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나날이 발전하고 응용 기술이 다양화되는 현실을 보고 있으면 눈이 부시다는 표현이 절로 나온다. 2002년 6월에 있었던 사건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월드컵 16강전에서 이탈리아와 극적인 골든골 역전승일 것이다. 심판 판정이 어쩌구 저쩌구 말이 많지만 스포츠라는 것이 일단 이기고 봐야 하는 것 아닌가. 일단 스포츠 이야기는 각설하고 월드컵과 버금가는, 경쟁에서 많이 딸리긴 하지만 6월에 있었던 또 하나의 사건은 바로 6. 13 동시지방선거이다. 이런 역사적인 현장 속에 빠져서는 안될 요소 중 하나가 바로 컴퓨터 그래픽이다.

TV화면에 그래픽이 더해져 현장속으로

과거에는 경기를 보고 있으면 하단에 각팀의 파울 숫자, 골, 프리킥 등의 팀 전력 등을 기록한 수치에 약간 멋을 부린 표현이 전부였지만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축구 경기의 모습은 각 팀이 중앙으로 많이 공격해 들어오는지, 측면으로 많이 공격하는지, 프리킥 거리는 얼마인지, 누구에게 어시스트되서 누가 골을 넣었는지… 자세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젠 ‘블루 스크린’이나 ‘그린 스크린’을 이용한 영상 테크닉이 보편화 되었지만… 불과 5~6년 전만 하더라도 특수한 기술 가운데 하나였다. 현재는 크로마키 기술을 이용하여 색상이 ‘블루’이건 ‘그린’이건 상관 없이 색을 추출해 낼 수 있지만…

그럼 다시 월드컵과 선거 이야기로 돌아가서, 지금 월드컵 축구 중계를 보면 프리킥을 할 때 거리를 그라운드에 표현하기도 하고 축구 경기장 스탠드 한가운데에 전광판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제부터 방송 3사의 첨단 그래픽의 실체를 살펴보자.

KBS, MBC, SBS를 비롯하여 월드컵 축구를 중계하는 전세계 방송사는 국제축구연맹(FIFA)에서 독점 중계권을 부여받은 HBS(Host Broadcast Service)로부터 똑 같은 화면을 제공받아 시청자가 있는 안방까지 재 송출한다. 똑 같은 이름의 ‘초코파이’라도 회사가 다르면 맛도 다른법. 재송출 하는 과정에서 각 방송사는 그래픽 화면과 캐스터의 화술 등, 그리고 화면을 좀더 생생하게 전달하려는 요소들을 삽입하여 시청자의 눈을 잡기 위해 있는 기술 없는 기술을 모두 동원한다.

먼저 시청률이 가장 높다고 하는 MBC의 기술부터 살펴보자. MBC는 유럽 프리미어 리그에 각종 데이터를 제공하는 OPTA사와 제휴하여 실시간으로 경기장의 데이터를 분석해 그래픽으로 제공하고 있다. OPTA사와 제휴하여 MBC에서 제공하는 ‘라이브 경기분석 시스템’이 처음 개발될 당시에는 방송 시청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선수 개개인의 데이터를 분석하여 체계적인 정보를 제공하여 축구의 과학화를 실현하기 위해 만들어진 시스템이라고 한다.

OPTA사에서 경기 데이터를 분석하는 방법은 영국에서 파견된 전문 기록 요원들이 현장에서 경기를 보며 초 단위로 기록한 데이터를 인터넷을 통해 주조정실에 전달하면 여기서 경기의 데이터를 그래픽으로 가공하여 서비스하고 있다. 우리가 보는 현란한 그래픽 뒤에서 기록 요원들이 일일이 손으로 기록한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두 번째로 시청률이 높은 SBS는 국내 벤처사 SDB(Soccer Data Bank)와 손을 잡고 공동으로 시스템을 개발했다. SBS에서 보여주는 월드컵 그래픽의 제작방법은 MBC와 비슷하지만 기록 요원들이 기록하는 곳이 현장이 아니라 TV 화면을 보고 데이터를 입력한다. 따라서 TV에 잡히지 않은 사실(물론 대부분 주요 장면은 TV 화면으로 볼 수 있지만)을 확인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국내 벤처 업체의 기술로 만들어진 그래픽이기에 더 한국적이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KBS는 MBC나 SBS보다는 조금 늦게 출발했지만 그래픽의 퀄리티 면에서는 떨어지지 않는다. 주로 ‘버추얼 이미지’를 활용하는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버추얼 이미지는 프리킥을 할 때 15m, 23m 등으로 골대와 떨어진 거리에 동그랗게 선을 그려서 기본적인 정보를 전달하는 유용한 수단이다.

그림은 게임의 한 장면

선거 개표 방송에도 그래픽은 필수

그럼 또 다른 TV속 그래픽 활용 사례로 선거 방송 장면에 활용된 그래픽을 간단히 알아보자. 방송 3사는 선거에도 그래픽을 활용했는데 그 방식은 모두 동일하다. 버추얼 스튜디오를 이용하여 지루해질 수 있는 개표현황 화면을 다이나믹하게 연출하려고 노력했다. 버추얼 스튜디오 기술은 앵커가 진행할 입체 공간을 3D 애니메이션으로 미리 제작하고 화면속에서 도표나 차트를 자유롭게 움직이면서 여러 지역의 개표현황을 동시에, 다이나믹하게 시청자에 보여주기 위해서 제작된 가상의 공간이다.

버추얼 스튜디오는 몇 년전에 일요일 자정이 넘어서 진행하던 ‘뮤직타워’(제목이 확실한지는 모르겠슴)라는 전문 음악 프로그램에 활용된 기술에서 약간 더 진화된 모양의 그래픽이다. 이 프로그램은 버추얼 스튜디오를 도입해서 시청률이 낮은 밤시간에 그냥 저냥 뮤직 비디오만 보여주는 그런 프로그램과는 확실히 차별화할 수 있었다.

마치며

이제는 스포츠 경기나 선거 뿐만 아니라 건축 시뮬레이션이나 자동차 운전 등의 여러 분야에서 컴퓨터 그래픽이 많이 사용되고 있지만 아직도 우리의 3D 시장이 그렇게 호황이라고는 볼 수 없다. 안시 애니영화제 대상까지 수상한 경력을 자랑하는 우리나라의 그래픽 기술력으로 한국의 3D 그래픽 기술도 세계 우승을 향해 발전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