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나는 꿈

"하늘을 나는 꿈을 꾸곤 했습니다."

어떻게 CG를 하게 되었냐는 질문에 인디펜던스 박영민 대표는 어린 시절의 꾸었던 꿈에 대한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다.

"어려서부터 나는 것에 대한 환상이 컸습니다. '독특한' 포즈로 하늘을 나는 꿈을 종종 꾸곤 했죠. 나중에 인디펜던스를 시작할 때는 그 독특하게 나는 모습을 로고로 만들까도 생각해 보기도 했죠(웃음)."

하늘을 나는 꿈을 꾸던 재미있는 생각을 많이 하던 아이는 고등학생 때 컴퓨터를 갖고 있던 친구와 만났다. 친구의 컴퓨터는 애플 초기 기종. 컴퓨터 언어로 XY좌표를 입력하면 그림이 나타나는 기초적인 프로그램이었다. 그러나 미술 공부를 하고 있던 당시 고등학생이던 박 대표에게 이 프로그램은 매우 매력적인 도구였다. 컴퓨터로도 그림을 표현할 수 있다니.

당시 우리나라의 CG는 거의 초창기여서 쉽게 프로그램을 구할 수 없었다. 박 대표는 당시 컴퓨터 상가로 유명했던 세운상가를 들락거리면서 컴퓨터로 만든 그림과 새로운 프로그램을 교환했다. 자주 들렀던 상점은 온통 박 대표가 컴퓨터로 작업한 영화배우나 물고기 그림으로 가득 찼다는 게 박 대표의 설명이다.

휴먼테크

홍익 대학교 미술대학에 들어간 박 대표는 학교 근처에 픽스랩이라는 이름으로 작업실을 마련했고, 밤낮 없이 컴퓨터 그래픽에 매진했다. 그 때쯤 TV에서 나온 광고가 박 대표를 자극했다. 86년 삼성에서 만들었던 휴먼테크라는 광고였다.

"이게 내가 가야 할 방향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광고에 들어간 CG는 해외에서 제작된 것이었다. 어떻게 하면 저렇게 만들 수 있을까. 박 대표는 고민했고, 또 여러 차례 담당 기획사에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연결은 쉽지 않았다. 궁여지책으로 박 대표는 대학 신문 학생 기자를 사칭하기로 했다.

"홍대 학보사 기자인데 휴먼테크 제작과정을 소개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광고를 제작했던 대행사에 방문했습니다. 정말 많은 자료를 챙겨서 보여주더군요. 그 때 정말 많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CG와 관련해서 정보들이 매우 드물고 귀했던 당시였다. 박 대표에게는 CF 제작과정에 대한 설명이 정말 소중한 정보였다. "설명을 다 듣고 나오는데 학보 나오면 보내주느냐고 물어보더군요. 그런데 아직까지 못 보내주고 있습니다(웃음)..."

아직 CG에 대한 인식이 일천했던 당시였지만, 박 대표는 CG의 가능성을 확신했다. 건축관련 CG와 기업 로고 애니메이션을 데모로 몇 개 만들어 관련 회사를 찾아 다녔다. 그러나 결과는 그리 신통치 않았다. 당시 기술로서는 건축 관련한 그림에서 CG는 별 장점이 없다는 게 관련자들의 일반적인 생각이었다.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 하지 않았다.

학교 또한 새로운 미디어에 호의적이지 않았다. 교수들은 CG를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오기가 생겼다. "졸업작품을 준비할 때, '말로는 안 되겠다. 뭔가 보여줘야겠다.'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1년 동안 디자인한 가구를 애니메이션 시키는 작업을 했습니다. 4~5분 분량이었는데 아마 전국에서 처음으로 학생이 CG로 애니메이션을 만든 것일 겁니다."

이 작품은 졸업전시회에서 가장 눈길을 끌었다. 졸업작품전시회에 참가한 대학 총장으로부터 '앞으로의 디자인은 이런 식으로 바뀔 것'이라는 칭찬도 받았다고 한다. 물론 CG를 탐탁치 않게 여기던 교수들은 아무런 반대의견을 제시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 동안의 노력이 인정받기 시작한 것은 이 무렵부터였다고 박 대표는 회고한다.

창업

졸업작품을 통해 비손텍으로부터 일을 같이 하자는 제의를 받은 박 대표는 이곳에서 CF 일을 3년 반 정도 했다. "자신이 직접 작업한 것을 TV에서 바로 확인할 수 있다는 데서 재미를 느꼈습니다."

