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날이 한국 창작 애니메이션이 해외에서 성가를 드높이고 있다.

앙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 한국 작품 10편이 대거 진출했다는 소식에 이어, 지난 3월에는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도 여섯 편의 한국 애니메이션이 경쟁부문에 진출했다는 희소식이 들려왔다. 봄을 맞아 새싹들이 파릇파릇 돋아나듯, 우리 애니메이션 업계에도 겨울을 보낸 뒤 작은 희망들이 싱그러운 새싹을 하나둘씩 틔워나가고 있다.

cgLand가 만난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 장욱상 교수가 제작에 참여한 작품도 자그레브 애니메이션 페스티벌 공식경쟁부문(Grand Competition)에 올라갔다. 작품의 이름은 ‘인 더 포레스트(In the forest)'. 숲에서 갑자기 만난 늑대에게 쫓기는 피터라는 소년의 필사적인 도주를 코믹하게 그린 작품이다.

“미국 생활을 정리하면서 나름대로 CG인생을 한번 짚어보고 싶었습니다.” 김재홍, 박석원, 김혜진, 이재민, 최동혁 등과 함께 호흡을 맞춰 제작한 이 작품은 장 교수 개인적으로는 일종의 중간점검의 성격을 갖는다고 장 교수는 밝혔다.

CG를 시작한지 올해로 14년째를 맞는 장 교수로부터 그동안의 CG 작업에 얽힌 얘기를 들어보았다. 해외 유수의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서 경력을 쌓았던 장 교수의 얘기는 해외 진출을 모색하고 있거나 유학을 준비 중인 사람들에게 적지않은 참고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공모전을 휩쓸던 대학 시절

어떻게 CG를 시작했는지부터 시작했다.

“아마 삼성광고로 기억하는데, TV에서 금색 사람이 잠실 경기장을 들어올리는 광고를 보았습니다. 이 광고를 보고 재수 시절 미술을 시작했습니다.”

장 교수는 홍익대학교에서 섬유미술을 전공했다. 그러나 전공보다 장 교수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온 것은 컴퓨터그래픽이었다. 오토캐드로 CG에 첫 발을 들여놓은 장 교수는 조금 지나 3D 스튜디오를 접하고 놀라게 된다. “범프맵이 되는 것을 보고 감탄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당시 이것저것 메뉴를 눌러보면서 즐겁게 툴을 배웠었죠.”

대학시절 장 교수는 여러 가지 공모전에 작품을 출품해서 휩쓸고 다녔다. 실력 배양과 경제적인 성취라는 두 가지 토끼를 동시에 잡은 셈이었다. 이러던 장 교수는 어느 날 큰 자극이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4학년 때 과에 컴퓨터그래픽 동호회를 만들어 4개월여를 작업하고 3분짜리 작품을 만들어 출품했습니다.” 큰 상을 기대하던 장 교수에게 도착한 소식은 실망스럽게도 장려상이었다고 한다. 장 교수는 그 결과에 의아했다. 주관 기관을 찾아가 자초지종을 따졌다. 주관 기관에서 보여준 대상을 확인하고 장 교수는 충격을 받았다.

“대상과 우수상 수상작들이 너무 좋았습니다. 알고 보니 해외 유학생들의 작품이었습니다.” 장 교수는 한국에서의 계획을 접고 해외 유학에 떠나게 된다.

해외유학

반년 정도의 어학연수를 마치고 장 교수는 97년 여름부터 오하이오 주립대학 Art&Tech를 다니게 된다.

미국에서 CG와 관련해서 유서 깊은 과를 고른다면 오하이오 주립대학 Art&Tech와 텍사스의 A&M이 꼽힌다고 장 교수는 설명했다. “현재 CG 프로덕션의 팀장급은 이 두 곳 출신이 많습니다.”

장 교수는 이곳에서 3년 내내 장학금을 받으며 석사과정을 공부했다. 연구조교로 학내에서 프로젝트 작업에 참여함으로써 매달 1000달러의 장학금을 받았기 때문이다.

장 교수는 특히 동기들 운이 좋았다고 얘기했다. “모두들 열정적으로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매우 아티스틱한 사람들로, 보고 배울 점이 많았습니다.”

 

장 교수는 이때 시그래프로부터 좋은 소식을 듣게 된다. 99년 시그래프 학생부분에 ‘Only'와 'Under Consturction' 두 작품이 동시에 입선하게 된 것이다. 시그래프에서의 수상은 장 교수에게 무엇보다도 자신감을 안겨 주게 된다.

