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the Forest'는 두 사람의 의기투합으로 시작되었다.
2002년 10월 드림웍스에서 ‘신밧드: 7대양의 전설’ 작업을 하던 장욱상(현 중앙대 교수)과 김재홍(현 기어CGI 감독)이 그들이다.
이들은 뭔가 자신들의 작품을 만들자는 결심을 하게 된다.
“재홍 씨는 프리 프로덕션 일과 애니메이션 제작에 도전적인 욕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저도 자기 작품을 만들고자하는 욕심이 있었구요..”
장욱상은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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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
드림웍스에서 근무하던 여러 한국사람 가운데 장욱상, 김재홍은 리처드 김이라는 선배와 삼총사로 뭉쳐 다녔다. 그러던 가운데 장욱상은 ‘신밧드’
작업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갈 결심을 하게 된다. 또한 김재홍은 ‘신밧드’를 마지막으로 드림웍스와 계약이 끝나게 되었다. 이 둘은 헤어질
운명.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그냥 헤어지기 아깝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장욱상은 김재홍에게 뭔가 간단한 거라도 같이 만들어 남기자는
제안을 한다. 당시 만들고자 한 단편은 15초짜리. 이 15초짜리가 15개월 동안 6명 이상의 인원이 참여해서 완성시킨 5분짜리 애니메이션으로
바뀔 줄은 당시 누구도 생각지 못했다.
그 다음 해인 2003년 3월 장욱상은 드림웍스를 그만 두고, 자신의 집을 작업장으로 탈바꿈시켰다. 프리랜서 일을 마친 김재홍과, 의상디자인을
전공한 김혜진(장욱상의 부인), 그리고 LA에서 영화를 전공하면서 항상 동고동락하던 장욱상의 친구 박석원이 본격적으로 합류하게 됨으로써
작업은 본 궤도에 오르게 된다.

미국에서의 작업
진용이 갖추어진 2003년 3월, 이들에게는 거의 끝나가고 있는 모델링과 거의 완성된 스토리보드가 손에 쥐어져 있었다. 이때부터 이들
넷은 장욱상이 중앙대 교수로 결정되어 한국으로 귀국하기 전까지, 4개월에 걸친 고되지만 행복한 작업을 시작한다.
장욱상은 3D CG에 관련된 부분을, 김재홍은 캐릭터 디자인과 캐릭터 애니메이션 디렉팅을, 박석원은 영화연출과 카메라를, 김혜진은 케릭터
애니메이션을 담당했다.
“서로에게서 많이 배웠습니다.” 특히, 김혜진의 애니메이션 실력은 의상 대학원에서 쌓은 인체에 대한 이해와 김재홍의 적절한 지도로 아주
빠르게 향상되었고, 결국 주인공 꼬마의 동작을 거의 맡아서 하게 될 정도로 일취월장하게 되었다고 장욱상은 설명했다.

이들은 매일 아침 10시부터 새벽 12시까지 이 프로젝트에 매달리게 된다. 단편 애니메이션을 여럿이서 만든다는 게 의욕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곧바로 “의욕만으로 됐다”고 장욱상은 답변했다.
“정말 후회 없이 만들었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그동안 메이저 회사에서 경험했던 공부들을 한번 정리하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뭔가 자신의 작품을 남기고 싶다는 의욕 때문에 적극적이었다고 장욱상은 설명했다. “바로바로 결과가 나오니까 서로 신기해하며
기뻐하면서 작업했습니다.”
미국에서의 행복했던 작업시간은 흘러가고 어느덧 장욱상 부부가 귀국할 시간이 다가왔다. 이때까지의 작업 공정은 대략 70% 정도. 박석원과
김재홍은 남은 CG작업을 장욱상에게 부탁했다. 박석원은 미국에서 편집과 후반작업을 책임지기로 했다.


