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독립 애니메이션을 본다는 것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것이 한국 작품이기 때문 아니겠냐는 대답은, 마치 국산품을 애용하자는 말만큼이나 이제는 공허하다. 하지만 애니메이션은 상품과 똑같지 않다.
애니메이션은 그것이 만들어진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미지이고, 그래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 한국이라고 불려지는 이 사회를 돌아보고 이해할 수 있는 가장 직접적인 기회를 우리에게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기 이해로의 길에 있어서 독립 애니메이션이라 불려지는 작품들은 특별히 중요한 위치에 있다. 왜냐하면 한 개인의 일기가 그렇듯이 그 작품들 속에는 우리와 함께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의 개인적인 풍경이 비교적 솔직하게 그려져 있고, 바로 그 개인적인 풍경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일부이자 산물이라는 점에서 가장 한국적인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비교적 짧은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20세기의 마지막 10년간 한국 사회에서 개개인에 의해 창조된 애니메이션 영화들은 현재 학생 단편들을 포함하여 이미 상당수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영화제가 흔한 것이 되었다고 할지라도 여전히 그 많은 작품들을 접할 기회는 흔하지 않다. 가령, 해외 영화제의 경쟁 부문 출품작이라든가 수상작들조차도 대중 매체에서는 고작 한국 작품이 출품, 수상했다는 사실만을 보도하는 데 그칠 뿐, 정작 그것들이 왜 그만한 평가를 받았는지 확인할 기회를 제공하는 데에는 지극히 인색하다. 공허한 내셔널리즘적 외침을 살포하는 것(broadcasting) 말고는 한국 사회의 자기 이해를 위한 어떠한 기여도 외면하는 것이 한국 대중 매체, 특히 공중파 TV 방송(broadcasting)의 실정이다.

이와 같은 문제 의식 위에서 ‘한국 독립 애니메이션 특별전2’는 일차적으로 지난 십여 년간 한국 사회의 현실을 다양한 관점에서 비춰 낸 작품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경험하는 현실이란 궁극적으로 현실 그 자체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이미 주어진 원근법(즉 감각과 인식의 제도적 틀)을 갖고 현실로부터 구성해 낸 세계, 다시 말해 그려낸 풍경이다. 따라서 그 풍경을 시간 속에서 물질적으로 구현한 애니메이션 영화는 현실에 대한 일종의 ‘움직이는 풍경화’라고 부를 수 있겠다.

그리하여 이번 특별전은 크게 두 개의 테마에 기초하고 있다.

먼저 그 하나는 위에서 언급된 문제 의식에 직접적으로 다가간 ‘한국으로부터의 현실과 풍경들’로서, 섹션1과 섹션2가 이것에 해당한다. 두 섹션은 서로 연대기적인 관계에 있다. 즉, 시기적으로 연속적이지만 섹션1은 1990년대 초에서 후반까지의, 그리고 섹션2는 그 후반에서 최근까지의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각 섹션의 작품들을 통해 한국 사회의 변화뿐만 아니라 동시에 한국 독립 애니메이션 그 자체의 예술적, 기술적 변화도 엿볼 수 있게 해주리라 기대된다.

또 하나의 다른 테마는 ‘세계를 바라보는 개인적 원근법들’로서 섹션3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 섹션에서는 한국 작품 혹은 한국적 주제라는 것과 별 상관없이 국가적(민족적) 정체성을 넘어 애니메이터들이 개인적 감수성과 상상력의 원근법으로 포착한 세계를 보여준다. 섹션3의 일차적 의도는, 내적으로 고유한 가치를 지닌 애니메이션 영화를 경험함으로써 한 인간의 정체성이 결코 국민(민족)으로서만 규정되지 않는다는 것, 혹은 그러한 이데올로기적 틀을 넘어선 존재라는 것을 예시하는 데 있다. 이는 한국 사회의 현실이 한국이라는 원근법만으로는 충분히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며, 섹션3은 섹션1, 2와는 또 다른 시각으로 우리가 사는 세계를 바라볼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한국 독립 애니메이션 특별전2’에서 접하게 될 한국의 독립 애니메이션들이 전부 다 걸작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것들이 과연 진정으로 독립적인가에 대해서도 이견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번 특별전의 의도는 결코 독립 애니메이션에 대한 해답의 제시가 아니다. 오히려 갖가지 이견들이 제기되어 활발한 토론이 이루어지는 것만으로도(왜냐하면 이제까지 거의 침묵으로만 일관되어 왔기에) 더할 나위 없는 성과이겠다. 한편, 기능적인 테크닉이나 이미지의 스펙터클을 중시하는 이들에게는 아마 형편없어 보이는 작품들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특별전은 결코 국립 박물관도 아니고, 만국 박람회도 아니다. 요컨대, 이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숭배나 소비의 대상으로서의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애니메이션이라는 그 감성적 경험을 통해 우리가 서로에 대해, 자신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이해해 가는 즐거운 과정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실제로 이번 특별전의 애니메이션 영화들은 모두 대단히 즐겁다!!!).