학교 측은 학교의 인지도를 높여준 장 교수를 렌더맨 아티스트로 디즈니에 추천했다. 그 즈음 블루스카이스튜디오로부터도 함께 일하자는 제의가 왔다. 학교에서 제출했던 학생들의 프로필을 통해 장 교수의 당시 홈페이지에 들어갔던 인크루트 담당자는, 라이팅을 공부하기 위해 계란과 오렌지를 사진과 비교해서 렌더링한 이미지를 보고 신선한 시도와 연구하려는 자세를 높이 사 스카웃 제의를 했다.

 

아이스에이지

“굉장한 회사입니다.”

블루스카이스튜디오에 대해 장 교수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업무적인 부분은 물론, 사람들 간의 정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작업장이었다고 회고한다.

“본 받을 만한 전통이 많이 있습니다. 직원들 간에는 평등하고, 노력하는 사람들에게는 상응하는 혜택을 베풀어 줍니다.”

블루스카이에는 일주일에 한번씩 2백여 명의 직원들을 모아놓고 작업한 것들을 서로 평가하는 전통이 있었다고 장 교수는 말했다. 이때 특별히 노력을 더한 사람이 있을 경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칭찬받은 당사자에게는 무슨 상품이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장 교수는 웃으면서 “스티커 하나 준다”고 밝혔다.

시나리오 수정시에는 작업자들의 아이디어를 적극 반영했다. 각 작업자들이 낸 좋은 아이디어는 즉각 애니메이션에 반영되었다. 작업자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적극적으로 회사 프로젝트에 임했다. “점심 식사를 하면서도 라이팅에 대한 얘기를 나눴습니다.”

이러한 분위기 조성의 숨은 공로자로서 장 교수는 크리스 웨지 감독을 꼽는다.

지금까지의 작업 결과를 모든 작업자와 공개하면서 서로의 의견에 귀를 기울여 준 점에서 크리스 웨지 감독은 높이 평가 받을만하다고 장 교수는 말했다.

“진정한 감독은 연출만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역량의 절반 정도만을 연출하는데 쏟고, 나머지는 팀의 비전을 제시할 줄 알아야 합니다.” 장 교수의 감독론이다. 크리스 웨지 감독에 대한 평가도 이와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장 교수는 특히, 간혹 같은 ‘감독’이라는 호칭으로 헷갈리기 쉬운, 단편과 장편 감독의 차이를 명쾌하게 정의 내렸다. “소수가 모여 단편 작품을 만드는 사람은 감독이라기보다는 작가라고 생각합니다.”

또 한 사람의 숨은 공로자를 들자면 존던킹 프로듀서. 장 교수는 2년 가까이 되는 작업 기간 내내 초과근무를 거의 한 적이 없다고 한다. “처음 작업하면서 각 직원의 능력치를 자세히 파악해 놓았으며, 이 데이터를 근거로 일을 분배했습니다.” 블루스카이에서는 9시부터 6시까지, 주 5일 근무를 철저하게 지켰다고 한다.

성공에 대한 확신

“다들 성공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장 교수에 따르면 ‘아이스에이지’는 철저하게 관객의 눈높이에 맞춰 제작되었다. ‘아이스에이지’는 제작 중간에라도 어느 정도 완성된 부분까지 편집한 뒤 일반 성인관객을 초대해 관람을 시켰으며, 그 반응을 유심히 관찰했다. 물론 어른들은 꼭 자신들의 자녀를 함께 데리고 와야 했다. 관람 결과 반응이 좋은 부분은 강조하고, 반응이 좋지 않은 부분은 빨리 수정해 나가면서 보강작업을 했다.

관객들의 반응을 위해 시나리오를 뒤엎은 대표적인 케이스로 사자의 죽음을 들 수 있다. 후반부에서 사자가 죽은 장면에 대한 관객들의 평이 좋지 않자 블루스카이는 사자를 살리기로 했다. 개봉을 한 달여 남겨두었으며 이미 20여개 국어로 더빙을 끝낸 시점이었다.

이에 대해 내부적인 반발도 많았다고 하는데, 그 항의 표시가 재미있었다. 의사 표시를 위해 뜻이 맞는 작업자들끼리 모여 사자를 죽이라는 내용이 들어있는 단체 T셔츠를 맞추고 출근을 했었다는 것.

드림웍스

블루스카이스튜디오는 그러나 장편 애니메이션 작업을 많이 해보지 않아서 ‘아이스에이지’ 제작 이후 인력을 적절하게 활용할 방법을 못 찾고 감원을 결정했다. 이때 크리스 웨지 감독은 울면서 미안하다는 말을 작업자들에게 전했다. 회사 차원에서 드림웍스나 픽사 등 다른 메이저 제작사의 스카우트 담당자를 뉴욕까지 불러 호텔에 체류시키면서까지 사원의 재취업에 신경 썼다.

이에 따라 장욱상 교수는 드림웍스로 회사를 옮기게 된다.

