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년간 우리 애니메이션 업계의 주된 관심사는 어떻게 애니메이션을 만드느냐였다.

한 때 우리나라는 붐에 가까울 정도로 창작 애니메이션의 기획과 제작이 활성화되었다. 불과 몇 년 전의 일이다. 이 작품들 가운데 일부는 다행히도 끝까지 만들어져 최종 영상을 시청자나 관객에게 선보였지만, 모든 작품들이 그런 것이 아니었다.

중도에 중단되는 애니메이션 프로젝트들이 잇따라 발생되었으며, 제작회사가 문을 닫는 경우도 종종 벌어졌다. 또한 완성된 애니메이션 가운데 관객이나 시청자로부터 호응을 받은 작품은 그리 많지 않았다.

많은 실패를 겪고 난 뒤 사람들은 그 원인을 분석했다. 실패요인 가운데 많은 지적을 받았던 것은 자본력의 부족과 마케팅의 미숙.

이제 애니메이션 업체들은 어떻게 만드느냐 뿐만 아니라 어떻게 판매해야 되는지도 고려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각인하게 되었다.

아직은 척박한 국내 애니메이션 마케팅 산업을 개척하는 업체가 있다. 30년의 애니메이션 제작 전통을 바탕으로 애니메이션 기획과 투자, 배급 등을 총괄하는 대원C&A홀딩스가 그 회사다.

이 회사는 어떠한 전략으로 독보적인 애니메이션 유통업체로 거듭났을까? cgLand는 대원C&A홀딩스(이하 대원C&A)의 이상돈 이사를 만나 그 자세한 상황을 알아보았다.

대원은 국내는 물론 세계에서 보기 드문 회사다. 만화, 애니메이션 관련한 미디어 산업을 한꺼번에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화 관련 출판 산업은 대원CI가, 애니메이션 방송은 애니원TV가, 애니메이션 기획 및 배급은 대원C&A가 각각 관련 산업을 리드하고 있다.

이상돈 이사가 속해있는 대원C&A가 하는 일은 매우 다양하다. 우선 조만간 SBS에서 방영될 ‘범퍼킹 재퍼’를 비롯, ‘큐빅스’, 한일 공동 제작 중인 ‘신 암행어사’ 등 국산 창작 애니메이션의 기획과 투자 등을 담당하고 있다. 또한 국산 애니메이션의 해외진출 발판을 마련해 주기도 한다.

이와 함께 지난 해 개봉했던 ‘고양이의 보은’이나 ‘붉은 돼지’ 등 극장용 애니메이션 영화 배급 역시 대원C&A에서 맡는다. 물론 이들 애니메이션의 DVD, 비디오, TV 방영 등 부가판권 관련 업무도 포함해서이다.

애니메이션 실 제작을 제외하고 거의 대부분에 참여하고 있는 셈이다. 사실 이 부분은 우리나라에도 운영의 노하우를 갖고 있는 회사가 그리 많지 않다 이러한 배경에 대해서 이상돈 이사는 “30여년의 애니메이션 제작을 바탕으로 만들어 놓은 경험과 해외 네트워크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대원C&A는 4년 전 그동안의 애니메이션 제작 시스템을 정리하고, 현재의 프리프로덕션과 배급 위주의 전문 회사로 거듭나게 된다. 시대의 흐름에 따른 결과이다. 시장 논리인 ‘선택과 집중’을 따른 현명한 결정이었다고 이 이사는 자평한다.

창작 애니메이션 발굴과 투자

요즘 이 이사가 주력하고 있는 분야는 창작 애니메이션의 발굴과 투자다. 이를 위한 효과적인 방안으로 일본이나 미국 등 선진국들과의 합작을 제시한다.

“일단 우리의 자체적인 시장이 작고, 관련 창작 애니메이션 기업들이 영세한 반면, 투자부담은 제작사들이 모두 지고 있는 형편입니다.” 이 이사는 국내 애니메이션 창작업계의 상황을 이같이 진단한다.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대원 C&A는 해외합작을 선택했다. “지금 일본과 제휴해서 일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현재 일본과 제휴해서 진행 중인 애니메이션 프로젝트는 ‘신 암행어사’와 ‘포트리스’ 등이다.

이전의 하청 작업과는 그 내용이 완전히 다르다고 이 이사는 강조한다. “요즘은 우리 원작을 우리가 기획한 작품으로 주도적으로 일본의 머천다이징 회사를 끌어들여 제작을 해 나가고 있습니다.”

