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 둘리의 친구 - 최규석"

어린 시절 즐겨보았던 무수한 만화책들, 한 때 만화를 보면서 누렸던 정서적인 풍요가 이제는 온데 간데 없다.
어느새 일본만화가 득실거리고 국내 작가들이 설 자리를 잃어버린 안타까운 현실뿐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도 쉼 없는 열정으로 꾸준히 활동하는 만화가들이 있다.
이번 시간은 ‘공룡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쥬’를 펴낸 최규석작가를 만나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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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gLand : 안녕하세요? 우선 플라워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최규석(모과) : 감사합니다. 제일 타기 힘든 상인데...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듯 합니다.
수상하기가 너무 어려워요. 여간해선 꽃도 잘 안 달리더군요.

cgLand : 지금의 길을 걷게 된 동기가 궁금합니다.

최규석(모과) : 고1때 한번 미술학원에 공짜로 다녀 볼 생각을 했는데, 학원 장학생 기준에 안 맞더라구요.
내신이 부족했죠. 그러던 중 고3때 무불이란 친구가 술먹고 학교 와서는 미술학원 가자고 협박을 하더군요.
집에 돈이 없어 화실 다닐 여유도 없었는데 결국 친구 따라 구경간 게 계기가 되었어요.
화실 벽에 붙어 있는 그림들을 보니까. 도저히 안 다닐 수가 없었거든요.
"내가 하면 백배는 더 잘할 수 있어어어어어" 라는 불꽃이 일면서 -_-
뭐 그놈도 다닌 지 몇 달 안 된 상태였고, 두 달만에 자기가 짱 먹는다고 막 자랑하고..
열 받았죠. 결국 화실 평정은 실패했습니다. 보기보다 어렵더군요...
그렇게 고3때 10개월 가량 화실을 다녔고, 결국 이 길로 접어들게 되었습니다.

cgLand : 만화가가 되겠다고 결심한 게 언제죠?

최규석(모과) : 고 1때 쯤일 겁니다.
일단 만화의 매력을 확실히 느낀건 중학교때 아다치 미쯔루의 터치를 보면서죠.
그전엔 북두신권이니 시티헌터니 드래곤볼이니 재밌게 보긴 했지만
조숙함을 가장한 시건방진 꼬맹이였던 저에겐 유치해 보였죠.
그러니까 한계가 명확히 보였다고나 할까?
매체 자체로 나쁘진 않지만 더 이상 표현 할 수 없는 영역이 있다고 느꼈어요.
그 영역은 소설에서 주로 다루는 인간내면의 미묘한 심경의 변화라든가
대사나 표정 같은 직접적 표현이 아닌 간접적인 암시로 무언가를 전달하는 것 들이죠.



cgLand : 삼단변신으로 활동하고 계신데 소개를 좀 해 주시죠.

최규석(모과) : 석정현, 변기현, 저로 이루어진 남성 3인조 만화가 그룹입니다.
기현이와 저는 학과 선후배구요. 석가형은 동호회(페인터마을)를 통해 알았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가운데고 양쪽으로 기현이와 정우형이 연결됐죠.
현재는 무불도 지키고 있습니다. 참 고교 동창인 무불에 대해 잠시 소개하자면
정식 데뷔는 안 했지만 대단한 실력을 가진 작가입니다.
씨지랜드에도 그 친구 작품이 있을 겁니다.
본명은 정현욱이고, 사이트 주소는 아래와 같습니다.
http://www.gaechaban.com/

cgLand : 만화가를 하면 배고프다는 생각은 안 해보셨나요? 집안의 반대도 있었을 텐데요.

최규석(모과) : 일단 장학금 잘 받고...상도 몇개 타고 하니까
학교 다니는 중에는 별 말씀 없었는데, 졸업하고 나선 좀 압박이 있죠
맨날 옆집에 자랑하시다가 이제 자랑 할 게 없으니까요.

cgLand : 책 내신건 알고계시죠?(부모님이...)

