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우리 애니메이션 업계에는 유럽으로부터 하나의 낭보가 전해졌다.
BBC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유럽 유수의 방송그룹 TF1에서 우리 애니메이션 ‘ODD Family(이상한 가족)’의 방영을 확정한 것이다.
프랑스에서만 방영하는 판권료로 TF1이 지불하는 돈은 무려 20억원. ‘원더풀데이즈’ 등 기대작들의 저조한 실적으로 침체되었던 지난해 우리
애니메이션 업계로서는 가뭄에 단 비를 만난 셈이었다.
이제는 'ODD Family'가 본격적인 제작에 들어간다. 이 애니메이션의 제작사인 삼지애니메이션은 지난해 말 더 넓은 곳으로 보금자리를
옮기는 한편 새로 인원을 확충해서 본편 제작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cgLand는 삼지애니메이션(이하 삼지)을 방문해서 유럽진출이라는 쾌거를 이룬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어보았다. 이와 함께 현재 제작을 준비
중인 ‘ODD Family’를 살짝 엿보았다.

한국의 ‘심슨가족’을 만든다
'ODD Family'는 3D 애니메이션 시트콤을 표방하고 있다. 24분(크레딧 3분 포함) 총 26부작으로 8세~12세의 아이들을 기본으로
한 가족용 애니메이션이다. 일단 프랑스의 TF1에서 내년 상반기 방영하기로 결정되었다.
3D 애니메이션에서는 드문 시트콤이란 형식을 택한 데는 여러 가지 제작 및 마케팅적 장점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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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철 기획실장 |
“먼저 시트콤은 효율적으로 제작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세트와 캐릭터가 한정적이어서 26부작이라 하더라도 경제적으로 제작할 수 있습니다.”
김홍철 기획실장의 말이다.
시트콤의 특성상 카메라가 고정된 장면이 많은데 이럴 때는 카메라에 노출된 부분만 키를 잡으면 되기 때문에 제작시간 단축 등 능률적인 작업이
가능해진다는 게 김 실장의 설명이다.
“또한 누구나 볼 수 있습니다. 주 시청층을 10세 전후로 잡고 있지만 시트콤이므로 부모도 볼 수 있습니다. 실질적인 구매력을 갖고 있는
부모가 어린이와 함께 시청을 한다면 이를 패밀리 레스토랑 같은 체인브랜드와 연결함으로써 또 다른 수익을 창출할 수 있죠.”
유럽을 뚫다
삼지애니메이션은 처음부터 외국을 겨냥해서 작품을 만들었다.
“초기부터 해외를 겨냥해 애니메이션을 제작했습니다.” 삼지애니메이션 김수훈 대표는 ‘ODD Family’의 유럽 진출이 결코 우연이 아닌
준비된 것임을 강조했다. 이를 위해 삼지는 초기의 캐릭터 설정부터 시나리오, 주제 등을 국제적인 기준에 맞춰 작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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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훈 대표 |
‘ODD Family’의 데모영상은 2001년 8월 완성이 되었으며 그해 10월 해외에 소개할 계획을 세웠다. 당시 미국은 9.11 테러의
여파로 가지 못했다. 그러나 프랑스 TV영상프로그램 견본시 MIPCOM에서는 뜨거운 반응과 관심을 받았다.
이 반응에 고무를 받은 삼지는 모두 네 차례에 걸쳐 프랑스를 방문했다. MIPCOM, MIPTV 등 견본시에 참가했으며 프랑스의 애니메이션
업체를 순회 방문했다. 자금사정이 여의치 않았지만 빚을 지면서까지 적극적으로 해외에 애니메이션을 알렸다. 그야말로 해외시장에 회사의 운명을
‘올인’한 셈이다.
그 결과 2001년 4월 MIPTV에서 의외의 결과를 얻게 된다. 동시에 네 회사에서 합작 제의가 들어왔다.

