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TV의 어린이 시청 시간대를 수놓았던 명작씨리즈 애니메이션이 죄다 일본것이란 사실을 접했을 때, 일종의 자존심이 뭉개지는 수모를 겪으면서도 한사코 빠지지 않고 시청할 수 밖에 없는 유년기의 딜레마에 빠져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물론 기술적으론 하청의 일인자였던 국내 애니메이션 제작시장은 기술만 가지고 뛰어들 수 없는 작품성의 세계에서 참패를 면하지 못했고 그나마 가뭄에 콩나듯 아기공룡둘리, 달려라하니 등의 코리안 애니메이션이 등장을 한게 그나마 역사의 한줄 정도라고 할 수 있겠다.
왜 FXdigital의 탐방기를 끄적이면서 서론에 무거운 얘기를 실었는지 눈치빠른 사람은 이해할 것이다. 비록 제작방식이 다르긴 하지만 그토록 힘든 TV 애니메이션 씨리즈제작에서 쾌거를 이룩한 회사이기 때문에 장황한 역사를 운운하지 않을 수 없었다.
FXdigital은 회사명이 그리 알려지지 않아 내심 포스트프로덕션으로 착각하는 분들이 많다.
물론 필자 역시 마찬가지의 우를 범했다. 그나마 홈페이지의 소개내용과 동행했던 송근우기자의 도움으로 많은 부분에 대해 이해할 수 있었다.

FXdigital은 디지털노가다의 대명사인 3D로 기나긴 방송분의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조금은 색다른 회사다. 보통 Full 3D애니메이션은 디즈니와 픽사등의 극장판이 주류를 이루고 있어 방송용 씨리즈물이라 하면 짐짓 상상이 가질 않는다.
파이널판타지의 참패에서 보듯이 3D애니메이션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갑지는 않음에도 틈새시장을 공략한 FXdigital의 승전보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선 충성도 높은 타켓인 어린이들을 공략한 점과 테크니컬 위주의 모델링과 scene보다는 애니메이션다운 연출에 주력한 점을 높이 살 만하다.
그리고 그토록 많은 씨리즈를 원활히 소화해내는 독특한 파이프라인과 맨파워는 FXdigital의 자랑거리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떤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는가?
2000년 2월 18일부터 2000년 5월 12일에 걸쳐 KBS-2TV에 12~20%의 높은 시청률을 자랑하며 방영되었던13편의 <삐까뽀 친구들>이 FXdigital의 첫 작품이다.
그 외에도 26편으로 제작된 <환상마을 토포토포>, KBS TV 유치원 하나둘셋 방영되었던 <엄지곰 곰지>등이 있다.차기작인 <범퍼킹 재퍼>를 설명하기에 앞서 좀 더 FXdigital을 파헤쳐보자.
우선 위치는 5호선 오목교역에서 5분거리인 목동 방송회관 건물에 위치해 있었다.
금연건물이라 부지런히 담배피우러 간이옥상을 왕래하는 FXdigital직원들의 부지런함이 첫눈에 띄었다. 잠시후 안내를 받아 들어간 작업실은 넓게 탁트인 공간이었고, 적당한 높이의 파티션사이로 뿜어내는 컴퓨터의 열기가 방문객을 압도하는 분위기였다.

"현재 SBS에 방영될 <범퍼킹 재퍼>가 마무리에 있고, 또 다른 차기작 준비로 바쁜 일정을 소화해 내고 있습니다."
프로젝트를 총괄하는 이경호감독은 바쁜 일정에도 세심하게 붐업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다.
<범퍼킹 재퍼>에서 시도되는 붐업이란 듣는 이를 흥분시킬 만한 내용이였다. SBS프로덕션이 애니메이션방영을 하고, 대원C&A가 출판을 손오공이 완구와 PC용 게임을 넥슨이 온라인 범퍼킹게임을 개발하는 범퍼킹프로젝트는 애니메이션 비즈니스의 한 획을 그을 커머셜카르테였다.
"붐업때문에 12월말 방영예정이었는데 융단폭격을 위해 내년 3월을 기약하게 되었죠."
가히 기대해볼 만한 프로젝트 임이 분명하다.

이직률이 높은 이 업계에서 FXdigital은 아직도 원년멤버가 주축을 이루고 있다. 이런 이유로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쌓인 노하우와 팀웍은 FXdigital이 불황을 거듭하는 애니메이션 업계에서 성공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4개의 팀이 각각 맡은 편당 결과물을 책임지게 되면서, 애로사항이 많았습니다. 스토리가 이어지기 때문에 팀간의 커뮤니케이션이 없으면 옥의티가 나오기 마련입니다."
애니메이션파트를 지휘하는 한재승팀장은 팀웍을 위해 많은 고민을 해 왔다고 한다.
결국 이런 시행착오가 지금의 팀웍을 만들었고, 잔뼈 굵은 작업자들은 콘티만 봐도 장면장면 작업의 구도가 떠오른다고 한다. 이런 팀웍으로 FXdigital은 한달에 두 편의 애니메이션을 거뜬히 제작하는 막강한 회사가 되었다.

<범퍼킹 재퍼>(이하 <범퍼킹>)는 FXdigital의 야심작이다.
26편이 거의 완성되었고, 예전 <삐까뽀 친구들>도 그러했지만 어린이들에게 커다란 인기를 끌 것으로 예상된다.

R/C 범퍼카의 경주장면


범퍼킹재퍼의 캐릭터들


자체 렌더팜은 생산속도를 향상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범퍼킹>은 사람과 R/C 범퍼카가 주요 캐릭터로 등장하고, 매 회를 수놓을 스피디한 레이싱 장면이 Full 3D 애니메이션으로 펼쳐진다.
<범퍼킹>때문에 아이들이 부모님 차를 끌고 거리로 나오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는 이경호감독의 얘기처럼 사뭇 박진감 넘치는 장면들이 머리에 스친다. 8명씩 4개 팀으로 구성된 애니메이션팀은 앞서 얘기한 대로 <범퍼킹>을 탄생시키는 원동력이 되었고, 시행착오끝에 쌓인 노하우로 이제 영국과 공동제작할 극장판 애니메이션을 차기작으로 준비중이다.
게임과 완구등으로 동시에 출발하는 <범퍼킹>은 불황의 애니메이션 시장에서 모범답안이 없음을 얘기하고 있다. 하지만 엄청난 시간과 자금을 투여하는 대작보다도 속도와 퀄리티로 승부하는 FXdigital의 컨셉이 어쩌면 한국 애니메이션의 모법답안이 아닐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