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암의 제작자 이정호 대표(마고 21)"

한국 애니메이션이 해외에서 그 진가를 인정받았다. 우리 애니메이션 ‘오세암’이 2004 안시 국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 영예의 대상을 거머쥐었다.

지난 해 국내 개봉 당시 ‘오세암’의 흥행성적은 전국 관람 10만. 이 애니메이션에 대한 국내의 반응은 그러나 싸늘했다. 일반인들의 무관심과 극장 배급의 어려움이 초래한 저조한 흥행성적이었다.

그러나 해외에서의 반응은 사뭇 달랐다.

특히, 유럽 쪽의 반응은 국내의 무관심과는 대조적이었다. 이미 ‘오세암’은 프랑스에 7만 유로(약 8천만 원 상당)에 팔려, 오는 9월 22일 전국적으로 개봉될 예정이다. 또한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대만 등에서 ‘오세암’ 구매에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협상에 임하고 있다.

마고21은 이번 대상 수상을 계기로, ‘오세암’에 더 많은 관심이 쏠리는 한편, 더 유리한 조건의 해외수출 계약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특히 이번 수상은 마고21이라는 제작사를 국내외에 널리 알렸으며, 지금 진행 중인 차기작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이 기대된다.

cgLand는 세계에 한국 애니메이션을 널리 알린 애니메이션 ‘오세암’ 제작의 주역인 마고21 이정호 대표를 만나보았다. ‘오세암’ 기획에 얽힌 이야기와 차기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한국의 지브리 스튜디오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마고21 이정호 대표는 덥수룩한 수염이 인상적이다. 안경 저편에 숨은 눈에는 애니메이션에 대한 애정과 고집이 묻어난다.

‘백구’의 연장선에서 시작한 ‘오세암’

먼저 ‘오세암’을 기획하게 된 배경에 대해 물어보았다. ‘오세암’은 TV 애니메이션 ‘하얀마음 백구’ 성공의 연장선상에서 시작된 프로젝트라고 이정호 대표는 강조했다.

“‘오세암’은 ‘하얀마음 백구’라는 작품을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작품입니다. ‘백구’를 통해서 한국적 서정과 가족적인 애니메이션이 통한다는 확신을 갖고 ‘오세암’을 시작했습니다.”

‘오세암’은 ‘백구’를 마치고 다음 작품에 대한 소재를 찾던 도중 발견되었다. 이 작품은 지난 2001년 작고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동화작가 정채봉 씨의 명작 동화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기획 당시 가장 신경 썼던 부분은 ‘어떻게 각색을 하느냐’였다.

“작가와 작품이 인지도가 있지만, 짧은 동화이다 보니 어떻게 각색을 해서 애니메이션의 장점을 살릴까에 대한 고민이 뒤따랐습니다.”

그래서 결정한 제작의 포인트는 다음 두 가지였다.

먼저 내용적으로는 원작에 강하게 내포되어있는 종교 색을 탈피하는 대신 ‘엄마’라는 부분을 강화했다. 특히 남매의 정서와 아이의 동심을 살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는 게 이 대표의 설명이다.

표현적으로는 내용 전달에 부합토록 하기 위해 캐릭터와 애니메이션 요소를 신선하면서도 깊이 있게 표현하는 데 역점을 두었다.

순탄하지 않았던 ‘오세암’의 제작진행

‘오세암’의 제작은 그러나 순탄하게 진행되지만은 않았다.

“제작시스템이 제대로 못 받쳐줘서 난항을 많이 겪었습니다. 투자 부분을 매듭짓지 못한 상태에서 애니메이션 제작을 시작했습니다. 자금의 부족으로 제작 중간에는 작업 진행이 눈에 띄게 더뎌졌었죠.”

‘오세암’은 애초에 스탭들의 협조를 전제로 초 저예산인 순 제작비 8억 원으로 기획된 작품이다. 이를 위해 마고21은 영화진흥위원회로부터 2억 원, 신보창투에서 3억 원을 투자받았으며, 자체 자본을 포함, 6~7억 원의 제작비를 마련하고 제작에 들어갔다.

그러나 애니메이션 투자 현실을 냉정했다. 작업하는 중간쯤 나머지 1~2억 원이 투자되겠지 하는 기대는 실현되지 않았다. 결국 마고21은 작업을 시작한지 1년 만에 자금이 거의 바닥 나게 된다.

추가투자가 결정 난 것은 그로부터 1년이 지난 뒤였다. 마고21은 자금이 바닥난 상태에서 1년 정도를 버틴 것이다. 이 1년이 마고21에는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었다. 그러나 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주축을 이루는 20여 명의 스텝들은 한 사람도 이탈하지 않고 묵묵히 참아주었다.

하지만 역시 경제적인 문제는 생산성의 감소로 나타났다. 처음 1년 동안 프리프로덕션과 40% 가량 진척을 보였던 '오세암‘은, 이 힘들었던 1년 동안 30% 정도 밖에 작업이 진행되지 않았다.

힘들게 이어지던 ‘오세암’의 제작은 그러나 추가투자금의 투입 이후 6개월 만에 나머지 30%를 완성하게 되었다.

자금 부족으로 고생하던 1년은 여러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들을 남겼다고 이 대표는 술회한다.

