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 테일러'는 게임계에서 입신의 경지에 오른 개발자는 아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몰라도 그는 지금까지 스포츠 장르의 개발에 투신해 왔던, 2인자의 위치에서 맴돌던 인물인데. '케이브독 엔터테인먼트'에 입사해서 '토탈 어나이얼레이션 시리즈'를 이단격 작품으로 그의 게모그래피에 올린 후 그 입지의 첫 발판을 굳힌 '크리스 테일러'가 두번째로 선택한 작품은 '개스 파워드 게임즈'라는 새 둥지에서 계획된 '던전 시즈'였다.

순수 개발 기간만 4년여에 달하고 '시에라 온라인'에서 다년간의 경력을 쌓은 바 있는 정평있는 개발진들과 함께 '3차원 롤플레잉'이라는 아이템에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던 '크리스 테일러'가 달라붙어 탄생한 '던전시즈'는 ' 윈도우즈'와 '오피스'라는 대표적인 소프트웨어를 생산해내는 세계 굴지의 기업, MS가 유통한다는 소식과 더불어 사전에 공개된 작품의 뛰어난 퀄리티가 담긴 스크린샷 한장만으로도 많은 이들의 기대를 받아왔던 기대작 중 하나였다.

GPG의 개발진들, 다들 화려한 경력을 갖추고 있다.

2000년 4월의 Fanstock에서의 크리스 테일러

하지만 막상 뚜껑이 열린 '던전시즈'의 모습은 마치 이름없는 마이너 계열의 개발자가 게이머들에게 교본 삼아 보여주려는 듯한 의미가 담긴 한편의 교습서 모습을 하고 있다. 물론 ''던전시즈'는 완벽하게 그 형태를 갖춘 하나의 독립적인 작품임엔 틀림 없다. 하지만 그 무게감은 생각보다 비교적 덜한 편이고 싱글 플레이로 존재하고 있는 시나리오 역시 그다지 주목할만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 못하다.

스토리와 관련된 일련의 퀘스트들이 인간적인 면모, 특히 캐릭터와 캐릭터가 주고받는 다이얼로그에서 진하게 드러나고 있지만 이러한 요소가 오직 살육전으로 포장되어 있는 스토리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경우는 많지 않다. 게다가 스토리의 후반부에 접어들어서는 개발팀에 의해서 의도된 것인지 아니면 밸런스 조율의 실패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몰라도 6장부터는 스토리가 다소 급진적으로 흘러가는 분위기가 없지않아 있으며 최근 PC 게임 장르의 시류라 불려지는 비주얼적인 면에서도 큰 인상을 남기지는 못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있다. 엔딩이라는, 작품을 마치고 게이머가 잠시나마 얻을 수 있는 감흥까지도 '던전시즈'는 애써 외면하고 있다.

이렇게만 놓고 보면 '던전시즈'는 3차원 그래픽 엔진이라는 먹기좋고 보기좋은 탈을 뒤집어 쓴 광대에 불과 할지도 모르겠지만 이 작품의 의의는 게이머와 아마추어 MOD 개발자들이 '시즈 에디터'와 '던전시즈'를 이용해서 이러이러한 게임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엿 볼 수 있는 충분하면서도 훌륭한 예제를 실제로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것이다. 개발자들 역시 그런 부분에 있어서 역점을 두고 제작에 임했다는 생각을 해본다.

스토리 라인이나 시스템은 기존에 경험했던 것이다

볼만한 장면은 많지만 뭔가 허전한 것은 사실

실제로 그간 '시즈 에디터'와 관련된 질문에서 '크리스 테일러'가 답변을 통해 공개했던 여러가지 기능들이 작품의 싱글 플레이를 비롯한 멀티플레이에서 여실하게 드러나고 있다. 이를 간단하게 설명한다면 일종의 룰과 틀인데 갖가지 기상천외한 효과부터 해서 각 지방에 걸맞는 지형구조, 이에 따라서 표현되는 평지부터 산맥까지 다양한 지형이 나타내는 고저차의 모습은 '시즈 에디터'가 대략 어느 정도의 성능을 갖추고 있는 개발자 급의 툴인지를 여실히 말해준다.

