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애니메이션과 게임의 접목이 DVD라는 공통매체를 통해 빈번한 접목을 이루고 있다. 특히 프로덕션 IG를 중심으로 하는 ‘야루도라’ 시리즈가 대표적이라 할수 있는데, 그중에서도 기존 시리즈의 스토리 분기라는 시스템에서 벗어나, 한층 게임성을 강화시킨 ‘감시자’라는 작품은 이러한 게임과 애니메이션 접목의 한 방법론을 제시했다고 할수 있겠다.

이러한 식의 새로운 접근방법 이외에도 이른바 미디어믹스라는 전략하에 이루어지는 게임과 애니메이션의 접목이 오래전부터 행해져 왔는데, 이 경우, 게임과 애니메이션이 큰 연관성을 지니지 못하고 ‘게임이 원작인 애니메이션’, 혹은 ‘캐릭터 게임’으로서 평범하게도 서로 상승효과를 일으키지 못하고 실패로 끝나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소개할 닷 핵(.hack)이라는 작품은 이제까지의 미디어믹스 전략에 기반한 여타 작품과는 다르다. 그리고 그러한 사실을 뒷받침 하듯 일주일만에 14만장의 판매를 돌파했다고 한다. 인기 시리즈의 속편이 아닌, 오리지널 작품으로서는 매우 높은 판매율이라고 할수 있겠다.

‘닷 핵 프로젝트’는 2001년 동경 게임쇼에서 반다이를 통해 처음 그 모습을 드러낸 프로젝트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단지 ‘사다모토 요시유키, 이토 카즈노리, 마시모 코이치’라는 게임, 애니메이션의 빅 네임들과 ‘닷 핵’ 이라는 타이틀만이 얼핏 소개가 되었을 뿐, 여러가지 면에서 베일에 감추어진 작품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 프로젝트의 시작이 된 작품이 지금도 인기리에 방영중인 TV 애니메이션 ‘닷 핵 사인(.hack//SIGN)’인 셈이다. ‘닷 핵 사인’은 세계관이 판타지 임에도 불구하고 그 세계가 ‘더 월드’라는 네트워크 게임의 가상세계인 관계로 인해 기존 판타지 작품의 답습을 거부하는 독특한 애니메이션으로서 화제를 모았다. 특히 이 작품은 판타지 세계안에서의 문제를 평화롭게 해결하는것이 아닌, 바깥 세계이자 현실세계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진실이 끊임없이 개입함으로 인한 색다른 긴장감과 문제의식이 담겨있는데, 스토리의 중반을 넘어선 지금, 앞으로의 추이가 주목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애니메이션이 닷 핵 프로젝트의 진정한 실체는 아니었다. 물론 사다모토 요시유키 캐릭터 디자인에 이토 카즈노리의 각본, 그리고 감독에 마시모 코이치임은 분명하지만 애니메이션의 세계가 ‘더 월드’라는 네트워크 게임의 가상 판타지 세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닷 핵’ 세계의 전체를 조망할수 없는 것이다.

이에 대해 가상과 현실의 사건 전체를 조망할수 있으며 ‘닷 핵 프로젝트’의 중심에 위치한 작품이 바로 지난 6월 20일에 발매된 플레이스테이션2용 게임 ‘닷 핵 Vol.1 – 감염확대’인 것이다.

이 작품의 최대 특징이라고 할수 있는 점은 바로 게임과 애니메이션이 하나의 패키지로 발매 되었다는 점이다.(사실 이 점이 5800엔이라는 저렴한 가격과 더불어 최대 세일즈 포인트이자 높은 판매율의 원인이기도 하다.) 이중에서도 게임에 해당하는 ‘감염확대 vol.1’은 이야기의 중심이자 TV애니메이션 ‘닷 핵 사인’과의 접점이기도 한 가상 네트워크 게임 ‘더 월드’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루고 있는데, 온라인 네트워크 게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메일, 채트, 게시판, 파티 플레이등의 네트워크 게임 요소를 가상적으로 구현해 내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게임 외견상으로는 한국에서도 서비스중인 판타지스타 온라인과 매우 흡사하지만, 세가지 단어를 조합해서 자신이 모험하고자 하는 세계를 조합해 낼수 있는 워드 자동생성 시스템등 ‘닷 핵’만의 참신한 아이디어가 눈길을 끈다.(이 워드 자동생성 시스템이 작품 내용의 중요한 열쇠가 되기도 한다.)

게임 자체만으로도 제법 완성도가 높지만, 함께 동봉된 애니메이션 역시 단순한 덤으로 끝나지 않은, 독립적인 작품으로서 충분히 즐길수가 있어, 애니메이션 팬들을 기쁘게 한다. 그리고 이 O.V.A ‘닷 핵 리미널리티(.hack//Liminality – In case of MINASE Mai)’가 바로 유일하게 바깥 세계이자 현실세계의 사건을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작품전체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부제에서도 알수 있듯이, 이 애니메이션은 네트워크 게임 ‘더 월드’ 플레이중 원인불명의 혼수상태에서 빠졌다가 기적적으로 의식을 되찾은 미나세 마이라는 소녀와 그녀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사건과 음모를 다룬 작품이다. 감독과 각본은 TV 시리즈와 같은 마시모 코이치와 이토 카즈노리로 게임과 더불어 전 4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건의 발단에 해당되는 이 작품은 전체적인 작화수준은 TV시리즈 정도로 평이하지만, 여러가지 암시와 각 주인공들의 인간관계, 캐릭터들의 대사에서 비추어지는 성격등이 잘 표현되어 있는 수작이다. 발단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완결된 시리즈로서 충분히 즐길수 있는 작품이자 현실세계를 주제로 하는, 어떤 의미에서 ‘닷 핵’이라는 세계의 결정적인 수수께끼의 실마리를 쥐고 있다는 점에서 ‘닷 핵’팬이라면 반드시 주목해야 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 프로젝트의 미디어믹스 전략에서 주목할만한 점은 무엇보다도 게임과 애니메이션의 내용이 이토 카즈노리의 각본을 중심으로 게임과 애니메이션이 독립적으로 전개되면서도 서로가 긴밀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점은 이제것 세계관만은 동일하되 큰 연관성 없이 독립적으로 진행되어 게임팬, 애니메이션팬을 따로따로 흡수한다는 식의 기존의 미디어믹스 전략과 다른 점이라고 할수 있는데, 이러한 전략의 단점은 구매자가 완전히 ‘닷 핵’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애니메이션을 비롯해서 게임까지 구입해야 하는 이중부담을 지게 된다는 점일것이다. 그리고 그에 대한 과감한 해법이 애니메이션과 게임을 한 패키지에 담는다는 ‘닷 핵’의 과감한 시도로 결실을 맺은것이다. 과연 현 애니메이션의 최대 메이커이자 건담을 중심으로 하는 캐릭터 게임의 선두주자인 반다이였기에 가능했던 점이라 할수 있겠다.

닷 핵 시리즈는 앞으로도 ‘vol.2 악성변이’, ‘vol.3 침식오염’, ‘vol.4 절대포위’등 순차적으로 발표될 예정이라고 한다. 이 거대한 프로젝트의 결말까지는 팬들에게 인내심이 요구되지만, 이제까지 전개되어온 작품들의 완성도를 보았을때, 앞으로의 전개를 기대해보아도 좋을듯 싶다.

닷 핵 프로젝트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