최규석(모과) : 그렇죠. 그런데 그게 더 문제에요.
신문에도 나오고 하니까 주변에서 관심이 끊이질 않죠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 이렇게 물어봅니다.

cgLand : ‘공룡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쥬’를 출판하게된 동기는?

최규석(모과) : 졸업하면서 졸업작품집이 출판계에 뿌려졌죠.
‘길찾기’라는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더라구요. 새로 기획하는 게 있는데 같이 함 해보자구요.
길찾기도 첨에는 단편집을 낼 생각이 없었는데, 제가 조금 떼를 썼어요
내기 전엔 잘 몰랐는데 그냥 옛날에 했던 것들 잘 묶어 두고 싶다는 의지가 생기더군요.
포토폴리오 안 들고 다녀도 되게..근데 막상 나온 거 보니까
창피하고..허점도 너무 많이 보이고, 이걸 누가 사나 싶고...뭐 그렇습니다.

cgLand : 툰갤러리에 스탠바이 미를 연재중인 강재호 작가와도 친하시죠?

최규석(모과) : 음...같은 학교출신이죠. 재밌는 인간입니다. 무섭기도 하고
인간이 한번에 확 뒤집어진다고나 할까요?
좀 사람 같지 않은 데가 있어요. 학교 다닐 때 그리던 스타일이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에너지가 가득찬 그런 그림이었거든요
필력이나 색감 등..어디로 봐도 무릎을 꿇고 존경할 수 밖에 없게 만드는..
근데 어느 순간 이게 아니다 하더니 스텐바이 미를 그리고 있죠
사람이 자기가 인정받는 부분이 있으면 그걸 놓기 싫어지는 게 정상인데
아니다 하더니 확 놓더라구요.
자기가 대단한줄 모른다는 게 다행스럽죠.^^

cgLand : 작품중에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 있나요?

최규석(모과) : 조금씩은 들어갔다고 봐야죠. 특히 ‘선택’이나 ‘콜라맨’을 꼽을 수 있습니다.

cgLand : 툰갤러리에 소개된 ‘콜라맨’의 꼬치아저씨는 혹시 실존 인물 인가요?


콜라맨에 등장하는 꼬치아저씨. 콜라를 주면 다 보여준다.(?)


최규석(모과) : 친구가 어릴 때 동네에 있었답니다.
전에 홈페이지에 어떤 분도 자기 동네에 있었다고 그 사람이냐고 묻더군요.

cgLand : 많이 받은 질문일텐데, 둘리를 다른 관점에서 재창조한 배경이 있나요?

최규석(모과) : 수업 과제였어요. 둘리를 패러디 하라!
보통 패러디는 좀 진중한 걸 가볍게 하죠. 근데 둘리는 원래 가벼우니까
당연히 진중하게 해야했죠. 가벼운 걸 가볍게 하면 패러디가 아니고 걍 아류이거나
외전이 되어버리죠.

cgLand : 김수정 선생님과는 만나신적이 있나요?

최규석(모과) : 김수정 선생님은 1학년때 싸인 한번 받고..
공룡둘리 나오고 나서 Sicaf에서 잠깐 뵌 적 있습니다.

cgLand : 작품에 대해 다른 언급은 없으셨나요? 보시긴 했겠죠?

최규석(모과) : 뭐 그냥 "아아 니가 가가?" 이러셨던 거 같아요.
김수정 선생님도 저와 같은 진양군 출신인데, 그래서 용서를 하시지 않았을까요?
처음엔 별로 안 죄송했는데, 둘리 언급될 때 마다 꼭 꼽사리 껴서 기사 나가고..
책도 둘리 이미지로 도배하고, 이건 뭐 붙어서 갈려는 치사한 인간으로 자꾸 비치는 거 같아서
요즘은 좀 죄송스러워지고 있습니다.

cgLand : 이 자리를 빌어 김수정선생님께 한 말씀 하시죠.

