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3호선 동대입구역, 장충 체육관 반대편 쪽에서 내려 약수역 쪽으로 내려가다가 골목을 꺾어지면
빌라들이 즐비한 주택가가 나온다. 이 가운데 한 곳에 선우엔터테인먼트의 프로젝트 스튜디오가 자리 잡고 있다. 빌라 1층에는 아담한 사무실이 꾸며져 있었다.
이 곳에서 김민호 팀장을 비롯한 스텝들은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 프로젝트인 ‘여우비’의 사전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김민호 팀장은 특유의 턱수염과 안경이 인상적인 얼굴로 기자를 맞아주었다. 이 곳에서 기자는 김
팀장이 현재 진행 중인 극장용 애니메이션 ‘여우비’와 그의 팀 ‘엔스마’에 대한 얘기를 들어 보았다.
여우비
인간이 되고 싶어 하는 꼬리 다섯 달린 구미호 소녀의 모험과 풋사랑을 담은 애니메이션 ‘여우비’. 지난 2002년 프랑스 앙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 장편 부문 그랑프리를 거머쥐어서 한국 애니메이션의 주가를 한층 드높였던 ‘마리이야기’ 이성강 감독의 차기작이다.
김민호 팀장은 ‘마리이야기’에 이어 이번 ‘여우비’ 프로젝트에서도 3D 파트를 담당한다. 김 팀장은 ‘마리이야기’에서 셀 애니메이션과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3D 그래픽으로 국내외에서 호평을 받은 바 있다.
“3D작업에 있어서는 ‘마리이야기’ 때보다 퀄리티가 두 배 이상 올라갈 것입니다.” 김민호 팀장은 자신감을 내비쳤다. 김 팀장은 이어
3D가 들어가는 분량 또한 두 배 이상 된다는 말을 덧붙였다.
‘여우비’의 스토리는 다음과 같다. 인간들과 함께 살고 있는 여우비라는 열 살짜리 구미호 소녀는 학교에서 잘 생긴 미소년을 보고 반해
버린다. 이에 인간이 되기로 결심을 하고 함께 사는 외계인들과 함께 인간이 되는 방법을 알고 있을 또 다른 구미호를 찾아간다.
이 작품은 이성강 감독의 전작 ‘마리이야기’와 같이 2D와 3D를 합성해서 제작된다. 김 팀장은 ‘마리이야기’ 때 시도했으며, 그 이후
2년 동안의 공백기 동안 갈고 닦았던 NPR(Non Photorealistic Render) 실력을 이번 작품에서 한껏 선보일 예정이다.
“스케치같이 손으로 그린 듯한 선을 표현할 것입니다.” ‘여우비’ 데모를 본 기자는 김 팀장의 말처럼 어느 부분이 손으로 그린 것인지,
어느 부분이 3D 작업을 한 것인지 분간하기가 힘들었다.
NPR
최근 한 중국 작품의 소개로 NPR 작품이 국내에서는 화제다. 마치 손으로 그린 듯한 수묵담채화를 연출한 이 작품으로 다시 부각된 NPR이란
분야에 대한 김 팀장의 의견을 물어보았다. 이에 대해 김 팀장은 왜 요즘 새삼스레 이 부분에 관심을 가지는지 의아하다는 반응이었다. 김
팀장에 따르면 그 작품에 소개된 기법은 그리 새로울 것도 신선할 것도 없다고 한다.
“이미 NPR은 일본, 미국에서는 대중화된 방식입니다. 3D 소프트웨어들의 쉐이더 자체가 많이 발달되어 이제는 쉽게 처리할 수 있습니다.”
김 팀장이 추천하는 NPR 기술이 훌륭하게 적용한 작품은 ‘애니매트릭스(The Animatrix)'의 6번째 단편 애니메이션 ’저 너머의
세계(Beyond)'란 작품이다. 역동적으로 카메라가 연출된 곳을 보면 3D 티가 전혀 나지 않게 표현되어 있다는 게 김 팀장의 의견이다.
“애니메이션의 미래를 볼 수 있습니다.” 'Beyond'의 NPR 기술을 김 팀장은 이처럼 극찬했다.
‘여우비’의 배경은 대부분 3D를 거쳐서 작업할 예정이라는 게 김 팀장의 설명이다. ‘마리이야기’ 때 했던 작업을
좀더 발전시킨 ‘여우비’의 작업 공정은 다음과 같다.