비손텍에서 박 대표는 또 대전 엑스포 영상작업을 담당하게 되었는데, 이 때 프랑스 회사와 함께 작업을 하면서 좋은 경험을 많이 쌓았다. "같이 일 하면서 사전작업에 많은 시간을 들이는 프랑스 작업자들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이후 박 대표는 디지털임팩트와, 비스 등 포스트프로덕션에서 방송타이틀, CF 작업 등을 하며 경력을 쌓아나갔다. 실장이 된 박 대표는 그러나 작업스케줄을 관리하고 회의하느라 시간을 보내고 있는 자신을 보게 된다. '이러다가 정체되는 것 아닌가'하는 고민이 생겼다.

"이전부터 작업하면서 알았던 홍성호 실장과 함께 창업을 결심했습니다. '처음 시작하는 마음으로 새롭게 일을 시작하자' 하고요."

현재 국내 CF의 15%를 담당하고 있으며, 애니메이션, 드라마 특수효과 등 다양한 제작 활동을 펼치고 있는 인디펜던스는 1996년 10월 신사동의 조그마한 오피스텔에서 탄생했다. 책상 둘에 컴퓨터 둘, 침대용 소파 하나. 달랑 이게 전부였다. 이들 공동 창업자들은 처음 6개월 동안의 월급은 20만 원씩을 가져가기로 했다. 일이 빨리 성사된다고 해도 어음이 회전하려면 6개월 정도는 걸리기 때문이었다. 당시 결혼까지 했던 박 대표에게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인디펜던스를 함께 운영하는 홍성호 대표와 함께

다행히 한 달 뒤에 박 대표와 홍 대표의 실력을 아는 주변 사람의 추천으로 큰 작업이 들어왔다. 대우 냉장고 펭귄시리즈로, 30초짜리 풀 3D 애니메이션 작업이었다. 물론 작업과정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고 한다. 기본적으로 집에는 거의 들어가지 못 했으며, 조그만 사무실에 들어온 광고대행사 간부로부터 '내 방보다 작은 데서 뭘 하겠다는 거야?'하는 소리도 들었다고 한다. 다행히 작업은 잘 끝나게 되었다. 좋은 첫 출발이었던 셈이다.

CF 영상 시장

"CF 업계는 무한대로 크는 시장이 아닙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경쟁은 치열해 지고, 한해 두해 회사 연차가 쌓여가면서 직원들의 인건비가 올라가는 등 회사를 경영하다 보면 작업자였을 때는 못 보던 것들이 보인다며 경영하는 입장에서의 어려움을 박 대표는 밝혔다.

CF의 특성 중 하나는 휘발성이다. 몇 주 동안 밤을 새면서 작업한 것도 한 달 정도면 사람들 기억에서 사라진다. "CF만 갖고 이 일을 끌고 나가기란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너무 힘듭니다." 박 대표는 CF 작업의 단점을 털어놓았다.

"해외에서 5~60대 백발이 성성한 노인 분들이 현장에 나와 작업 지시하는 모습을 봤을 때 참 부러웠습니다." 그러나 현재 우리 CG계는 그렇지 않다. 연일 이어지는 격무에 지쳐 3~40대쯤 되면 지쳐 떨어져 나가거나 관리 급으로 가서 작업에서 손을 놓는다.

"CF 작업은 생활을 지속시켜주면서 기술적인 트레이닝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CF 작업으로 큰 돈을 벌지는 못한다는 게 박 대표의 설명이다. "미키마우스 같이 한 캐릭터로 몇십 년 동안 수익을 창출하는 작품을 만들어야 합니다."

원더풀데이즈

그러던 중 이전에 몇 번 작업을 같이 했었던 틴하우스의 김문생 감독을 만나, '원더풀데이즈'라는 작품의 CG를 맡아볼 생각은 없느냐는 제의를 받았다고 한다. 박 대표는 제의를 선뜻 수락했다.

"우리도 애니메이션을 해보고 싶었지만 그렇다고 처음부터 모든 걸 다 하겠다고 뛰어들 처지는 아니었습니다. 틴하우스와 같이 애니메이션 작업을 하다 보면 작업 진행에 대한 노하우을 습득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애초에 1년 반이었던 작업기간은 운영 미숙 등 여러 문제점으로 인해 3년으로 두 배나 늘어나게 되었다. 이로 인해 인디펜던스는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은 출혈을 감수해야 했다. 경제적으로 손해를 보기는 했지만 결과적으로 좋은 경험이었다고 박 대표는 평가했다.

