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애니메이션의 해외 배급"
1. 배급의 전문화가 필요하다.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이상길 애니메이션 산업팀장

해외 시장은 애니메이션의 산업에서 그 중요도가 나날이 커져가고 있다. 또한 해외배급에 성공한 사례들이 하나둘씩 생겨나고 있다.

cgLand는 국내 애니메이션 산업의 돌파구가 될 해외 배급을 최전선에서 개척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 현 상황을 짚어보는 한편, 해외 애니메이션의 흐름을 가늠해 보았다.

“제작이면 제작, 배급이면 배급. 이러한 전문화가 되어야 합니다.”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애니메이션 산업팀 이상길 팀장은 전문화를 강조했다.

“예전에는 미국 등에 있는 교포들의 사적인 라인을 통해 판매를 시도했습니다. 요즘은 해외 마켓에 직접 진출해 작품을 소개하는 적극적인 방식이 쓰이고 있습니다.” 주로 이들이 참가하는 마켓(애니메이션 견본시)은 MIPTV, MIPCOM, NAPTE, TAF 등이 있다.

2004년 MIPTV 행사장

애니메이션 견본시를 참가하는 것도 초기와 지금은 달라진 모습을 보인다고 한다. “초기에는 한 회사가 한 작품을 들고 나갔습니다.” 그러나 견본시는 디스트리뷰터들의 각축장이다. 달랑 하나만 들고 갔을 때 눈길을 주는 이는 그리 많지 않는 게 현실이라고 한다.

아무리 훌륭한 데모를 갖고 온다 하더라도, 처음 마켓에 진출하는 이들에게는 신뢰를 주지 못하는 게 이 쪽의 생리이다. 프로젝트의 부침이 심한 엔터테인먼트 세계에서는 적어도 몇 번 정도는 눈에 보여야지 ‘꽤 탄탄하게 진행되는 프로젝트네’ 라고 인식된다.

삼지애니메이션 'ODD Family'는 해외 견본시를 통해 제작비의 70%를 해외에서 투자 받았다.

그러나 일반 제작사에서 매번 견본시에 인력을 보내는 것에 대해서는 많은 지출이 들기 때문에 쉽지 않은 일. 이에 이 팀장은 전문화된 디스트리뷰터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제작사에서 한 번 정도 마켓에 나가는 것은 경험차원에서는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견본시는 배급 전문가들의 각축장입니다. 이 자리에는 전문 디스트리뷰터가 여러 작품을 들고 지속적으로 참가하는 게 맞는다고 생각합니다.”

"국내 애니메이션의 해외 배급"
2. 해외공동제작을 통해 해외시장을 공략해야 한다.

대원C&A 이상돈 이사

우리나라 애니메이션의 해외에서의 위상을 대원 C&A 이상돈 이사는 냉정하게 진단한다. “EBS에서 독립 애니메이션을 소개할 때, 보통은 ‘이런 게 있구나’라며 신기해하며 바라보지 않습니까? 해외에서 우리 애니메이션은 아직 그런 정도입니다.”

우리 애니메이션의 발전을 위해서는 한국 애니메이션을 세계인들에게 각인시켜야한다고 이 이사는 강조한다. “애니메이션하면 일본이나 미국만 떠올리는데, ‘한국도 있다, 퀄리티도 좋다’하는 존재를 알리는 일이 중요합니다.”

일본과 공동제작 중인 기대작 '신 암행어사'

해외 공동 제작이 관건이다

이상돈 이사가 특히 주목하는 부분은 애니메이션을 해외 업체와의 공동 제작. “품질 등 경쟁력이 월등하게 우위에 서지 못하는 상황에서 일본, 미국 등과 대등하게 경쟁하기는 솔직히 어렵습니다. 현재는 시장탐색 단계입니다. 최근 들어 ‘런딤’이나 ‘포트리스’, ‘신 암행어사’ 등의 작품들이 애니메이션의 빅 마켓이라 할 수 있는 일본이나 미국 등과 공동제작을 진행했거나,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 인지도를 발판으로 삼아 애니메이션의 위상과 입지를 넓혀나가고 있는데 저는 그런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해외 공동 제작은 특히 판매 루트 확보는 물론, 높은 판매 가격을 보장받기 때문에 그 장점이 매우 크다고 이 이사는 설명한다. “해외에서는 자체 제작 애니메이션에 대해서는 높은 가격을 쳐주고 있습니다. ”

이 이사는 대원C&A가 참여했던 한,미,일 공동제작 애니메이션 ‘큐빅스(제작: 시네픽스)’의 예를 들었다. 제작비가 편당 20만 달러였던 ‘큐빅스’는 미국 워너브라더스사에 편당 12만 5천 달러의 적지 않은 가격에 계약되었다. “한,미,일 세 나라의 TV 방영권료로 제작비를 커버했습니다.”

