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물등급위원회의 18세이용가 판정으로 불거진 ‘리니지 등급 파동’이 게임 수정 후 재심의라는, 엔씨소프트가 한발 물러서는 선에서 마무리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국내 온라인게임 개발환경이 영등위의 심의기준에 따라 크게 제악받는 등 급변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엔씨소프트에 이어 후발주자인 웹젠도 온라인게임 ‘뮤’의 게임내용을 대폭 수정, 심의에 임하면서 비슷한 온라인 롤플레잉게임의 연쇄변화가 예고되고 있다.

한국게임산업연합회 임동근 회장은 “영등위가 플레이어킬링(PK:다른 캐릭터를 죽이는 행위) 등 몇몇 사항을 심의기준에 엄격하게 적용함에 따라 업체들이 유저 확보 차원에서 게임을 대폭 수정하는 조치에 나서고 있다”며 “이같은 현상이 지속되면 게임 개발자들이 부지불식간에 영등위의 심의기준을 염두에 두는 등 창작의욕이 크게 저하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PK 논쟁=‘리니지 등급 파동’의 핵심은 따지고 보면 PK에 대한 영등위의 부정적인 시각에서 비롯됐다.

영등위는 ‘리니지’에 대해 18세이용가 판정을 내린 까닭으로 “PK시 아이템이 떨어져 PK를 조장하는 요소가 많고, 이는 아이템 현금거래 등 온라인게임의 역기능을 심화시킬 것으로 우려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영등위는 특히 PK가 이슈로 등장하자 PK와 관련한 세부 심의기준안까지 마련해 엄격하게 적용하려는 움직임이다.

영등위가 내부적으로 마련한 PK 기준안에 따르면 △무차별 PK가 허용되고 아이템 드롭(drop) 기능이 있을시 18세이용가 △PK를 허용하되 아이템 드롭 기능이 없으면 15세이용가 △유저끼리 합의에 의한 PK만 허용되고 아이템 드롭 기능이 없으며 12세이용가로 각각 분류되고 있다.

그러나 업계 관계자들은 이같은 기준이 주객이 전도된 기준이라고 맞서고 있다. 등급분류기준의 핵심은 폭력성이나 선전성, 사행성 등이 키워드가 돼야 하는데 지나치게 PK만으로 게임을 분류한다는 볼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특히 PK는 게임성을 높이려는 하나의 장치로 봐야 한다는 견해도 지배적이다.

◇개발환경 급변=하지만 업계 대표주자로 불리는 엔씨소프트가 영등위와의 타협책으로 PK시 아이템 드롭 기능을 제거하는 등 게임을 대폭 수정해 재심의를 신청함에 영등위의 심의기준이 하나의 게임 개발기준으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실제 등급심의를 연기했던 웹젠도 온라인게임 ‘뮤’의 PK 기능을 대폭 손질해 심의를 신청했으며 ‘리니지’와 함께 18세이용가 등급을 받은 ‘헬브레스’도 심의기준에 맞춰 게임을 대폭 수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대부분의 온라인게임이 청소년 유저가 주요 타깃인 것을 감안할 때 이같은 현상은 기존 게임뿐만 아니라 신작 게임에도 그대로 반영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와 함께 게임성의 침해 등을 이유로 아예 18세이용가 등급을 각오하고 게임을 개발하는 업체들도 늘어날 전망이다. 이미 액토즈소프트의 ‘A3’나 위즈게이트의 ‘타짜온라인’은 18세이용가를 각오하고 있으며 제이씨엔터테인먼트도 차기작 ‘프리스트’를 등급에 연연하지 않고 개발한다는 계획이다.

이밖에 국내용 게임과 해외용 게임을 별도로 제작하는 업체가 늘어나는 기현상도 벌어질 전망이다. 중국·대만 등 아직 등급제가 시행되지 않는 시장에서는 게임성이 침해받지 않은 게임이 경쟁에서 승산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일본 도쿄대 위종현 교수는 “자본주의사회에서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각종 규제를 풀고 시장의 원리에 충실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특히 게임과 같은 문화산업의 경우 자유로운 상상력과 창의력을 얼마나 잘 표현하느냐에 따라 사업의 흥망이 좌우되는 만큼 정부나 영등위가 앞으로 이를 감안해 더욱 융통성 있는 심의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