드림웍스는 여러모로 블루스카이와 비교되는 상이한 분위기였다고 장 교수는 말했다. 우선 임금이 훨씬 올랐다. 블루스카이스튜디오는 메이저 스튜디오 치고는 임금이 적은 편이었는데 반해, 드림웍스는 업계 최고의 대우를 해주었다고 한다. 장 교수 자신도 50% 이상 급료가 인상되었다.

장 교수는 자연히 미국에서 내로라하는 작업자들과 함께 작업을 하게 된다. “대부분 5년 이상의 경력자들이었습니다. 제가 속한 팀에 있던 사람들을 들자면, ‘파이널판타지’ 라이팅 리드, ‘슈렉’ 리드, ‘다이노서’ 리드 등이었습니다.” 방도 커다란 곳을 두 사람이 쓰도록 배려했다. 식당은 언제든지 다양한 음식물이 준비되어있으며, 세계 곳곳의 음료수를 맛볼 수 있었다고 한다.

이곳에서 장 교수는 두 편의 작품이 계약되어 있었다. 그 하나가 ‘신밧드: 7대양의 전설’이었다. “셀 애니메이션을 접하면서 캐릭터 애니메이션에 대해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장 교수는 특히 드림웍스에서 두 사람의 한국인 친구들과 사귀게 된다. 그 하나가 ‘인 더 포레스트’를 함께 기획했던 김재홍씨, 또 하나는 리처드 김 선배였다. 장 교수는 이들 일급 애니메이터들과 어울리면서 애니메이션의 깊은 맛을 느끼게 된다.

비록 좋은 대우로 작업을 하기는 했지만, 열정을 쏟고 부대끼며 애니메이션 제작을 해왔던 블루스카이에 익숙했던 장 교수에게 드림웍스의 체계적인 분위기는 답답했었나보다. ‘신밧드’ 제작을 마무리할 때쯤 장 교수는 회사를 그만두고 한국으로 돌아갈 결심을 한다. 계약상으로 한 편이 더 남아 있는 터라 퇴직시 약간의 진통은 있었다고 한다.

그 뒤 장 교수는 미국에 좀더 체류하면서 다른 사람들과 ‘인 더 포레스트’ 제작에 열과 성을 쏟는다. 누가 하라고 시킨 것도, 어디서 수익이 발생하는 것도 아닌 상황에서 열정만을 갖고 반 년 동안 작업만 했다.

이와 관련한 자세한 얘기는 조만간 ‘인 더 포레스트’ 제작기에 소개할 예정이다.

교편을 잡다

현재 장욱상 교수는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에서 애니메이션을 가르치고 있다. 외국에서의 작업 경험을 후진양성에 접목하고 있는 중이다.

장 교수는 항상 학생들에게 “콘텐츠로 이윤을 내고 승부를 걸도록 하라”는 말을 한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애니메이션에 대한 애착이 있어야 합니다. 기존 회사에만 기대지 않고 스스로의 앞길을 찾을 수 있는 자립심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윗 그림을 클릭하면 멍크 동영상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시간엄수는 기본임을 강조한다고 한다. “진정한 프로는 주어진 시간 내에 최대치를 뽑아내야한다 생각합니다.” 마감을 엄수하지 못한 학생들에게 장 교수는 특히 엄하다. “마감을 넘긴 작품에는 피드백을 주지 않습니다. 냉정하게 딱 잘라 얘기해 줍니다. 거기까지가 한계다. 그걸 인정하라고.”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장 교수는 우리 애니메이션에 대한 기대도 함께 피력했다. “그동안의 거품이 걷혔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장 교수는 상업 애니메이션의 가능성 진단의 일환으로 산학협동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멍크’라는 캐릭터를 실사 또는 클레이와 합성하는 작업이다. 1분짜리 5편을 4명의 학생들과 진행 중인 이 작품은 이후에는 영화 ‘스튜어트 리틀’과 같이 실사와 CG의 합성으로 발전시켜나갈 계획이라고 한다.

외국에서 CG 작업을 하다 들어온 사람들에게서 느껴지는 공통점이 있다. 자신감과 긍정적인 마인드가 그것이다. 장욱상 교수로부터 받은 느낌도 그런 것이었다. 그렇다고 현실적이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긍정적인 에너지가 담뿍 느껴진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비관적일 수도 있고, 어떻게 보면 기회와 희망이 찬연하게 펼쳐진 시기일 수도 있는 지금. 해외에서 성공한 프로젝트들을 제작한 경험과 패기가 있는 사람들이 우리 애니메이션 업계에 수혈되어 긍정적인 방향으로 작용된다면 우리 애니메이션은 분명 더 나은 내일을 기다릴 수 있을 것이다.

cgLand 송근우 기자 egtree@cgland.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