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개국에서 200편이 훨씬 넘는 작품이 참가하고 다양한 부류의 새로운 애니메이션을 보여준 젊은 대학생의 애니메이션 축제 PISAF(부천 국제대학 애니메이션 페스티벌)가 지난 13일 끝났다. PISAF는 국내 애니메이션 페스티벌 중 가장 많은 나라와 교류하며, 또 그만한 외국교수와 학생들이 찾아왔다. 이제 이를 조직화 시켜 Student Animation Festival International Network(학생 애니메이션 페스티벌 국제연대)라는 단체로 발족하여 10개국이 모태가 되어 전 세계로 뻗어가고 있다.

이는 PISAF 조직만이 특히 우수해서가 아니라 학생 페스티벌의 특성상 국제 교류가 보다 쉽고 다양하기 때문이다. 이는 국제 문화콘텐츠 시장의 조기 개척 차원의 의미도 있고, 젊음이 넘치는 지역 관광 상품이 될 수도 있다. 또 부천 같은 수도권 주변도시의 문화 교육 인프라를 활성화시켜 서울의 문화 독점현상을 완화하기도 하는, 그야말로 일석삼조 이상의 의미가 있다.

개인적으로 PISAF를 처음부터 진행해온 사람으로서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학생 작품의 수준 역시 향상되었다. 그러나 한국에서 비영리적 목적의 페스티벌 사업은 늘 여러 가지 내외의 도전과 만나기 마련이다. 이번 PISAF 행사를 치르면서 느꼈던 안타까움 몇가지 적고자 한다.

그 첫째는 무엇보다 적은 예산과 협찬의 어려움이다. 부천시가 지정한 미래지향적인 문화사업 중 하나로 행사가 한번의 적자없이 잘 진행되고 있긴 하지만 안팎의 불만이 만만찮다. 이는 젊은이들이 부천에 모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시의 문화 경제활력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일부 보수 기득권 층의 부족한 인식 탓이라고 생각한다.

이 점에 대해서는 중앙 정부도 마찬가지다. 말로만 서울의 인구 집중과 문화 집중을 경계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방도시의 자발적인 관련사업에 보다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더욱이 영종도 개발과 서해안 미디어 단지 개발 등과 맞물려 생각하면 부천시의 역할은 높이 살만 하다.

두터운 학생실험집단은 벤처기업 연구실

둘째는 우리 산업 현장의 근시안적 미래관이다. 현재 젊은 학생의 생각과 비전이 한국 문화콘텐츠 또는 만화 애니메이션 산업의 미래이다. 사업가와 프로들은 PISAF가 아마추어 학생들의 행사라고 중요치 않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튼튼한 아방가르드, 전위부대, 실험집단이 없는 사업이란 연구소 없는 벤처 기업처럼 허망한 것이다. 두터운 우리나라의 학생 애니메이션 집단은 스스로 돈들이지 않아도 되는 회사의 공짜 실험실 같은 것이다.

10년, 20년후의 미래를 진정 생각한다면 그들은 젊은 학생들의 시행착오와 생각들을 면밀히 살펴봐야 할 것이다. 그럴듯한 외국의 행사장에서 국내에서 처럼 가슴에 꽃도 못 달고 빈손으로 돌아오는 소위 프로들은 자기 나라 젊은이들의 애잔한 소리에 먼저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러나 PISAF와 같은 행사는 정치가나 사업가의 그럴듯한 주례사가 없어도 행사는 계속될 것이다. 우리 자녀들의 교육 현실과 현대 한국 젊은이의 상황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프로들이 대학이 자기 회사의 직원을 길러주지 못한다고 불평하는 것을 더 이상 참을 필요도 없다.

“당신네 학생들의 작품은 매우 실험적이고 우수하다. 서구 지향적이기는 하지만 그 속에는 당신들 문화의 새로운 오리지날리티가 확연히 느껴진다. 이는 세계 시장에서도 경쟁력이 있다. 그런데 왜 당신들의 상품은 미국, 일본 것과 구별이 어려운가?” 이는 미국 디트로이트CCS 에드워드 박스터 교수의 말이다. 그 비슷한 상품이 미국, 일본 것보다 낫다면 진정 다행한 일이다.


PISAF의 전시장

마지막으로 교수와 학생, 즉 주인 차원의 문제이다. 시그래프, 앙시, 히로시마 등 외국의 페스티벌에는 대거 참여하면서 정작 국내 문제에는 무관심하다. 오랜 동안 로마자 이력에 주눅든 우리의 환경에서 이 부분은 새삼스런 일도 아니다.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런데 조그만 부분에도 문제해결을 위해 대안을 마련하고 협력하는 것보다 냉소와 비판만 지나치게 무성하다. 외국인들 앞에서 슬픈 경험을 할 때가 많다.

행사의 진정한 주인인 학생들도 스스로의 정확한 좌표를 찾기 위해서 남의 작품과 생각에 보다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남과의 진지한 대화는 남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의 모습을 찾기 위한 것이다. PISAF뿐 아니라 여러 행사에서도 텅 빈 심포지엄과 워크숍과 달리 사람으로 미어 터지는 오락성 행사는 지성 실종의 씁쓸한 그림자를 남긴다.


PISAF 영화제 대상 수상작 ‘진’(왼쪽 위)과 본상 수상작들

결국 이러한 많은 시행착오와 성과를 갖고 다음 단계로 우리는 나간다. 진심으로 반성하고 감사하는 마음이다. 이 모든 점에도 불구하고 수고한 각종 스태프, 교수, 학생들의 노고는 차라리 아름다운 것이었다. 고마운 마음 가득한 만추의 마지막 즈음에 고운 낙엽 하나 책갈피에 꽂듯이 PISAF를 기억에 담는다.

/ 박세형
PISAF 조직위원장, 한국 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애니메이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