1. 먼저 디자인에 맞춰 러프하게 로우 폴리 상태(Low-res Poly)로 세트를 만들어 놓는다.
2. 콘티가 나온다. 이에 맞춰 미리 만들어놓은 세트를 갖고 카메라 연출을 한다. 일종의 프리비주얼라이제이션(Previsualization)인
셈이다.
3. 이 영상을 갖고 회의를 한다.
4. 카메라가 역동적인 경우 풀 3D로 배경을 표현하기로 하고 로우 폴리 상태의 배경 세트를 좀더 정교하게 가다듬는 작업을 한다.
5. 카메라가 평면적일 경우, 세트를 렌더링 한 뒤 이를 밑그림으로 해서 배경 팀에서 2D로 리터치한다.
그림을 클릭하면 해당 동영상이 나옵니다
6. 이 두 가지 배경 위에 캐릭터 팀에서 캐릭터를 알맞게 그려 넣는다.
그러니까 모든 배경은 결국 3D를 기초로 탄생하는 셈이다. 이 밖에 3D는 메카닉과 새장, 나는 세숫대야 같은 사물들을 표현하는데 사용된다.
또한 눈이나 불, 대나무 같은 자연물, 구름 등 특수효과 역시 김 팀장의 3D 팀 몫이다.
“작품의 특성상 티 안 나게 표현하는 게 중요합니다. 그동안의 연구 결과 이미 이 부분은 검증이 난 상태입니다.”
이제 본 작업 들어가면 본때를 보여주겠다는 각오였다.
‘여우비’의 3D작업은 마야가 사용될 예정으로, NPR 효과를 위해서는 주로 마야의 자체적인 벡터렌더러와 톰캣(Tomcat)이라는 플러그인이
사용된다고 한다. “주로 톰캣을 쓸 예정인데, 아직은 나온 지 오래되지 않아 버그가 많은 게 문제점입니다.” 벡터렌더러는 버그 보다는 선이
너무 깔끔하게 나와서 프로젝트에는 조금 맞지 않지만 합성시 조정을 해서 쓴다고 김 팀장은 설명했다.
과연 어떤 애니메이션이 우리 앞에 등장할지 궁금해진다. 기술은 물론 내용에서도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는 좋은 애니메이션의 탄생을 기대해
본다.
엔스마 Nthma
‘마리이야기’ 작품 이후 김민호 팀장은 공백기를 자처했다. 프로젝트 하나에 매달리면서 김 팀장은 체력과 실력이 많이 소진되었음을 느꼈다고
한다. 이 바닥난 체력과 실력을 보충하는 기간으로 김 팀장은 2년을 잡았다. 이 와중에 탄생한 것이 엔스마(Nthma)라는 팀이다.
엔스마(Nthma)는 열정과 광기, 작품과 향취라는 뜻의 단어를 결합시킨 단어로 합쳐보면 열정을 모아 작품으로 승화시킨다는 뜻이 도출이
된다는 게 김 팀장의 설명이다. 이 팀은 현재 모두 15명 정도가 있다.
“회사와 학원의 중간쯤 되는 형태로 보면 됩니다.”
엔스마는 두 가지 파트로 나눠진다. 내부에서 3D에 대한 연구를 하는 R&D 팀, 외부에서 상업적인 활동을 하는 커머셜(Commercial)
팀, 이 둘이 그것이다.
‘여우비’ 본 작업에 참여할 팀은 커머셜 팀이다. 나머지는 R&D 팀에 속하며, 지속적으로 자신의 실력을 갈고 닦는다. 이들에게
김 팀장은 사무실을 제공해 주고, 출퇴근 관리와 매달 과제를 점검해 준다. 과제란 월초에 각자 한 달 동안 갈고닦을 파트를 스스로 선택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면 털 효과나 천 시뮬레이션, 불 효과 등이 그것이다.
이렇게 연구된 과제들은 한 달에 한 번 정리된다. 이 자료는 차곡차곡 쌓여 엔스마의 자산이 된다. 김 팀장은 이 연구 성과를 외부에 무상으로
공개하기도 한다. 바로 cgLand의 한 캠프인 Pub3D(http://camp.cgland.com/Pub3D)를
통해서다.