투자
여기서 삼지는 어느 회사를 골라야 하는지 하는 행복한 고민에 처하게 된다. 결국 현재 프랑스에서 주가를 올리고 있는 3D 애니메이션 업체와
저울질을 하다가 역사가 있으며 프랑스 방송 쪽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티문애니메이션(Timoon Animation)과 합작사 계약을
체결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잘 한 결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김 대표는 회상했다.
티문애니메이션은 프랑스의 언론재벌인 라가드르(Lagardere) 그룹에 속해있는데, 라가드르 그룹은 특히 ’엘르(Elle)‘, '프리미어(Premier)'
등 출판 및 유통, 미디어, 항공 그룹으로 프랑스 미디어 산업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회사이다.
티문애니메이션은 유럽최대의 민영방송사인 TF1에 20억원의 방송 판권료를 받고 'ODD Family'의 상영을 확정했다. 오히려 이 계약에는
TF1 측에서 적극적이었다고 한다. TF1은 사업에 유럽지역 배급사로 직접 참여하겠다는 의사까지 밝혔다. 유럽시장 진출의 거점이 생긴 것이다.
삼지로서는 정말 든든한 파트너를 얻은 셈이다.

티문은 이와 함께 CNC라는 프랑스 국립영화센터와 민간으로부터 애니메이션 총 투자금의 70%에 해당하는 54억 원을 성공적으로 투자받았다.
“정작 걸림돌은 우리나라에서의 투자였습니다.” 김홍철 기획실장은 지난날의 고충을 털어놓았다. 프랑스에서의 투자는 일정에 맞춰 진행 중이었는데
정작 한국에서의 30% 투자(약 23억 원)는 투자자들의 냉랭한 시선으로 난항을 겪었다고 한다.
우선 애니메이션 제작에 대해 많은 창투사들이 수익성에 의심을 갖고 있었으며, 처음으로 하는 프랑스와의 합작이 부담으로 작용했다. 자칫했으면
전액을 프랑스 측으로부터 펀딩을 받는 상황에 처할 뻔도 했다. 다행히 디지털영상콘텐츠전문투자조합으로부터 투자를 받았다.
디지털영상콘텐츠전문투자조합은 정통부와 문화부에서 각각 125억 원씩, 그리고 민간 부분에서 250억 원, 총 500억원을 조성해서 컴퓨터
그래픽 기반의 애니메이션 영화 제작에만 투자하는 투자기관으로 소빅창업투자에서 관리를 하고 있다.
합작

'ODD Family'는 합작이란 형태로 만들어지고 있다. 자체 기획으로 세계라는 벽을 뛰어넘기에는 힘든 현실 속에서 합작이란 우리 애니메이션
업계의 좋은 대안이라고 김수훈 대표는 생각한다.
“시장의 흐름 자체가 합작으로 흘러가는 추세입니다. 전 세계의 70%를 차지하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강세로 현재 캐나다와 독일, 프랑스
등 애니메이션 강국들이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돌파구로 합작이란 형태를 최근 찾고 있는 것이죠.”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나라의 입지조건은 유럽 애니메이션업체에게는 좋은 합작 파트너로 떠오르고 있다.
“일본은 합작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자체적인 시장이 있으니까요. 이에 반해 한국은 자체시장이 좁지요. 그런 반면 기술력은 있거든요.
그래서 유럽업체와의 합작은 우리에게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정서면에서 일본보다는 우리가 유럽과 잘 맞는 부분도 있습니다.”
'ODD Family'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 탄생된 신데렐라다.