먼저 작업정체로 인한 손실은 제작비 상승의 원인이 되었다. 작품 퀄리티 부분에도 안 좋은 영향을 미쳤다. 또한 계획했던 시즌에 영화를 개봉하지 못함으로 인해 마케팅 부분에서도 적지 않은 불이익을 감수해야만 했다. “자금 확보가 얼마나 중요한지 그야말로 절실하게 느꼈습니다.”

시나리오의 중요성

자금 확보와 더불어 이 대표는 시나리오의 중요성을 ‘오세암’ 제작을 통해 깨달았다고 한다.

‘오세암’은 단편 동화를 원작으로 했으므로 시나리오를 만드는 게 쉽지는 않았다.

우선 드라마가 밋밋했다. 이 대표는 이 부분은 제작을 진행시켜나가면서 차차 고쳐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게 나중에는 오산이었음이 드러났다.

이미 완성해 놓은 ACT 1을 어느 정도 만든 뒤에 보니까, 밋밋한 드라마가 눈에 들어오더라는 것. 이에 따라 ACT2와 3를 진행하면서 ACT1을 수정했다. 기존에 작업했던 컷들 가운데 살리는 부분도 조금 있었지만, 많은 컷들은 처음부터 다시 작업하게 되었다. 이러한 재작업은 나중에 기간 연장이라는 부분으로 이어지게 되어 악순환에 일조하게 된다.

이에 대해 이 대표는, TV 애니메이션 시리즈는 해보았지만, 영화작업은 처음인지라 겪게 된 여러 가지 실수 가운데 하나라고 술회했다.

 

앞으로의 작업

마고 21은 현재 차기작을 준비 중에 있다. 극장용 애니메이션 두 번째 작업으로, 이번에는 ‘오세암’에서 지적되었던 문제점들을 사전에 차단하며 좀더 능률적으로, 더욱 작품성 있게 만들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따라서 이번 기획은 남다른 공을 들이고 있다.

“‘오세암’ 제작을 끝낸지 1년이 지났는데, 아직 차기작 기획을 하고 있습니다.”

이정호 대표에 따르면 ‘오세암’ 제작 이후 4개월 동안은 국내 전래동화, 창작동화, 소설 등 다양한 원작에 대한 검토가 있었다고 한다. 또한 ‘오세암’ 창작 당시 개발해 놓은 소재도 세 가지 있었다. “하지만 적당한 답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이정호 대표는 소재 개발의 어려움을 이렇게 토로했다.

결국 5개월이 지난 뒤 현재 진행 중인 6.25를 시대배경으로 하는 이야기(가제: 기찻길)가 결정되었다.

“올해 말까지는 스토리와 기획에 모든 역량을 집중할 계획입니다.” 물론 투자도 올해 안에 완결 짖겠다고 한다. ‘오세암’ 제작의 발목을 잡은 게 자금문제였으므로 이 부분은 꼭 먼저 해결해야 한다는 게 이 대표의 각오다. “무엇보다도 시나리오와 아트 컨셉을 ‘완벽하게’ 만든 뒤 올 연말까지 투자를 유치하고 내년부터 본 작업에 들어가겠습니다.”

차기작에 대해 살짝 들어보았다.

“전쟁을 소재로 하다보니까, 전쟁, 피난 씬 등이 나옵니다. 따라서 비주얼 적으로 스케일이 커질 것이 예상됩니다.” 이에 따라 제작비는 ‘오세암’ 때보다는 많이 늘어난다. 이 대표는 30억 원 정도를 예상하고 있다.

“현재 시놉시스는 어느 정도 완성되었습니다. 시나리오는 초고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아트 컨셉은 1차 캐릭터와 배경, 이미지 등은 현재 나온 상태입니다. 이를 좀더 완벽하게 발전시키고 있지요.”

이정호 대표가 기자와 인터뷰를 할 당시는 아직 안시 페스티벌에 가기 전이었다. 이 때 이 대표는 혹시라도 상을 받게 된다면 여러 가지로 힘을 얻을 수 있을텐데 라고 기대 섞인 말을 건넸었다.

안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 그랑프리 수상이라는 게 상업적으로도 ‘오세암’ 해외 판매의 도화선이 될 가능성이 있었고, 현재 준비 중인 차기작에 여러모로 보탬이 될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결국 그 기대는 현실로 돌아왔다. 어려움 속에 완성된 ‘오세암’은, 비록 한국에서는 빛을 못 보았지만, 해외에서 그 진가를 인정받은 것이다.

이정호 대표는 좋은 애니메이션을 만들고자 노력하는 사람이다. 이 대표는 특히, 자신이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면서 축적한 경험을 남과 공유하는 것을 꺼려하지 않는다.

한국의 지브리스튜디오가 되겠다는 마고21 이정호 대표의 바람은 결코 허황된 것이 아니다. 이번 안시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하지 않았다고 해도 마고21의 앞으로의 행보는 달라질 게 없었겠지만, 어쨌든 이번 그랑프리 수상은 차기작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이다.

꾸준하게 한 단계, 한 단계를 밟아나가면서 좋은 애니메이션을 만들고자하는 욕심, 그 욕심을 공유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이정호 대표는 행복한 사람이란 생각이 든다. 차기작을 통해 그 욕심이 찬란하게 빛을 발휘하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

cgLand 송근우 기자 egtree@cgland.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