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학’이라고 있다. 실패를 조명한 뒤, 발전의 계기로 삼는 것을 말한다. 최근 일본에서 붐인 모양이다.

“좋은 스토리를 만들지 못한 게 첫 번째 이유지요.”

‘원더풀데이즈’의 프로듀싱을 담당했던 이경학 PD는 작품이 흥행하지 못한 이유를 탄탄하지 못했던 스토리에서 찾았다.

“맨 처음에 데모를 만들고 나니까 반응이 좋았습니다. 그래서 서둘러 작업 파이프라인을 구축했지요. 그 다음에 스토리를 다듬었습니다.” 그러나 이게 잘못된 순서였다는 것을 뒤에 작업하면서 뼈저리게 느꼈다고 이 PD는 회고했다.

우선 투자부터 받고난 뒤 사람들을 모으고 작업을 진행하려다 보니 예상치도 못했던 일들이 거듭 생겨났다. 파이프라인 세팅하는 데도 시간이 걸렸고, 시나리오 역시 고치고 또 고치고를 반복했다.

그렇다고 작업자들을 놀릴 수도 없었다고 한다. 시나리오가 완성되기를 기다릴 수만은 없었다. 따라서 덜 완성된 시나리오를 갖고 작업에 돌입했다고 한다. 한 마디로 순서가 뒤바뀐 작업공정이었다.

“순서대로 해야 합니다.” 이 PD는 인터뷰 내내 이 말을 강조했다.

정말 중요한 시나리오와 프리프로덕션

틴하우스의 차기작은 과연 차근차근 서두르지 않고 진행해 나가고 있다. 이 작품은 벌써 2년째 시나리오 작업을 진행 중이다.

이제야 어느 정도 흥미 있는 구성의 시나리오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혹독한 수업료를 치룬 결과다. 어떤 시나리오인지도 공개하지 않는다. 재미있을 때까지 고치고, 고치고 또 고치는 작업을 반복해 왔다고 한다.

“좋은 시나리오 만들기란 정말 어렵습니다.” 일단 우리나라에는 믿을만한 작가층이 엷다는 지적이다. “정말 원하는 품질만 나온다면 10억을 줘도 아깝지 않습니다.”

이 PD에 따르면 시나리오는 상대평가나 온정주의가 절대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절대적으로 재미있을 때까지 계속 익혀가야 합니다.” 현재 틴하우스 차기작을 집필하는 작가는 2년째 시나리오를 고치고 있는 중이다.

요즘은 미국의 배급사에 보여주기 위해 영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측의 반응 여부에 따라 얼마를 더 고쳐야 할지는 아직 미지수라고 한다.

과연 어떤 시나리오가 나올지 사뭇 기대가 된다.

버리기

이 PD는 이어 버리는 것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영화에서는 시나리오에서 캐스팅으로 넘어가는 단계에서 할지 안 할지를 결정합니다. 이러한 손절매 타임이 애니메이션에서는 시나리오와 스토리릴까지라고 생각합니다.” 이 PD는 이 때 정확한 판단을 해서 될지 안 될지를 판단, 바로 행동에 옮기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대략 이때까지 드는 비용은 3~5억 원. 이 비용은 되는 프로젝트인지 안 되는 프로젝트인지를 구분하기 위한 최소 비용인 셈이다. 이때 안 된다고 평가가 내려지면 미련 없이 사업을 접고 다른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고 이 PD는 조언한다.

“영화는 모든 스텝이 프리랜서이고, 프리프로덕션 단계는 기획사에서 기획하므로 몇 년의 공을 들이더라도 큰 비용이 들지 않습니다. 또한 기획단계에서 버리는 게 손쉽지요.”

그러나 지금까지 애니메이션 업계는 그렇지 못했다고 이 PD는 설명한다. “일정한 파이프라인이 구축된 기존 애니메이션 회사는 일단 몸이 무거워, 버리는 게 쉽지 않습니다.”

그동안의 하청 제작시스템을 창작 시스템에도 그대로 적용했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나왔다는 게 이 PD의 분석이다. “하청을 하려면 일정한 인력확보가 기반이 돼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일정한 파이프라인이 필요했었죠.”

이 PD는 따라서, 차기작에 대해서는 기획과 제작을 철저히 분리하겠다고 밝혔다. “다음 작품에는 제작 파이프라인은 (자체적으로) 안 가질 생각입니다.”