Pub3D는 엔스마에서 관리하고 있다. 캠프는 외부와 엔스마를 연결해 주는 창구역할을 한다. 또한 내부적으로 자료를 정리하는 데이터베이스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매달 마지막 토요일로 잡은 Pub3D의 공개강좌는 엔스마의 연구결과를 발표하는 장이기도 하다. 꽤 유기적인 구조로
운영이 된다. 이른바 원소스멀티유즈 방식이 R&D에도 적용되는 셈이다.
이 강의에는 김 팀장도 라이팅 관련한 코너로 지속적으로 참여한다. 이 강의는 30강으로 계획되어 있으며 나중에 책으로도 만들어질 예정이다.
책 제목은 ‘일루미네이터를 위한 디지털 라이팅과 렌더링’. 라이팅과 렌더링 관련 서적에 목말라하던 관련 작업자들에게는 기대가 되는 책이다.
물론 책이 우리 눈 앞에 보여지는 것은 앞으로 1년 정도 뒤가 될 것이지만..
Nthma 팀원들
엔스마라는 팀을 만들게 된 데에는 ‘마리이야기’ 작업 때의 경험이 큰 작용을 했다고 한다. 김 팀장의 지금 생각은 팀장이 팀원을 뽑아야
한다는 주의. 이게 '마리이야기‘ 때는 잘 되지 않아 나름대로 마음고생을 했던 것 같았다. 그러한 경험들이 엔스마라는 팀을 구상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팀웍을 위해서 자기 팀원은 팀장 스스로 뽑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엔스마의 2003년 R&D작품 '드래곤 Episode1'
R&D 팀은 자기가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이면서도 철저하게 지켜야할 수칙이 있는 회사다. R&D 팀에는 Staff Daily라는
일지가 있다. 출퇴근시간과, 작업시간, 매일 작업진도 등의 내용이 들어있다. 이를 김민호 팀장은 매일 점검하고 평가한다. 불성실하면 나중에
경고도 받는다고 한다.
몇 년 뒤 김 팀장은 프로덕션을 만들 계획이다. 엔스마에서 현재 진행 중인 여러 가지 시도는 미래 엔스마 프로덕션의 밑바탕이 될 것이라는
게 김 팀장의 설명이다. “2006년쯤에는 현재의 엔스마를 발전시켜, 엔스마 프로덕션을 만들 계획입니다. CG 영상의 모든 것을 다룰 생각이지요.”
엔스마에서는 지금까지 매년 한두 작품씩 단편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있다. 지난 2003년에는 ‘LoveHolic’과 ‘드래곤 episode1’이란
작품을 선보였다. 올해는 ‘연(緣)’이라는 작품을 준비 중이다. “지난해까지의 작품이 R&D성 작품이라고 하면, 올해 만드는 ‘연’은
작품성까지 생각해서 작업하고 있습니다.” 과연 어떤 작품이 엔스마에서 나오게 될지 한 번 기대해 보자.
엔스마의 2003년 R&D작품 'LoveHolic'
김민호 팀장은 왠지 도를 닦는 듯한 느낌을 풍기고 있다. 안경 저 너머에 번뜩이는 눈빛과 예술가같은
느낌의 턱수염. 꽤 인상적이고 개성적인 외모다. 말솜씨 또한 일품이다. 차근차근 설명하는 게 꽤 세련되어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김민호 팀장에게
어울리는 단어가 있다면 체계적이라는 단어가 아닐까 한다. 같이 얘기하면서 철저함, 체계적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참고로 얘기하자면 김 팀장의
대학 때 전공은 수학이었다고 한다. 그것 때문인가?
김민호 팀장은 지금 하나의 실험을 엔스마라는 팀을 통해서 하고 있다. 그 실험의 결과 우리 CG업계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킬 시스템을 갖춘 회사가 나올지 자못 기대가 된다. 또한 조만간 본 작업에 들어갈 ‘여우비’를 통해 어떤 수준의 아름다운
영상을 만들어낼지 궁금하다. 한 단계, 한 단계 차근차근 밟아나가는 그의 거취를 주의 깊게 지켜보도록 하자.
‘여우비’의 자세한 내용을 보려면 www.yeuwoobi.co.kr 을 방문해 보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