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이야기’는 재평가 중(?), 성공요인을 분석한다!

마리이야기의 후반작업과 유명 영화 배우들의 목소리 출연이 화제가 되었던 것이 벌써 1년이나 지났다. 마리이야기는 지난해 겨울에 개봉했지만 개봉기간이 그리 길지 않았다.

마리이야기 포스터

 

마리이야기가 개봉한지 반년이나 지난 지금… 이성강 감독은 안시 국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http://www.annecy.org) 그랑프리를 수상했다. 이 사건은 실로 위대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성강 감독의 수상 소식은 월드컵 환호와 칸 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한 취화선의 임권택 감독의 빛에 파묻혀 그렇게 이슈가 되고 있지는 않다.

안시 국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 로고

 

요즘 ‘마리이야기’라는 애니메이션을 재평가하는 뉴스나 글이 많이 눈에 보인다. 개봉 당시에는 뭐가 부족했길래… 이제 와서 이 법석인지 당최 이해가 가지 않는다. 마리이야기도 문전 처리가 미숙했을까? 아니면 히딩크가 없어서 그랬을까… 그러면 마리이야기를 다시 보지 말고, 처음 보는 자세로… 밖에서 먼저 알아주기 전에 내 자식은 집안에서부터 챙길 수 있도록… 마리이야기를 꼼꼼히 뜯어보자.

 

우리 애니메이션 가운데 성공한 작품을 꼽으라면 사람들은 어떤 만화를 이야기 할까. 아마도 ‘로보트 태권 브이’가 압도적이지 않을까. 하지만 ‘로보트 태권 브이’는 딴지의 소지가 분명히 있다. 로봇의 매카닉이나 등장인물의 구성, 악의 세력을 물리치는 배경과 설정 등이 일본의 애니메이션 마징가, 그랜다이져 등과 같은 맥락에 있다.

로보트 태권 브이 포스터

 

‘로보트 태권 브이’를 제외하고, 한국적인 애니메이션 가운데 기억에 남는, 성공한 작품으로 평가되는 작품은 무엇이 있을까. 아마도 ‘아기공룡 둘리’를 기억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아기공룡 둘리’는 1983년 작품으로 성공 요인이라면 아기자기한 구성과 인물 설정, 그리고 앙증맞은 캐릭터 ‘둘리’의 공로가 가장 크다. 하지만 ‘아기공룡 둘리’는 로보트 태권 브이처럼 세월이 흐르면서 업그레이드된 캐릭터나 연결되는 줄거리가 없었다.

앙증맞는 모습의 아기공룡 둘리

 

지금의 386세대나 297세대가 보고 자란 애니메이션, 그러니까 그 당시 용어로 ‘만화영화’의 주류는 로보트가 등장해 외계에서 침입한 악의 무리를 쳐부수는 권선징악의 스토리 구조였다. 그 이후의 만화영화들도 약간씩 진화하긴 했지만 여전히 주인공은 로보트와 로보트를 움직이는 소년이였다. 80년대 중반 이후 ‘애니메이션’이라는 단어가 정착되면서 이때부터 스토리나 인물의 설정 구도는 조금씩 변화했다. 하지만 기존의 로보트가 뿜어내던 로켓포와 캐릭터들의 상관관계가 인간의 폭력성과 섹스적인 요소로 대치되었을 뿐 크게 달라진 내용은 없었다. 그리고 이런 애니메이션들이 우리의 눈을 자극하면서 지금까지 오고 있다.

우리는 자라오면서 이런 만화영화와 애니메이션을 두루(?) 거쳤다. 볼거리를 제공하면서 적당히 가공된 스토리를 보면서 “저것이 애니메이션이다”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마리이야기

 

애니메이션에 관한 서설이 너무 길었다. 하지만 앞에서 무슨 일들이 있었는지 돌아보지 않으면 ‘마리이야기’는 재평가 할 수 없다. 그럼 차근차근 ‘마리이야기’를 돌아보자.