그래도 원더풀데이즈

“‘원더풀데이즈’를 통해 애니메이션이 실사영화보다 세계시장에 나가는 콘텐츠로는 더욱 적합하다는 걸 확인했습니다.” 이경학 PD에 따르면 ‘원더풀데이즈’는 지금까지 수출된 우리 영화(애니메이션, 실사 영화 통틀어서) 가운데 세계 각 지역에서 가장 많은 수익을 벌어들였다(물론 아직 ‘태극기 휘날리며’와 ‘실미도’ 같은 대작이 더 좋은 가격에 팔릴 가능성이 높겠지만 일단 작년을 기준으로).

좀더 직설적으로 이경학 PD는 다음과 같은 표현을 하면서, 애니메이션이 해외 판매에 유리함을 설명했다. “못 만들었음에도 가격을 높게 받았습니다. 그 증명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원더풀데이즈’의 지금까지 해외판매 실적은 다음과 같다. 프랑스 50만 달러(6월 개봉 예정), 대만 30만 달러(‘쉬리’는 17만 달러에 팔렸다), 독일 30만 달러, 스페인 16만 달러 등 모두 112만 달러 정도 된다.

그리고 현재 미국 등 영어권 국가와 일본 등과 협상을 진행 중이라고 한다. 이 계약을 통해 400만 달러의 해외 판매 실적이 추가될 전망이라고 이 PD는 밝혔다. 이는 비디오나 DVD 판매수익은 계산이 안 된 것으로 앞으로도 수익이 추가가 될 가능성은 높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도 국내에서의 10억 원 수익과 해외 판매에서 예상되는 50억 원, 총 60억 원의 수익으로는 총 투자 비용인 100억 원을 커버하기란 턱없이 부족하다. 하지만 문화산업이란 게 단기간의 수익만 생각해야 할 것은 아니다.

일단 ‘원더풀데이즈’ 배급을 맡았던 외국의 배급사들이 차기작에 대해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데 의의가 있다. 틴하우스는 이에 탄력을 받아 차기작을 좀더 치밀하게 준비하고 있다.

또한 미국의 경우 모든 윈도우(영화, DVD, TV방영 등)를 거치는 데 7년이라는 긴 시간이 든다는 것. 이를 통해 부가 수익이 지속적으로 창출되는 상황을 봤을 때 ‘원더풀데이즈’가 앞으로 어떤 추가수익을 벌어들일지 모르는 상황이다.

무엇보다도 무엇이 되고 안 된다는 것을 제대로 짚어보는 기회를 가졌다는데 큰 성과가 있었다. “일단 그림 퀄리티는 세계시장에 통용될 정도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이 PD는 ‘원더풀데이즈’를 시작했을 당시만 해도 그림 퀄리티가 세계시장에 어떻게 어필될지 조차 가늠할 수 없었다며 초기의 힘들었던 상황을 털어놓았다.

“이제는 그 바탕 위에 스토리를 더 다듬어야지요.” 이경학 PD는 또 한 번 시나리오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취재하면서 틴하우스는 영구아트무비와 참 닮은 점이 많다고 느꼈다.

우선 첫 작품에 큰 수업료를 냈다. 또한 거기에 좌절하지 않고 딛고 일어서 다음 작품을 준비한다. 그리고 기존 경험을 바탕으로 더 좋은 파이프라인을 만들고 더 효율적으로 작업하려 한다. 실적은 그렇게 만족스럽진 않지만 그래도 해외에 널리 알려졌으며, 이를 바탕으로 차기작은 더 나은 조건 속에서 계약될 것이 기대된다.

그동안 우리 애니메이션 업계에서는 한두 작품만 세상에 내놓고 사라지는 회사도 있었고, 데모만 만들던 회사도 있었다. 창작 애니메이션 제작사 하나가 사라진다는 것은 단순하게 회사 하나가 망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그 회사가 쌓아왔던 모든 경험들이 공중에 떠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업계에서의 크나큰 손실이기도 하다.

질책과 비난을 받기는 했지만 ‘원더풀데이즈’는 우리 애니메이션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작품이다. 이러한 경험을 고스란히 갖고 있는 틴하우스에서 차기 작품을 의욕적으로 진행하고 있다는 얘기는 매우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이번 작품은 전작의 제작경험을 토대로 더 훌륭한 작품이 되기를, 그래서 세계무대에 태극기 휘날릴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