한국에서의 작업
중앙대학교 3D 전임교수가 된 장욱상은 함께 작업할 것을 자원한 대학원 학생 두 명과 함께 후반작업에 들어갔다.
라이팅은 실무 경력이 많은 이재민, 이펙트는 마야전문학원 ‘마피야’ 강사인 최동혁이 각각 맡았다. 김혜진은 남은 30%의 모든 케릭터
애니메이션을 진행시켜 나갔다.
중앙대에서 합류한 이재민과 최동혁은 매우 의욕적으로 라이팅 공부와 합성, 그리고 특수효과를 공부하면서 작품에 적용해 나갔다고 장욱상은
평가했다. 거기에 더해 인터넷을 통해 라이팅의 진행과 각각의 샷을 점검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처음 라이팅을 할 때는 모두들 힘들어했고, 어려워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매우 뛰어난 퀄리티를 만들어 나갔습니다.” 3개월이 지난 시점부터는
작업에 대해 언급할 게 없을 정도로 이들의 실력이 올라갔다고 장욱상은 설명했다.
그리고 2004년 2월 말, 작업은 마침표를 찍게 된다.
언제나 그렇듯이 항상 다 만들고 나면 작품의 단점이 커 보이는 법. 그래도 한번 작품을 만들어 본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천지차이라고
장욱상은 강조한다. “지금 보면 부끄러운 부분도 눈에 띄지만, 한번 작업을 완성해 봄으로써 많이 성장했음을 느꼈습니다. 무엇보다도 작품을
이해하는 눈이 많이 늘었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작업했나
In the Forest는 샷이 90개가 넘는다. 라이팅과 렌더링은 장욱상의 전문 분야이므로 특별히 신경을 썼다.
“모든 이미지의 요소들은 따로따로 라이팅과 렌더링이 되었습니다. 특히 늑대의 털과 수많은 나무들이 있는 배경은 작업이 매우 까다로웠고,
렌더링 역시 매우 힘들었습니다.” 장욱상은 작업의 어려움을 이렇게 토로했다.

라이팅은 매우 간단한 설치만으로 진행되었다. 기본적인 키(key) 조명과 필(fill) 조명을 썼고 (보통 한샷 당 3~4개의 조명),
합성을 통해 모든 이미지들이 하나로 통일되도록 조정했다.
특히 꼬마의 경우, 앰비언트 어클루젼(Ambient Occlusion)을 이용한 쉐이더를 통해 글로벌 일루미네이션의 느낌을 살릴 수 있었다.
(이와 관련된 사항은 작업에 참여했던 이재민 씨의 글에서 자세히 설명된다)
사운드와 목소리 더빙은 미국에 있는 박석원이 담당했다. 일종의 음악 길드 협회를 통해 지원을 받았는데, 돈이 지급되지 않음에도 많은 지원자가
사운드와 음악을 맡겠다고 해 놀랐다고 한다. 박석원은 지원자들 가운데 고른 두 명의 미국인과 사운드, 음악, 편집, 목소리 캐스팅 작업을
처리했다.

그 이후
In the Forest를 작업자들은 인생의 전환점으로 생각한다.
장욱상은 이 작품이 14년간의 CG 인생을 정리하는 계기였으며, 한국에 돌아와서는 제자들과 호흡을 맞추면서 자신의 노하우를 전수하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박석원은 이 작품을 데모로 제출한 다음 픽사(PIXAR)에 레이아웃 테크니컬 디렉터(Layout Technical Director)로
입사가 확정되었다. 6월 첫 출근을 손꼽아 기다리는 박석원은 현재 졸업 작품에 전념하고 있다.
김재홍은 지난 해 10월 기어씨지아이에서 기획 중인 X-9: The Booster Boy의 감독으로 선임되어 현재 작품제작을 진행하고
있다. 김혜진은 서울애니메이션센터에서 주최하는 만화창작 과정을 통한 공부를 통해 만화 콘텐츠 개발과 케릭터 애니메이션이라는 두개의 산을
정복하고 있다.

한국에서 작업에 참여한 대학원생, 이재민과 최동혁은 자신의 전문성을 조명과 이펙트에 두고, 현재 진행되고 있는 학교 프로젝트에서 중요한
역할들을 수행하고 있다.
In the Forest는 어떠한 금전적 이익도 상도 기대하지 않고 단지 자신들의 역량과 애니메이션에 대한 열정을 확인하기 위해 만들어진
작품이다. 그렇다고 혼자만 즐기려고 만든 것도 아니다. 장욱상은 이 작품에 대한 외부의 반응을 보고 싶어 했다.
곧 세계 4대 애니메이션 페스티벌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는 자그레브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 희소식이
들려왔다. 격년제로 열리는 이 페스티벌의 공식 경쟁부문(Grand Competition)에 In the Forest가 또 다른 한국 작품
‘인생(김준기)’과 나란히 지명되었다. 6월에 열리는 이 페스티벌에서 더 좋은 소식이 들려올 수 있을지 기대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