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gLand는 ‘마야캐릭터애니메이션’ 1편과 2편의 저자로 유명한 최재진 실장을 만나 보았다. 최 실장은 현재 아크스튜디오(www.arcstudios.com)에서 TV판 애니메이션과 '별주부전‘을 패러디한 극장판 애니메이션 기획작업을 맹렬히 진행 중이다. 그와 함께 나눈 이런저런 이야기들..

지하철 7호선 상도역에 내리면 중앙대학교를 안내하는 안내간판이 눈에 뜨인다. 간판이 지시한대로 좁은 길을 따라가다 보면 중앙대학교 후문이 보이고 그 바로 옆에 빨간색 웅장한 건물이 떡하니 나타난다. 여기가 중앙대 DCRC(Digital Contents Resource Center)로 최 실장의 아크스튜디오가 있는 곳이다.

오랜만에 만난 최재진 실장은 머리를 묶은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마치 무슨 도인을 연상케 하는 용모. 인터뷰 중 이외수를 닮았다며 도(道)라도 닦느냐며 농담을 던졌더니 의미심장한 대꾸를 했다. ‘도를 닦는 기분으로’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있다고..

끝없는 기획

“끝없이 기획하지 않으면 죽는다!”

아크스튜디오의 모토는 끝없는 기획이라고 최재진 실장은 강조한다. “끊임없이 뭔가 만들고 연구하지 않으면 도태될 수 있습니다.” 이 말처럼 현재 아크스튜디오는 여러 가지 기획을 진행 중이다.

그 가운데 하나가 현재 중국과 협상중인 애니메이션 TV 시리즈이다. 중국은 설 연휴가 긴 걸로 유명하다. 중국의 설인 춘절은 거의 한 달 내내 관련 업무를 마비시킬 정도로 길다. 최 실장은 얼마 전 춘절이 끝난 중국과 현재 TV 애니메이션 시리즈에 대한 이야기가 진행 중이라며 말문을 열었다.

‘몬스터 캔디’라는 가제를 붙인 이 작품은 지난해 극장용 애니메이션 기획 도중 데모를 만들었다. 꿈스튜디오와 공동으로 기획제작한 ‘몬스터 캔디’는 남녀 어린이 둘이 몬스터를 사냥하는 내용의 10세 전후의 연령층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환타지 어드벤쳐물이다. 중국은 물론 국내의 관련 업체에 선보이며 반응을 타진 중이다.

이와 함께 현재 파일럿 제작중인 게 있다. 극장판으로 기획된 이 작품은 우리 고전 ‘별주부전’을 원작으로 한다.

“현재 4월을 목표로 데모 작업을 맹렬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의 가제는 'Tori & Rabi’. 최 실장에 의하면 기존 애니메이션에 대한 통념을 뒤집는 작품이 될 것이라고 한다.

기상천외한 별주부전 ‘Tori & Rabi'

“엽기와 섹스 등 기존의 아동용 애니메이션에서 다루지 못했던 성인이라는 개념은 넣을 생각입니다.” 물론 아직 파일럿을 제작하고 있는 만큼 제작 도중 컨셉은 수정이 될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뭔가 깨는 내용을 집어넣겠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고 한다.

“‘별주부전’은 옛날에 쓰여진 것인데도 속고 속이는 사회구조나 인간관계가 현재 우리의 모습과 너무 똑같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에 따라 이 내용을 기반으로 기상천외한 내용의 극장판 애니메이션을 기획했다고 최 실장은 기획 배경을 설명했다.

“주인공인 토끼와 거북이는 술주정뱅이와 남 등쳐먹는 사기꾼으로, 바다는 권력층의 비리 온상으로 그릴 겁니다. 육지는 갈취와 착취가 난무하는 서민들의 사회상을 반영할 거예요.” 자못 내용이 흥미진진하다.

결론은? 그리 비관적으로 흐르지는 않을 것이라고 한다. 최 실장은 그러면서 슬그머니 꼬리를 내린다. “설정 자체가 ‘18금’에 맞춰 있지만 사실 성인과 아동 어디에도 맞출 수 있는 코드라고 생각합니다. 데모 또한 많이 다듬어져 있습니다. 일단 재미를 부여하고 관심을 불러일으킨 후, 차차 내용을 조정해야죠.” 돈을 대는 투자자와의 합의하에 ‘자진삭제’도 감수하겠다는 최 실장의 모습에 장난기가 서려있었다.

극장판 애니메이션에 대한 얘기를 조금 더 진행해 보았다. 최 실장은 초 저예산으로 이 극장판 애니메이션 프로젝트를 완수하겠다는 계획이다. “순수 제작비 15억에 1년 반 정도의 제작기간을 설정했습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현재 우리나라에서 애니메이션을 만들기 어렵다고 보기 때문이지요.”

그렇다고 인건비를 착취하면서 작업하는 건 아니라고 한다. “인건비 수준은 기존애니메이션 업체보다 높게 설정할 겁니다. 대신 필요 없는 비용을 최소화하는 파이프라인 구축과 그간의 산업적 인프라를 통해 물적 지원을 확보할 생각입니다.”

애니메이션 퀄리티 역시 떨어지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한다. 데모나 데모 이상의 수준을 유지하겠다는 게 최 실장의 계획이다.

마야캐릭터애니메이션

최재진 실장과의 얘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바로 책 이야기이다.

최 실장은 SBS CG실에 근무할 당시 책을 하나 쓰게 되었는데 그게 영진출판사에서 나온 ‘마야 캐릭터애니메이션’이다. 이 책은 마야가 알려진지 얼마 안 되는 국내 상황에서 관련 유저들의 폭발적인 지지를 받았던 책이다. 이 책이 절판되었는데도 독자들의 요구에 의해 재판까지 찍었다.