최규석(모과) : 우선 관대하게 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전화드렸을 때에도 반갑게 받아주셔서 마음이 놓였습니다.
기사에 자꾸 꼽사리 껴서 나가는 건 제 뜻이 아닙니다.
책에 둘리로 도배한 것도 출판사의 팔아보자는 생각으로 너그럽게 봐주세요.
얼른 다른 대표작을 만들어서 더 이상 언급 안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cgLand : 그러고보니 국내에도 좋아하거나 존경하는 작가가 있으실거 같은데요...

최규석(모과) : 네 김수정 선생님입니다.
이제 와서 이분을 빼고 말하면 인간의 도리가 아니겠죠.^^
예전에는 이희재, 박흥용, 오세영선생님 이라고 말했었는데...
그래도 책은 김수정 선생님 걸 젤 많이 샀었어요. 진짭니다.

cgLand : 만화가의 현실에 대해 한말씀 해주시죠.

최규석(모과) : 저야 뭐 워낙 열심히 안 하니까 못 사는 게 당연합니다만..
잡지 연재하는 분들은 일년 내내 그림만 그려도 밥 먹기 힘들죠.
그에 비해 스포츠신문 연재하는 작가분들은 고액연봉자라 할 수준이고..
뭐 누가 더 고생하고 덜하고를 떠나서.. 편차가 너무 심하다고 생각합니다.
저같은 경우도 둘리해서 90 받고, 전에 어디 신문 연재 기획이 있어서 샘플 보냈는데
4페이지에 60을 받았거든요. 노력은 둘리의 100분의 1정도 들어갔는데...
기분이 참 묘하더군요.

cgLand : 예전에 쏟아지던 만화잡지들이 하나둘씩 폐간하고
기존 극화 스타일이 설만한 자리가 자꾸 없어지니까
극화에서 더 큰 힘을 발휘할만한 작가분들도 자꾸 신문으로만 가는 악순환이 지속되는군요.
씨지랜드에서 그림을 그리시는 분들은 다양한 형태로 그림 그리는 것을 지속해 나가고 있는데
만화쪽 작가분들이 참 힘들게 지내시는것 같아서 마음이 무겁습니다.

최규석(모과) : 하하 눈만 안 돌리면 별로 힘들다고 못 느낍니다.
가끔 뭐해서 얼마 벌었대더라 하는 소리 들리면 그럴 때 괴로운거죠.

cgLand : 만화를 그리는 것 외에 일러스트 등의 일도 들어오나요?

최규석(모과) : 아뇨. 처음 졸업작품 나왔을 땐 여기저기서 의뢰가 좀 있었는데
만화가라고 이름 박히고 나서부터는 비쌀까봐 그러는지 연락이 없습니다.

cgLand : 만화를 그리는 절차라고 해야 할까요? 스타일이 정해져 있나요?

최규석(모과) : 선택은 유일하게 시나리오 적고 했구요. 졸업심사를 받아야 하니까요.
요즘은 콘티짜면서 스토리 짜고..그걸 트레이스 해서 원고로 씁니다.
그러니까 콘티가 엄청 늦죠.
머리가 나빠서 그런지 화면의 미묘한 분위기까지 눈앞에 안 나와 있으면
다음 장면이 떠오르지 않더군요.

cgLand : 컴퓨터를 만화작업에 얼마나 활용하시나요?

최규석(모과) : 컬러작품일 경우엔 많이 활용합니다.
흑백 원고는 연필로 하기때문에 콘트라스트 조절정도만 사용합니다.

cgLand : 혹시 톤 같은거 붙이는 수작업도 하시나요?

최규석(모과) : 솔잎 이후론 안 했죠. 저랑 좀 안 맞는 거 같고
돈도 많이 들고..연필이 좋아요. 수정도 잘 되고 발바닥에 붙지도 않고...

cgLand : 요즘 근황은? 작업하는 것들이나...

