 제 작품을 즐기는 관객을 보니, 정말 기분이 멋졌습니다.

수상 이후, 어떤 점이 달라졌나요? 조금만 말씀해 주시죠.
박: 여행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인터뷰도 많이 했지요. 마치 지금처럼 말입니다. 또, 전세계에서 수 천 통의 이메일이 옵니다. Birthday Boy에 대한 관심이 점점 뜨거워지나 봅니다.


수상 후에 한국으로부터 애니메이션 관련 단체나 회사들이 접촉해 오지는 않았습니까?
박: 사실, 한국으로부터의 접촉은 없었습니다. 대신, 미국, 일본, 영국, 프랑스, 호주에서의 접촉은 점점 많아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미 일본 NHK에서는 두 번이나 방송되었고, 미국과 호주, 그리고 유럽의 몇 개 국에서도 TV로 방영될 예정입니다.

새로운 프로젝트가 있다면 씨지랜드 독자들을 위해 소개를 해 주세요.
박: 현재는 다음 프로젝트에 대한 스토리를 쓰고 있습니다.

학교(AFTRS)를 졸업한 후의 계획은 있습니까?
박: 올해 4월에 이미 졸업을 했습니다. 내년에 제작현장에서 일할 계획이 있기는 하지만, 아직 자세하게 밝히기에는 너무 이른 것 같군요.

마지막으로 씨지랜드 독자 중에서 애니메이션이나 3D를 공부하고 있는 사람들, 영화제 출품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말이 있다면 한 말씀 부탁 드립니다.
박: “계속 꿈을 꾸세요(Don’t stop dreaming)”

“Don’t Stop Dreaming”. 박세종 씨의 이 말이 가슴에 남는다. 꿈을 잃지 않고 그것을 표현하려는 작가정신이야말로, 현재 어려운 우리 애니메이션 계를 위한 진정한 힘이 되어 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끝으로 인터뷰에 응해주고 자료를 보내주신 박세종 씨와 학교 관계자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면서 인터뷰를 마친다.

>> Birthday Boy홈페이지에 가시면 더 많은 정보를 보실 수 있습니다. 방문하기


씨지랜드 조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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