대원C&A는 한 회사와만 오래 계약을 하지는 않을 방침이라고 한다. “좋은 아이디어를 계속 살릴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야 산업이 발전합니다. 아이디어가 좋은데 마케팅이나 자본력이 없는 업체와의 공동제작을 계속 벌여나갈 계획입니다.”

창의력 필요

이상돈 이사는 원래 금융 쪽에 있었다. 펀드매니저와 애널리스트로 활동하던 그가 대원과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 2001년. 이 이사는 펀드매니저 때와 지금 하는 일이 그리 다른 것만은 아니라고 얘기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주로 하는 일은 가치를 분석하는 일입니다. 큰 차이 없다는 걸 느꼈습니다.”

3년 이상 이쪽 부문을 개척하는 이상돈 이사에게 느낀 점을 물어 보았다.

“기술적으로 우리 애니메이션은 세계 수준에 상당 부분 접근했습니다. 하지만 창의력 부분에서는 상당한 격차가 있구나하는 걸 느꼈습니다.” 또한 이야기가 매끄럽게 진행되지 않는다는 지적을 해외 협력업체 사람들로부터 많이 받았다고 이 이사는 말했다.

이에 따라 시나리오 단계에서의 좀더 치밀한 투자가 필요하다는 게 이 이사의 생각이다. “시나리오가 중요하다는 인식은 누구나 있습니다. 하지만 생각과 행동에는 차이가 있더라고요. 시나리오 비용이 3000~5000만원이 든다고 하면 대뜸 ‘뭐 그렇게 비싸냐’고 하는 게 현실입니다.”

마찬가지로 기획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것도 지적했다. “좋은 작품이란 기획에서 묵혀져야 나오는 것인데.. 설익은 것을 그대로 내오는 경우를 종종 발견하고 안타까웠습니다.”

희망

그러나 동시에 희망도 발견했다고 한다. “이쪽 시장은 역동적으로 성장하고 있으며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닙니다.” 이 이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애니메이션.만화 시장은 미국과 일본을 제외하고는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그리고 게임을 포함해서 업계에는 많은 인재들이 배출되고 있다.

또한 내수 시장 역시 희망적일 거라는 예측을 한다. “이제는 우리나라도 60, 70년대 TV애니메이션을 보았던 세대들이 부모가 되어 자식을 키우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나라도 애니메이션을 부모와 자녀가 같이는 풍토가 조성될 것이라는 게 이 이사의 예측이다.

이 이사는 이어 어린이 문화는 장벽이 낮다고 강조했다. 장벽이 낮은 만큼 잘 만들면 세계 곳곳에 쉽게 배급할 수 있다는 게 이 이사의 생각이다. 우선 잘 만들어야 하는 게 그 바탕이 되어야 함은 두말할 필요 없는 소리다. “세계 유수의 작품들을 보고 자라다 보니 우리나라 어린이들도 눈이 높아졌습니다. 세계 시장 수준을 상대할 수 있는 품질이어야만 우리 어린이들에게도 통용될 것입니다.”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부분은 창작에 속하는 일이지만, 세계시장에 팔아야 하는 일은 냉엄한 비즈니스의 분야다.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이상길 애니메이션산업 팀장은 MIPTV나 NAPTE 등 애니메이션 견본시에는 배급사들이 가야한다고 얘기했다. “견본시들은 제작사 판이 아니라 배급사들의 각축장입니다.”

이러한 배급사들의 각축장에서 전문가로 활동하는 회사를 꼽자면 대원C&A와 아이코닉스엔터테인먼트가 거론된다.

이상돈 이사는 이번 인터뷰에서 해당국에 우리 작품을 잘 런칭시킬 수 있는 우수한 배급력을 갖고 있는 회사와 지속적인 관계를 맺어가며 우리 애니메이션을 수출하겠다며 전략을 밝혔다. 또한 우수한 기획을 갖고 있다고 판단되면 적극적으로 지원을 해주겠다는 의사도 밝혔다.

이러한 대원C&A의 노력이 우리 애니메이션을 세계시장에 보다 널리 알릴 수 있는 초석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cgLand 송근우 기자 egtree@cgland.com

 

 

아이디어 참신성, 캐릭터성

그럼 어떤 회사가 공동제작 업체의 대상일까? 이 이사는 아이디어의 참신성을 우선적으로 꼽는다. “다른 나라와 비슷한 캐릭터와 스토리, 소재로 그들보다 더 잘 만들 수 있기에는 아직 우리나라의 경험이 많이 모자랍니다.” 이러한 상황을 인정하고 참신한 아이디어로 세계 시장을 뚫어야 한다고 이 이사는 강조한다.