물론 시스템적으로도 그가 제창했던 거대한 세계의 로딩 문제 역시 완벽하게 해결되어 있고 그 외의 기타 부수적인 인터페이스나 게임의 시스템 역시 그대로 재현되어 있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시즈 에디터'라 명명된 툴의 기능에 의해서 일목요연하게 정리되고 완성되었다는 점은 충분히 놀랍다고 보아도 부족함이 없는 GPG 만의 대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보기만해도 정말 괴물같은 기능을 갖춘 것 같다.

매사 시즈 에디터의 장점을 역설한 크리스 테일러

이런 확신을 갖은 것은 후반부에서 등장하는 고블린 동굴에서의 모험과 지형의 고저차가 표현되는 지역과 몬스터들이 등장하는 그 시간대의 타이밍 부분이었다. 이곳에서 크리스 테일러는 게이머들에게 기가막한 블랙유머 한방을 날리는데 고블린들이 그 시대의 세계관과 전혀맞지 않을 것 같은 최첨단(?) 무기로 무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 두고 시즈 에디터를 가지고도 SF 세계관을 표현할 수 있다는 개발팀만의 무언의 항변이라 생각했다. 지형의 고저차 부분은 정말 입이 벌어질 수 밖에 없는 3차원 그래픽 엔진의 최고점을 보여주고 있다. 현재 개발중인 여타 롤플레잉 기대작들보다 한발짝 더 앞서서 개발된 '던전 시즈'는 완전한 3차원 그래픽 엔진을 도입시킨 롤플레잉이라는 초년생 티라고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완벽한 모습이다. 여기에 고저차라는 지형의 높낮이와 더불어 특이지형에서 도발적으로 게이머에게 대응하는 몬스터들의 모습이 어우러져 '던전시즈'는 "게이머가 정말 전투를 벌이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느껴질 수 있는 최상의 감각적인 영상미를 선보인다. 특히 레벨 디자이너의 다년간의 경력이 묻어나는 다양한 주변환경과 소재를 살린 각 장소의 구현력은 작품의 성격이나 앞으로 MOD 개발을 앞두고 있는 아마추어 개발자들에게 보다 많은 창작의 소재와 기회를 전달해 준다 볼 수 있으며 이를 기반으로 '던전 시즈'보다 더 좋은 작품이 나오지 말라는 법도 없을 것이다. 우리는 이미 '하프 라이프'를 모체로 해서 MOD계에 새로운 도전의 기회를 준 '카운터 스트라이크'의 약진을 보지 않았는가.

GPG가 게이머들에게 던진 문제의 장면 중 하나

지형의 고저차와 몬스터가 융합된 모습. 가히 예술

지독하게 그간 강조해왔던 그만의 MOD 커뮤니티를 향한 애정에서의 발로로 '던전 시즈'가 완성되었고 '던전 시즈'와 '시즈 에디터'를 통해서 맘껏 자신만의 세계관을 펼쳐보라는 개발자의 자부심 내지 포용력이 담겨있는 '크리스 테일러'의 만용에 가까운 발언에 대한 결과는 일단 성공적이라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크리스 테일러'의 기대에 부응이라도 하듯이 현재 인터넷에서 진을 치고 있던 수 많은 MOD 개발자들, 특히 '던전 시즈'의 개발 소식때부터 MOD 개발을 선언했던 개발자들이 MOD와 관련된 다양한 의견을 비롯해서 함께 작업을 공유 할 수 있는 아마추어 개발팀원을 모집, 하루빨리 '던전 시즈'를 기반으로 완전히 새로운 작품을 개발해 내겠다는 포부를 밝히고 있다.