프로그래머 김준양, 박규환

▷ 장 소 : 서울아트시네마 (아트선재센터 지하 1층, 3호선 안국역 1번출구, 정독도서관 맞은편)
▷ 일 시 : 2002년 10월 26일 (토) ~ 28일(월), 3일간
▷ 주 최 : (사)한국독립영화협회, 애니마포럼, (사)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
▷ 후 원 : CJ엔터테인먼트, CGV, 영상미디어센터 MediACT,
              사단법인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 조직위원회
▷ 입장료 : 5,000원(청소년 및 단체할인 4,000원)
▷ 문   의 : 02-334-3166(한국독립영화협회)

  상 영 작 품  
▼ Section 1  한국으로부터의 현실과 풍경들 1
01. < 와불 > 감독 이용배｜1991년｜4분 30초
02 < 원천봉쇄 > 감독 이영욱｜1995｜1분15초
03 < 넋 > 감독 이성강｜1995년｜3분 15초
04 < 엄마의 나라 > 감독 장우진｜1995년｜4분
05 < Subway > 감독 나기용｜1995년｜5분 28초
06 < 회상 그리기 > 감독 김경숙 외｜1996년｜4분 30초
07 < 야경꾼 > 감독 한태호｜1996년｜10분
08 < TV 부인 > 감독 유진희｜1997년｜5분
09 < Bank > 감독 조중현｜1998년｜4분 32초
10 < In the Room > 감독 이상미｜1997년｜1분 15초
11 < 사랑해요 > 감독 전승일｜1997년｜8분 24초
12 < 예전엔 > 감독 윤재우｜1998년｜5분 43초
13 < 하교길 > 감독 손정현｜1998년｜3분 40초
14 < 거북이 > 감독 백재중&박재웅｜1998년｜6분
15 < 사선에서 > 감독 김동욱 외｜1999년｜13분

▼ Section 2  한국으로부터의 현실과 풍경들 2
01 < Open Your Eyes > 감독 김면수｜2000년｜8분 10초
02 < 소나기 > 감독 김홍중｜1999년｜9분
03 < 아리랑 > 감독 강준원｜1999년｜4분
04 < 초대 > 감독 이구아나｜1999년｜9분 50초
05 < Three Little Dummies > 감독 성남식&박재웅｜2000년｜8분
06 < 언년이 > 감독 유진희｜2000년｜7분
07 < 이콘 V > 감독 구성훈｜2001년｜20분
08 < Rain > 감독 이규희｜2001년｜6분
09 < Grandma > 감독 조성연｜2001년｜5분 43초


▼ Section 3  세계를 바라보는 개인적 원근법들
01 < Open > 감독 정동희｜1996년｜5분58초
02 < Up and Down Story > 감독 조범진｜1996년｜30분
03 < 거울 > 감독 박동훈｜1999년｜2분32초
04 < Egg Egg > 감독 박현주｜1999년｜7분
05 < Like Sex The Fish > 감독 김병갑｜1999년｜14분
06 < Mouse without Tail > 감독 박원철｜2001년｜13분30초
07 < The Clock > 감독 이은실 외｜1998년｜3분15초

  상 영 시 간 표  

시간	10월 26일 (토)	10월 27일 (일)	10월 28일 (월)
3:00	섹션 3	섹션 2	섹션 1
5:00	섹션 2	섹션 1	섹션 3
7:00	섹션 1	섹션 3	섹션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