“‘큐빅스’는 한국적이면서 서구적이고, 큐브나 레고 같은 것으로 변신하는 참신한 아이디어가 주효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와 함께 디자인스톰과 공동 제작 중인 ‘아이언키드’의 참신성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로봇이 칼을 쓰고, 표창을 날리고, 장풍을 쓰는 로봇 무협 액션물은 이것이 처음입니다.” 이 이사는 ‘아이언키드’ 역시 국내외에서 좋은 결과를 낼 것을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두 번째로 꼽는 게 캐릭터성이다. “저희는 세계 시장에 눈길을 끌 수 있다고 판단되면 관계를 맺습니다.” 캐릭터성 여부의 판단은 일본과 미국의 배급사의 안목에 맞추고 있다고 한다. “저희는 오랜 기간 일본이나 미국 관련사와 업무 진행을 해 오면서 그들의 기호나 선호도를 파악하고 있습니다.”

이 두 가지를 충족시키는 작품이 있을 때 대원C&A는 적극적으로 협력 관계를 맺어 마케팅 쪽에 대한 조언과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고 이 이사는 덧붙였다.

직접 기획 작품

대원C&A는 직접적으로 소재를 발굴해서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기도 한다. 대원과 라퓨타엔터테인먼트가 같이 제작하는 ‘수호전사 맥스맨’이 그것이다. 98, 99년 TV에 방영되어 많은 어린이들의 호응을 받았던 ‘지구용사 벡터맨’과 같이 실사와 CG, 미니어처를 합성한 작품이다.

이와 함께 현재 컨셉을 잡고 있는 ‘눈보리’라는 작품이 있다. ‘눈보리’는 컨셉을 설정한 다음 전문 제작사를 선정해 제작을 진행할 예정이다.

또한 진동조 작가의 베스트셀러 환타지 소설 ‘묵향’으로 벌써 2년 넘게 기획과 컨셉 디자인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묵향’의 경우 탄탄한 스토리와 중세 무협과 중세 환타지의 결합으로 볼거리가 많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이 이사는 관련한 카드게임에 대한 연구에도 박차를 가한다고 말했다.

해외 시장 진출의 어려움

대원C&A는 차근차근 해외 시장을 개척해나가려는 계획이다. “단기간에 큰 돈 벌어들이는 욕심보다 장기적으로 해외의 우수한 배급력을 갖고 있는 회사와 꾸준히 신뢰관계 쌓아나갈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성급하게 첫 작품에 무리한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는 이 이사의 말은 환영할만하다.

“현재 얼마를 더 받느냐 보다는, 애니메이션을 사간 회사가 해당 국가에서 얼마나 잘 런칭시킬 수 있느냐가 중요하거든요.” 이에 따라 이 이사는 거래하는 회사가 우리 애니메이션을 신경 쓰고 적극적으로 배급할 수 있는지를 판단기준으로 삼고 외국 배급사와 계약을 한다고 한다.

이 이사는 솔직히 우리 애니메이션의 해외 마케팅이 쉽지는 않다고 털어 놓았다. 아직 우리나라 애니메이션의 인지도가 해외에서는 전무하다시피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 애니메이션 업계도 다수의 작품을 창작하는 경우는 아직 많지 않다.

“믿고 거래하려면 적어도 세 번 이상의 작품을 완성한 경험이 있어야 합니다.” 해외업체도 우리와 거래하려면 관련된 근거나 자료가 있어야 하는데 아직 우리나라는 그러한 믿을 수 있는 데이터가 축적되지 않았다고 이 이사는 덧붙였다.

국내 애니메이션 업계의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대원C&A가 그동안 달성한 업적은 적지 않다. 그 가장 대표적인 것이 ‘큐빅스’로, 대원C&A는 미국의 포키즈엔터테인먼트와 접촉해서 미국 공중파 방송 황금시간대에 방영케 했다. 이 일은 한국 애니메이션이 미국 땅에서도 통용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이상돈 이사는 앞으로도 세계 각국의 배급력 뛰어난 회사와 관계를 꾸준히 이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기존의 포키즈엔터테인먼트, 쇼가구칸프로덕션, 반다이비주얼 등과 공동제작과 공동투자를 지속할 것입니다.”

특히 일본과의 공동제작은 득이 많다고 한다는 게 이 이사의 설명이다. “‘신 암행어사’는 일본 쇼가쿠칸, OLM 등과 같이 작업하는데 이를 통해 기술과 노하우를 많이 습득할 수 있을 거라 예상합니다. 특히 포켓몬스터 극장판으로 세계에 알려진 OLM의 브랜드 이미지는 미국 등 외국 수출에 유리하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