심지어는 MOD 개발자들이 서로의 정보와 노하우를 쉽게 공유하기 위해 개발자 포럼까지 생겨난 상태이며 이미 MOD로 개발될 예정인 작품들의 라인업도 대충 그 선이 잡힌 상태이다. 물론 '울티마' 나 '신디게이트'와 같은 굵직한 과거 한 시대를 풍미했던 작품들을 복원한다는 작업까지도 알려진 상태여서 여간한 게이머가 아니고서는 '던전 시즈'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없을거라 생각한다.

던전 시즈' MOD 관련 게이머들의 관심은 해외에서는 대단한 수준이다. 아래 사진은 완성전부터 '던전 시즈'를 가지고 '오리진 시스템즈'의 '울티마 6: 그릇된 예언자'를 만들어내겠다고 공언한 MOD 팀의 홈페이지이다.

그리고 또 다른 아래 사진은 '던전 시즈' 관련 MOD를 제작하는 아마추어 개발자들이 서로간의 의견 및 노하우를 교환하기 위해 따로 준비한 개발자 포럼이다. 양측을 비롯해서 알려지지 않은 MOD 팀만해도 엄청난 수를 자랑하고 있다.

'던전 시즈'의 게임성을 의심하고 있는 게이머가 있다면 필자는 한번 그런 우려감은 한켠으로 접어두시고 작품을 즐겨보시라 말씀드리고 싶다. 앞으로 등장할 MOD에 주목할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이라 것에 중점을 두고 설명은 했지만 이 작품이 보여주는 그래픽이나 시시각각으로 주변상황과 구조물에 따라서 변하는 사운드 효과, 게임의 전반적인 시스템은 지금까지 등장했던 어떤 작품들에도 뒤지지 않은 퀄리티를 보여주고 있다.

멀티플레이 모드 역시 괜찮은 편이고 앞으로 다달이 한번씩 멀티 플레이를 위한 시나리오를 공개할 것이라는 GPG의 발표가 있었던 만큼 본 작품의 생명력은 그다지 짧지않을 것이라 자부한다. 단 캐릭터의 파일이 하드에 저장되는 방식 때문에 해킹 문제가 거론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긴 하지만 최근들어 게이머들의 자정운동이 지속되어 오고 있는만큼 그다지 우려할만한 점은 아니라 생각된다.

실제로 이것은 모두 게이머들이 경험했던 요소들이지만 기존에 제시되었던 기반에서 더 앞으로 전진하지 않고 이것을 더욱 더 담금질해서 탄탄한 구성으로 재생 시켜낸 점을 필자는 높게 산다. 또한 앞으로 등장할 MOD만을 지켜본다 해도 (울티마 6를 복원한다는 계획은 정말 대단한 수준이다. 현재 '던전 시즈'를 모체로 MOD를 개발하는 팀중에서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을 정도) '던전 시즈'는 충분히 구매할 가치가 있다.

미지의 세계로 막 첫발을 내닌 던전시즈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담글까? 매너있게 하면 된다

MS라는 둥지에서 크리스 테일러는 마이너 개발자로서의 모든 모습을 게이머들에게 보여주었고 앞으로 남은 것은 올 5월 초에 공개될 예정인 '시즈 에디터'만 남았다. '던전 시즈'라는 첫 화살이 제대로 골대에 박힌 현 상황에서 쐐기 골의 포문을 여는 역할을 '시즈 에디터'가 충실히 해낼 수 있을지가 후세에 게이머들이 '던전 시즈'를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척도가 될 것이라 예상한다.

독립된 작품으로서의 능력은 그다지 눈여겨 볼만은 못하지만 앞으로 아마추어 게이머들이 '던전 시즈'를 어떤 모습으로 자유자재로 변환시켜서 '던전 시즈'를 구입하고 추종하는 게이머들을 즐겁게 해줄지 기대가 간다. 동시에 게이머들이 예측할 수 없는 곳으로 얌체공처럼 튀어나갈 '크리스 테일러'의 차후 행보에도 한번 관심을 줄만하지 않겠는가?

출처-gamezone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