최 실장은 이어 ‘마야캐릭터애니메이션 2’를 집필하게 되는데, 이 책은 국내 뿐 아니라 외국에도 소개되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외국에서 CG를 공부하는 한국 유학생들에 따르면 외국인 친구들도 마야를 공부하는 학생들은 한 권씩 갖고 있었다고 한다.

2편은 인터넷 서점 아마존(www.amazon.com)에서 지난 해 마야 부문 서적 베스트 1위를 8개월여 고수했다. 1위를 위협한 것은 마야의 제작사 알리아스사에서 펴낸 베스트셀러 ‘러닝마야(Learning Maya) 5’ 정도였다고. 최근 최 실장은 영어판 원고의 보충되는 원고를 영진출판사에 넘겼다. 이 추가된 원고는 이 책의 Second Edition에 반영되었다.

“당분간은 책 쓸 생각이 없습니다.” 최 실장은 이제는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가 바빠지게 되므로 책을 쓸 엄두를 못 낸다고 설명했다. 이 책의 3편을 기대하던 국내외의 많은 독자들에게는 실망스러운 얘기다.

대신 최 실장이 그동안 갈고닦아온 테크닉은 교육이란 형태로 제공된다고 한다. 최 실장은 중앙대 DCRC와의 협약으로 조만간 교육사업도 벌일 계획이다. DCRC 마야애니메이션 과정을 오는 5월 시작된다.

잠깐 동안 최 실장이 강남의 모 학원의 운영에 관여하다가 결별한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 최 실장은 교육을 장사의 수단으로 삼는 일부 학원의 행태를 비판하면서 다음과 같이 심경을 토로했다. “작업을 하는 저희로서는 장사를 하는 사람들과는 물과 기름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최 실장은 강력히 주장한다. “교육시장은 돈을 벌기위한 수단이 될 수 없습니다.” 학생을 단순히 상업적 수단으로 생각하는 일부 학원의 마인드 자체에 염증을 느낀다는 최 실장. 이번 교육사업은 수익창출이라기 보다는 인재를 키우는 기회로 활용하겠다고 얘기한다. “교육과정에는 프로젝트에서 실제 쓰이는 씬 파일을 공개할 계획입니다. 이를 통해 실전 감각도 키우고.. 또 훌륭한 인재가 있다면 사원으로 충원도 하고..”

외주작업으로 번 돈 애니메이션 기획에 투여

방송국 CG 작업자 출신인 최 실장 때문인지 쏠쏠하게 외주 작업이 들어오는 편이다. 요즘에는 SBS와 KBS의 작업을 맡아 한다고 한다. 주로 하는 일은 방송사 이미지를 나타내는 그래픽작업인 스테이션 ID 작업과 타이틀 작업이다. 이 작업은 회사를 유지하는 비용으로 충당된다. 외주작업으로 번 돈은 회사 유지와 애니메이션 기획에 투여된다고 최 실장은 설명한다. 이러한 작업패턴은 TV시리즈이든 극장 프로젝트이든 어느 정도 구체화될 때까지 계속될 전망이라고 한다.

직원들에 대해 물어보았다.

“직원들에게 너무나 고마움을 느낍니다.” 최 실장에 따르면 아크스튜디오의 직원들은 본격적으로 작업에 돌입한 지난 2년여 동안 단 한 명도 중도에 그만둔 일이 없었다고 한다. “직장 일 한다는 개념의 사람이 없습니다. 스스로 룰을 정해서 일을 하고 있고..” 대부분의 직원들은 최 실장으로부터 CG를 배운 사람들이고 최 실장을 따른다. 최 실장 역시 이들의 실력은 물론 성품까지 인정하고 있다.

최 실장은 믿고 따라오고 있는 직원들에게 적절한 대우가 따르게 하겠다고 약속한다. “프로젝트가 정상궤도에 오른 뒤에 들어오는 사람들과 지금의 멤버들과는 일정한 차이를 두겠습니다.” 회사라기보다는 무슨 의리 운운하는 조직 같기도 하지만. 어쨌든 똘똘 뭉쳐있는 그 모습이 보기 싫은 건 아니다. 초창기에 고생했던 멤버들을 너무 우대해서 문제인 경우도 있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대우를 받아 마땅한 것 아닌가?

내년은 도약의 한 해!

“올 해만 버티면 내년은 도약할 것입니다!” 그동안 쌓아왔던 팀웍과 실력을 올 해 다양하게 선보이는 기획에 쏟아 부으면, 내년쯤에는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게 최 실장의 전망이다.

이를 위해 요즘 최 실장은 어떻게 하면 좋은 퀄리티의 애니메이션을 빠른 시간 내에 만들 수 있을까하는 고민을 하고 있다고 한다. 주위에서 최 실장은 머리가 비상하다는 얘기를 들었다. 내 개인적인 느낌도 그렇다. 뭔가 그로 인해 좋은 파이프라인이 고안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최 실장은 고수익이 보장되던 방송국CG실을 애니메이션을 만들고자하는 일념으로 박차고 나왔다(7년차 때는 웬만한 대기업 이사 정도의 월급을 받았다고 한다). 인생을 어떻게 사는 게 좋을까.. 고민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좋은 애니메이션을 만들자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그리고 이제 애니메이션을 본격적으로 만들기 전 단계까지 이르렀다.

애니메이션 제작에 온 정성을 바치는 최재진 실장과, 동고동락하면서 최 실장을 믿고 따르는 사원들.. 조만간 어떤 엽기적인 토끼와 거북이가 아크스튜디오에서 만들어져 우리를 당혹(?)스럽게 만들까.. 자못 기대된다.

* 인터뷰는 최재진 실장과의 개인적 친분으로 자연스럽게 진행되었지만, 독자를 고려해 경어체로 편집했음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