최규석(모과) : 학원 강사를 나가고 있구요. 단편을 준비하려는 찰나
경향신문 연재제의가 들어와서 어떻게 할지 고민중 입니다.
그래봐야 주당 2페이지 연재지만요.
( 인터뷰 당시와 시차로 인해 현재는 경향신문에 ‘습지생태 보고서’를 연재중임을 밝혀둔다.)
아 그리고 서점가서 계간만화 봐주세요. 이번에 대작 하나 실었습니다.

cgLand : 새로운 단편을 준비하신다고 하셨는데...소개좀?

최규석(모과) : 눈물없인 볼 수 없는 감동의 휴먼 드라마
군대 가기 전에 꼭 읽고 양심적 병역거부 하라
뭐 그런 내용입니다

cgLand : 양심적 병역거부라...조금은 무겁고 사회적인 내용이 되겠군요.

최규석(모과) : 콜라맨과 선택의 중간쯤이 될 거 같습니다.

cgLand : 소재를 어디에서 찾으시는 편인가요?

최규석(모과) : 주로 고민거리...인간에 대한 거든 사회에 대한 거든..
항상 담고 다니다가 농담하다가 혹은 책을 읽다가 친구 얘기 듣다가 나옵니다.

cgLand : 만화가 지망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을텐데 부탁드립니다.

최규석(모과) : 지금의 한국 만화는 만화 안에 매몰되어 가고 있다고 보입니다.
독자를 위한 만화가 아니라 만화를 위한 만화들이 양산되고 있죠.
흔히들 만화를 지망하는 학생들이 "또라이"나 "이상한 애들"로 분류되기도 하는데요,
물론 예술가의 시각과 행동은 유별난 곳이 있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그것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남다른 시각에 의한 자연스러운 현상이 되어야지 자신들이 알고 있는 좁디 좁은 만화라는 틀 안에서만 이해되는 "그들만의 방언"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 먼저 사람이 되어라"는 말이 있듯이 "먼저 예술가가 되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만화가가 되겠다고 결심하세요.
결심했다면 "만화가 좋아요"라는 말보다 "만화가 뭐지?", "어떻게 하면 좋은 만화를 창작할 수 있지?"라는 말과 더 가까워지시길 바랍니다. 끝없이 탐구하고 노력하세요. 가수지망생들이 목이 쉬고 피가 나도록 노래연습을 하듯이, 운동선수들이 자기생활을 철저히 관리하면서 하루도 쉬지 않고 연습을 하듯이 당연히 만화가가 되겠다고 생각했다면 "만화가 좋아"라고 말하며 내킬 때만 연필을 드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좋아하는 대상이 있다면 그것의 겉모습만을 좋아해서는 진정 좋아한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진정 사랑한다면 그 대상에 대해 모든 것을 알려고 노력하고 그것이 자신을 고통스럽게 할 때 조차 믿고 배신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쯤은 수많은 멜로 드라마를 통해 이미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cgLand : 씨지랜드는 얼마나 자주 들리시나요?

최규석(모과) : 사흘에 한번정도 방문하고, 열심히 보는 건 제가 그림 올렸을 때 달린 리플이나
외국 아티스트들의 인터뷰 기사를 봅니다.

cgLand : 갤러리에 들려 다른 회원들 작품도 보시겠죠?

최규석(모과) : 보죠 꽃 많이 받은 거 위주로..이러면 안되는데..
이런 말 하긴 좀 그렇지만..성향이 좀 편중되었다는 느낌이 들어요...꽃 달아주기도 좀 있는 거 같구요.
진검승부가 필요한데 말이죠.^^

cgLand :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멋진 작품으로 만나뵐 수 있기를 기대하겠습니다.

최규석(모과) : 예 열심히 하겠습니다.^^


짧은 만남, 긴 여운...사람은 저마다의 냄새를 지니고 산다.
자신의 삶속에 열정을 심어, 아름다운 향기를 발산하게 하고, 모든 사람을 즐겁게 해준다.
만화에 쏟는 애정과 열정, 그것이 최규석작가의 삶의 향기가 아닐까?

경향신문에 연재중인 '습지생태 보고서'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