우선, 프리프로덕션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이 경험은 현재 프리프로덕션이 진행 중인 인디펜던스의 창작 애니메이션 '에그콜라'에 고스란히 적용된다. "이야기 구조가 정말 괜찮다고 생각하기 전까지는 최소한의 비용으로 가야합니다. 그래야 회사에 리스크가 없습니다. 제작에 들어가면서 이상있으면 바꾸지 하면 시간과 돈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납니다." 박 대표는 현재 '에그콜라'는 현재 시나리오와 디자인, 트레일러 2편을 완성해 놓고 미국측과 투자, 배급 관련 협상을 진행 중이라고 했다. 보통 장기적으로 진행되는 협상에서 박 대표는 느긋하게 대처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원더풀데이즈'는 또한, 파이프라인을 가다듬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이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자체적으로 작업 공정을 체크할 수 있는 인트라넷(IPMS: Independence Production Management System)이 1차적으로 완성이 되었다. 이 인트라넷은 현재 끊임없이 보완되면서 실무에 적용되고 있다.

현재 인디펜던스는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에서 기술개발 지원공모과제에 선정되어 이 인트라넷을 더 다듬고 있다. 이 결과물은 내년 6월쯤 공개된다고 한다. "인트라넷은 광고 쪽에 사용되는 짧은 파이프라인과 애니메이션 제작과 같은 장기 프로젝트에 사용되는 긴 파이프라인 등 한국 실정에 맞는 작업시스템으로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적극적인 산합협동

박 대표가 특별하게 관심을 갖는 분야는 교육이다. 가만히 앉아서 교육기관에서 배출하는 인력을 쓴다기 보다, 직접 교육현장에 다가가서 어떠한 인재가 필요하다고 주문하는 게 현실적이라는 판단에서이다. 그래서 카이스트(KAIST)나 에트리(ETRI), 서울대 등에서 CG 연관분야를 연구하는 연구원들과 커뮤니케이션을 꾸준히 하고 있다.

"자체적으로 연구인력을 꾸리기는 여의치 않습니다. 그래서 '연구소들이 하는 기술 개발에 대해 샘플을 제작과 공동연구 제안 등 어떻게든지 관계가 지속될 수 있도록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이들을 만나 종종 업계 현실을 토로하기도 한다. "요즘은 강연 같은 데 가면, 정부에서 연구기관에 애니메이션 관련 연구를 하라고 몇 백억 원씩 지원하는데, 실제 애니메이션 산업에 적용할 수 있는 기술은 거의 없는 실정입니다. 대학에서야 원천기술을 연구하는 게 학문적으로 더 가치가 있겠지만 실제 산업에서 필요로 하는 것은 지금 당장 사용할 수 있는 응용기술이라고 실제로 필요한 사항을 요구합니다. 이런 얘기를 계속하고 다니고는 있는데 모르겠어요.. 어떻게 바뀔지는.."

산학협동을 보다 현실적으로 접근하고자 회사 견학 프로그램과 인턴십 과정을 마련했다. 인디펜던스가 CG를 담당한 KBS '성웅 이순신'은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 학생들이 참가해서 함께 만든 작품이다.

이와 함께 인디펜던스가 매년 신경을 쓰는 것이 해외 유수의 애니메이션 작업자들을 초청해서 그들의 작업 노하우를 듣는 세미나를 개최하는 것이다. 인디펜던스가 관여한 세미나는 자체적으로 개최한 슈렉1, 슈렉2 세미나, 그리고 관련 작업자 섭외를 진행했던 지난 해 경기디지털아트하이브 애니메이션 세미나가 있다. 박 대표는 앞으로도 이런 세미나를 정기적으로 개최해서 세계 유수의 애니메이션 업체들이 그간 쌓아왔던 파이프라인과 최신 기술을 배우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박영민 대표는 CG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한국의 CG상황이 보다 나아지기를 바란다. 박 대표는 그러나 요즘 고민이 있다. 인도나 중국 등지의 CG 수준이 나날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박 대표가 예상하는 우리의 유예 기간은 2~3년. 이 안에 우리가 성공적인 작품을 만들어 내지 못한다면 급성장하는 이들 나라에 일을 뺐길 수 있다고 박 대표는 우려한다.

"어떻게든 좋은 콘텐츠를 갖고 우리나라만의 경쟁력을 가져야 합니다. 정말 위기 의식을 공유하고 각자가 협동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공멸합니다. 그 시점이 3년 안이라고 저는 봅니다."

그렇다고 박영민 대표는 걱정만 하지 않는다. 다양한 방법으로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노력한다. '에그콜라' 이외에 또 하나의 창작 애니메이션을 준비하고 있으며, CF 제작으로 쌓여진 기술을 바탕으로 영화특수효과와 드라마 CG 등 다양한 분야로 업무영역을 확장하고 있고 내년에는 중국에서의 비즈니스도 추진하고있다.

"행복이라는 것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것입니다. 이 일이 좋아서 직업을 선택한 직원들에게 이 일을 오랫동안 할 수 있도록 해주고 싶습니다." 인터뷰 말미에 박 대표가 한 말이다. 박영민 대표의 이 소망이 이뤄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cgLand 송근우 기자 egtree@cgland.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