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이냐 마케팅이냐

▶ 경영자 : 이번 작품이 좋은 반응을 얻지 못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 기획팀 & 제작팀 : 내용이나 기술적으로는 할 수 있는데 까지 다 했습니다. 문제는 마케팅과 홍보가 미약해서 이런 결과를 초래했다고 생각합니다.
▶ 마케팅팀 : 실패의 원인은 시기가 적절하지 않았고 유행에 뒤쳐져서 그렇다고 생각됩니다. 요즘 사람들은 좀 더 현란하고 자극적인 영상을 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만드는 영상들은 사람들의 눈을 자극시키기에 충분하지 않습니다. 이런 영상으로는 홍보하기가 어렵습니다.

지난 1월에 대부분의 업체에서는 지난해 실적을 결산하고 올해 목표액을 산정했을 것이다. 그리고 뒤이어 상반기 계획을 세웠다. 지난해에도 이렇게 우리는 목표액을 만들고 달성하기 위해 끊임없이 뛰어왔다. 올해도 지난해보다 더 열심히, 더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기획만 좋았어도…, 마케팅만 잘 했어도… 이런 푸념들은 애니메이션 업체의 지난해 결산과 올해의 계획을 세우는 자리에서 가장 많이 했던 말이 아닐까 싶다.

대부분의 애니메이션이나 CG 작업이 그렇듯이 순수 창작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면 영리를 추구하기 마련이다. 만들어 내 놓는 것 마다 흥행에 성공하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면 사람의 즐거움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제작자라면 누구라도 자기가 만든 작품이 흥행에도 성공하고 수익과 연결되기를 바랄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말 그대로 ‘입소문’이 퍼져야 홍보를 담당하는 사람도 신이 나서 일을 할 것이고 마케팅 담당자는 말 그대로 결과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결과를 나타내는 숫자가 높을수록 자신감이 생길 것이다.

지난달에는 TV에서 영화와 연예에 관련된 프로그램 뿐만 아니라 뉴스에서도 심형래 감독의 ‘D-WAR’를 소개했다. ‘신지식인’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심형래 감독의 작품은 애니메이션에 관심이 있건 없건 한번쯤은 눈여겨 보게 된다.

영구아트무비의 ‘D-WAR’ 홈페이지(http://younggu-art.com/dragonwars/index.html)

‘용가리’가 개봉하기 전 심형래 감독은 마케팅을 하기 위해 영화제나 SF 영화를 주제로 모이는 자리에 참석했고 여기에서 ‘용가리’의 예고편은 숱한 화제를 낳았다. 개봉 당시에도 배경이 우리나라가 아니라는 점, 우리 배우가 출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많은 기사 꺼리가 되었다. 물론 ‘용가리’가 극장에서 내려온 후에도 한동안은 용가리 이야기가 이어졌다.

용가리는 신지식인이 만들었다는 영화라서 세간에 많은 관심을 모았다. 그러면 이번에 새로이 발표되는 ‘D-WAR’의 반응이 어떨까 궁금했다. 여기저기 ‘D-WAR’에 대한 기사를 보고 지인들을 통해 작품이나 흥행성 면으로 볼 때 어떨 것 같은지 물어봤다.

가끔 기대가 된다는 응답이 몇 개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부정적인 응답에 가깝거나 두고 봐야겠다는 ‘관망’하는 대답이 많았다. 흥행성 여부도 점치기 힘들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대부분은 ‘기획’이 받혀주지 않아서 어려울 것 같다는 대답이였고, ‘용가리’때 화제가 되었던 기술력과 벤쳐 정신이 지금은 통하지 않는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였다.

‘D-WAR’ 이야기는 접어두고, 마케팅하는 사람들은 실패한 작품에 대해서 제작이나 기술 부문에 책임을 전가한다. 실제로 제작파트에 있는 사람들은 ‘기획력’에 물음표를 제시한다. 모두의 의견을 종합하면 시키는 대로 만들었고, 만들어진 대로 마케팅 했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러면 문제는 기획, 시나리오…. 두 가지로 좁혀지지만 늘 책임을 떠 앉는 ‘기획력’은 무엇일까? '기획력'은 하루아침에 생겨나는 힘도 아니고 또 구구단을 열심히 외운다고 풀수있는 계산이 아니다. '기획력'은 여러가지 요인들이 서로 맞물려 돌아가는 풀기 어려운 숙제이다.

지난날을 후회하면서 계획만 세우고 책임 전가하는, 그리고 “이것만 뜨면 된다”라는 도박에서나 통하는 생각은 날려버리고 차근차근 노하우를 키워서 대중의 가슴을 파고드는, 훗날에도 다시 보고 싶은 명작으로 손꼽히는 작품이 2003년 한해에 ‘쑴풍!쑴풍’ 나오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