바닷가에서 자란 소년 남우가 도시인으로 살아가다가 오래 두고 사귄 벗, 친구와 재회하면서 과거를 회상한다. 바다에서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기억, 그리고 가족과 함께 있지만 외로웠던 소년의 마음 한 구석에 아련히 남아있는 환상의 소녀 ‘마리’에 관한 이야기이다. 마리이야기에서는 매우 상반되는 관계를 보여주는 요소가 두가지 있다.

 

첫번째 요소를 스토리에서 찾아보자. 마리이야기는 매우 사실적인 묘사를 보여준다. 시골 마을 바닷가 풍경이나 전원일기의 양촌리를 보는 듯한 어촌 사람들의 정서, 어머니, 할머니, 그리고 주변 사람들. 특히 등대를 묘사하는 장면이나 주인공 남우가 작은 어촌의 시골길 자전거를 타고 달려가는 장면에서는 동작이나 배경이 너무 자연스러워 이것이 정말 애니메이션인가 하는 착각까지 들게 만든다. 하지만 이런 사실적인 구조는 환상의 소녀 ‘마리’가 등장하면서 환타지 애니메이션으로 바뀐다. 애니메이션의 제목에도 등장하는 ‘마리’가 정작 화면 속에서 등장하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아마도 현실감을 더하기 위해 ‘마리’의 출연을 자제한 것 같다. 일상과 환타지 사이를 오가고 있지만 전체 이야기 구조가 억지스럽거나 극적인 부분이 없다. 어찌보면 ‘기-승-전-결’의 스토리 구조에 익숙해진 시각에서 본다면 “영화가 썰렁하네”라는 아쉬움을 남겼을지 모른다.

슈렉과 이집트 왕자

 

 

두번째 요소는 테크놀로지에서 찾을 수 있다. 요즘의 애니메이션들은 3D로 가고 있다. 지난해 화제가 되었던 ‘슈렉’이나 3D 애니메이션의 효시격인 토이스토리, 스몰솔져 등은 주요 배경과 주인공을 3D로 만든, 기술로 똘똘 뭉친 작품이다. 이런 추세를 의도적으로 역행하려고 했을까. 마리야기는 2D 애니메이션에 가깝다. 하지만 실제로 마리야기를 접하면 2D 애니메이션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무엇인가가 있다. 그 이유는 바로 3D로 만든 배경과 애니메이션에 2D로 그린 인물들을 부드럽게 어울리도록 만든 화면 연출이 볼만하다. 여기에 색상도 파스텔 톤으로 ‘마리’의 환타스틱한 분위기와 적절히 매치되었다.

3D 배경에 2D로 인물을 그린 형식을 처음 시도한 것은 ‘이집트 왕자’였다. ‘이집트 왕자’는 웅장한 피라미드와 고대 이집트 사원 건축을 잘 표현하기 위해서 3D로 배경을 만들었다.

 

마리이야기를 만든 이성강 감독은 여느 애니메이션 연출 감독과는 색다른 경력을 가지고 있다.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했고 90년대에는 그림을 그리다가 현재는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고 있다. 과거의 이런 경력이 어떤 작용을 했는지는 몰라도 ‘덤불 속의 재’를 비롯하여 ‘작은달’, ‘토르소’, ‘전설’ 등의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며 그만의 내공을 쌓아온지도 모른다.

 

우리나라의 애니메이션 기술력은 세계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뭐가 부족했는지 우리의 기술력은 글로벌한 하청업체(?)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무래도 창의력과 독창성 면에서 당당히 승부할 수 있는 경쟁력은 아직 미흡한 모양이다. 하지만 이성강 감독의 ‘마리이야기’를 역할 모델로 한걸음 더 도약한다면 ‘글로벌한 하청업체’라는 꼬리표를 떼어버릴 수 있을 것이다.

안시 페스티벌(프랑스)은 물론이고 히로시마(일본), 오타와(캐나다), 자그레브(크로아티아) 페스티벌 등의 국제 애니메이션 행사에서 우리의 애니메이션이 최고로 꼽힐 그날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