현재 대원 C&A에서는 디자인스톰과 ‘아이언키드’를 공동제작하고 있다. 이 또한 해외 공동 제작 형식으로 만들어진다. 지난 4월 프랑스 깐느에서 열렸던 제작발표회에서 이 작품은 스페인 BRB 인터내셔널과 160만 달러의 합작투자계약을 성사시켰다. “해외 투자가 유치되면 배급은 당연히 따라옵니다. 일단 한 번 라인이 생기면 기존 다른 애니메이션을 갖고 접촉할 생각입니다.”

디자인스톰의 '아이언키드'는 스페인의 주요 배급사 BRB인터내셔널로부터 제작비의 40%인 1백60만 달러를 유치했다.

해외계약의 맹점

이 이사는 이와 함께 해외 계약에 있어서 부풀린 것들이 많이 있음을 지적했다. “계약서의 경우 우리나라의 경우야 몇 페이지 안 되지만, 미국 등에서 들어오는 건 80페이지가 넘습니다. 이 가운데 ‘상호간의 사정상 이 계약은 파기될 수 있다. 손해는 양자간에 없다’라는 문구 단 한 줄만 삽입되었다면, 그건 계약이 아닌 것입니다.”

대원 C&A 이상돈 이사

이럴 경우 한쪽에서 일방적으로 파기하면 그 계약은 즉시 끝난다. 외국에 있는 사람들이 사기꾼이라서가 아니라, 투자 유치에 이용하기위해 한국의 관계자가 그러한 계약을 요구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이런 행태는 오히려 우리 업계에 대한 신인도를 낮춘다고 이 이사는 덧붙였다. “너무 과장된 그런 언론보도는 해외 비즈니스에 도움이 안 됩니다. 국내 언론에 나오는 내용을 해외 담당자들이 모르고 있겠지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큰 오산입니다.”

해외계약에 대한 경험이 쌓이고 있다

견본시를 통해 우리 작품에 대한 해외 판매를 시작한지도 3년여가 되었다. 처음에는 아무런 사전지식도 경험도 없던 우리 업계는 이제 하나둘 씩 소중한 경험들을 쌓아나가고 있는 중이다. 그냥 작품만 내건다고 다 팔리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조건 조율에 대한 내용에 대해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원도우 등에 대한 정보가 필요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상길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애니메이션 산업팀장

“세미나나 포럼 초청 등을 통해 자꾸 물어보아야 합니다.” 이에 따라 진흥원은 앞으로 해외 제작발표회나 포럼 등 애니메이션 관련자들을 불러 모아 정보교류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마련할 계획이라고 이 팀장은 밝혔다.

“행사장에 부스만 만들었던 게 기존의 방식이라면, 이제는 파티를 열어 ‘영양가’ 있는 에이전트들을 개별적으로 불러 접촉을 늘리는 등 좀더 세련된 접촉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어떤 사람들이 ‘영양가’ 있는지 구별할 수 있으며, 또 진흥원이 부른다면 솔깃해서 찾아오는 정도로 발전했다고 이 팀장은 자평했다. “이제는 Kocca(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의 약자)가 열면 볼만한 부분이 있다는 해외 관계자들의 인식이 형성되었습니다.”

'오세암'은 최근 프랑스에 7만 유로(약 8천만 원)에 계약되었다. 6월 안시애니메이션 페스티벌을 기해 해외의 관심이 쏟아질 것이 기대된다.

일단 맛 들이기

“현 단계에서는 밑지고 장사하지만 않으면 하는 게 좋습니다.” 사업 초기 우리 애니메이션 업계가 해야 할 일은 무엇보다도 시장을 뚫는 일이라고 이 팀장은 강조했다.

“일단 맛을 들여서 퀼리티를 만족시킬 수밖에 없습니다. 한류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드라마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대만이나 홍콩 스타TV에 껌 값으로 줬습니다. 요즘은 비싸게 팔리고 있지만요.”

이 팀장은 이어 훌륭한 작품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는 기본적인 사실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