SPM-국제 공조에서 효율적으로 사용
삼지는 삼지 프로젝트 매니저(SPM)라는 홈페이지 형식의 자체 관리 시스템을 갖고 있다. 'ODD Family"는 프랑스로부터
컨셉과 시나리오, 기본적인 키 포즈 애니메이션을 넘겨받아 작업하는 형식으로 작업을 하는데, 여기에 SPM은 큰 역할을 한다. 작업의 각
공정이 한 눈에 파악되도록 깔끔하고 체계적으로 메뉴가 구성되어있기 때문에, 내부에서의 컨펌(confirm) 과정은 물론 프랑스 측과의 업무협조에도
효율적으로 쓰이고 있다.
클릭하시면 큰 이미지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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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M(Samg Project Manager) |
SPM을 사용한 작업순서는 다음과 같다. 먼저 프랑스 측으로부터 받은 콘티를 올려놓는다., 그 아래 레이아웃을 잡은 러프한 동영상이 위치한다.
그 다음 애니매틱이 있으며 자신이 작업한 데이터가 있다. 그리고 작업에 대한 멘트가 있다.
애니메이션의 경우, 1차는 애니메이션 팀장이 컨펌을 하거나 작업자에게 되돌린다. 넘어온 데이터는 2차로 조감독이, 3차로 감독인 김수훈
대표가 각각 컨펌을 하게 된다. 이것이 SPM 안에서 간편하게 이루어진다.
삼지가 원하는 인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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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김병우 제작실장, 김영진 모델링 팀장, 김웅주 애니메이션 팀장 |
삼지에서 근무하는 팀장급 실무자들에게 어떤 사람을 원하는지 물어보았다.
“일 잘하는 독불장군보다 회사에 융합하는 사람이 더 좋습니다.” 김병우 제작실장은 인성이라는 부분을 강조한다. “한 편 끝날 때까지 계속
얼굴을 마주봐야 하는 사람이니까요.. 애니메이션 작업이라는 게 개인보다는 팀이 중요합니다.”
“실력 있는 사람보다는 신입이라도 일단 감각이 있는 사람이 좋습니다.” 김웅주 애니메이션 팀장의 말이다. 김 팀장이 포트폴리오에서 중점적으로
보는 것은 단 네 가지! 기본 걷기와 뛰기, 뚱뚱한 사람의 걷기와 뛰기라고 한다. 김 팀장은 공동으로 작업한 포트폴리오의 경우 그리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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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지 신입사원의 애니메이션 데모 |
모델링과 맵핑의 경우 김영진 모델링 팀장은 모델링에서는 기본적인 비례를 본다고 한다. “카툰스타일이어도 기본적인 비례는 살아있습니다.” 맵핑은 세부적인 부분도 놓치지 않는 꼼꼼함을 본다고 한다.
삼지는 현재 애니메이터들을 중심으로 각 파트에 많은 인원을 충원하고 있는 중이다.

작업과 신입사원 교육을 병행
삼지는 'ODD Family' 제작에 온 정성을 쏟을 예정이다. “순 제작비로 총 43억여 원이 투여될 것입니다.” 우리 측 자금의 대부분과 프랑스 측에서 넘어오는 자금 일부가 실 제작비로 사용된다. 이를 기반으로 삼지는 우리나라 기존 애니메이션 업계 작업인원의 두 배를 투여해서 애니메이션 품질을 한층 높일 계획이다.

애니메이션만 잘 만든다면 유럽 다른 나라에 수출하는 것은 따 놓은 당상이라는 게 삼지 측의 예상이다. 이 작품은 먼저 내년인 2005년
상반기 프랑스의 TF1에서 상영되기로 확정되어있는데, 이 TF1이 ‘ODD Family'의 유럽 배급을 자처했기 때문이다. TF1은 유럽
내에 영향력 있는 방송국이다.
현재 삼지는 ‘ODD Family' 1편을 작업 중이며, 이와 함께 새로 회사에 입사한 작업자들과의 호흡을 맞추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신입사원들을 대상으로는 ’삼지 트레이닝 가이드‘라는 프로그램이 주어지고 이 스케줄에 따라 점차 삼지의 시스템에 동화를 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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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지의 신입사원 교육 프로그램 |
앞으로
“1년에 시리즈 한 편을 만드는, 창작 애니메이션 회사로 자리 잡고 싶습니다.” 규모보다는 엄선된 작품 위주로 내실 있게 작업하는 애니메이션
제작사로 만들고 싶다는 게 삼지애니메이션 김수훈 대표의 포부이다.
그동안 우리는 많은 애니메이션 프로젝트들이 기획되어졌으나 제대로 빛도 못 본채 스러져 가는 것을 목격하기도 했다. 또한 제작된 많은 애니메이션들이
세계라는 장벽을 극복하지 못하고 국내에서만 머무르는 상황들을 안타까이 지켜보기도 했다.
이제는 새로운 방식으로 세계 시장을 공략한 삼지애니메이션의 ‘ODD Family' 프로젝트에 다시 한 번 희망을 걸고 싶다. ‘ODD
Family'와 같이 국제적으로 방영되는 우리나라 작품들의 성공으로 세계가 우리나라 애니메이션을 주목하게 되는 그날이 하루빨리 다가오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