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그래픽 작업을 할 때 혹시 이런 질문을 해 본 적은 없는가?

'왜 우리는 이런 소프트웨어를 만들 수는 없는 걸까?'

아다시피 포토샵이나 드림위버, 마야나 맥스 등 우리들이 사용하는 대다수 그래픽 소프트웨어는 해외에서 만든 것들이다. 우리가 만든 소프트웨어가 없기 때문에 우리가 치루는 비용은 적지 않다.

거의 매년 업그레이드가 이뤄지므로 최신 경향을 따라 가려면 적지 않은 재정적 출혈을 감수해야 한다. 또한 소프트웨어의 개선 사항이나 요구사항 또는 버그가 생길 때 해당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시간과 인력이 낭비된다.

미국에서는 개발사와의 활발한 커뮤니케이션으로 이 부분이 쉽게 해결된다. 하지만 같은 돈(또는 더 비싼 비용)을 지불하고 같은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 우리에게 이 부분은 그리 쉽지 않다. 모르긴 몰라도 문제에 봉착했을 경우 개발사에 문제해결을 요구를 하는 것보다 끙끙대다 자체적으로 대충 해결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훨씬 많을 것이다.

이게 현재 우리가 처해있는 현실이다.

답답하지만 뾰족하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이들이 우리가 만든 소프트웨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우리 CG환경에서, 가장 세계적인 품질을 갖고 있는 그래픽 솔루션이 한국에서 얼마 전 나왔다면 믿겠는가? 그것도 CG에서 가장 까다로운 분야 중 하나인 천(Cloth) 시뮬레이션 소프트웨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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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gLand는 현재 높은 사실성과 편리함으로 국내외에서 호평을 받고 있는 천 시뮬레이션 플러그인 "퀄로스(Qualoth)" 개발자인 최광진 박사를 만나 개발 경위와 앞으로의 계획을 들어 보았다.

마야에 플러그인 형태로 삽입되는 퀄로스의 메뉴 화면

 

서울대는 참 연구동도 많다. 4층 또는 그 이상 고층의 건물들이 백 동 이상 2백 동에는 조금 못 미치게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이 가운데 한 곳, 자동화시스템공동연구소 에서는 우리나라 CG제작 환경을 크게 변화시켜 줄 작지 않은 연구가 진행 중인 최광진 박사의 연구실이 있다.

서울대(최 박사 연구실 근처)

한참을 헤맨 끝에 찾은 최 박사의 연구실에는 의자 몇 개와 책상 몇 개, 단촐했다. 그러나 이 곳에서는 퀄로스의 꾸준한 패치가 진행 중이며, 동시에 CG와 관련한 차기 프로그램 개발 프로젝트에 대한 아이디어가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최광진 박사의 인상은 영낙없는 연구자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개발한 소프트웨어에 대해 차분하고 논리적으로 설명을 해주었다.

품질이 보장되는 천 시뮬레이션 프로그램 "퀄로스"

"퀄로스는 Quality와 Cloth 두 글자를 합친 합성어입니다."

이 이름은 마야의 플러그인인 동시에 최 박사가 동료와 함께 설립한 FXGear사의 첫 상용 소프트웨어이기도 하다.

"아주 복잡한 고품질을 요하는 상황에서도 굉장히 좋은 성능을 내는 그런 퀄리티 있는 천 시뮬레이션 결과물을 낸다는 의미에서 그런 이름을 붙였습니다."

퀄로스에 대한 최 박사의 자신감은 대단하다. 그러나 이게 자만심은 아니다. 기존의 천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의 경우, 다루기도 쉽지 않으려니와 어느 것은 되고, 어느 것은 안 되는 등 사용자의 속을 썩히는 경우가 적지 않았었다. 그러나 퀄로스는 이러한 타 천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에서 안 되는 문제들을 손쉽게 해결하곤 한다. "현재 상용으로 나와있는 어떤 경쟁 툴보다 완성도가 높다고 생각합니다." 최 박사는 퀄로스의 우수성을 자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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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광진 박사가 꼽은 퀄로스의 가장 큰 장점은 거의 완벽한 "충돌 제어 능력".

한두 겹의 옷이 아니라 대여섯 겹의 옷을 걸친 CG캐릭터가 워킹을 하는 데도 각 천들이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 잘 시뮬레이션 된다. 보통 이런 경우 타 프로그램의 경우 쉽게 영역이 충돌되는 한편 시뮬레이션 자체가 붕괴되는 결과가 초래된다.

이에 대해 최 박사는, 퀄로스는 "연속충돌처리 이론" 등 충돌처리에 관한 우수한 이론들을 적용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보통 캐릭터에 옷을 입히고 기존의 클로스 시뮬레이터를 사용해서 시뮬레이션 하게 되면, 캐릭터가 과격하게 움직이거나 옷이 몸 사이에 끼는 상황에서 충돌처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시뮬레이션을 더 이상 진행 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른다. 그러나 퀄로스는 물체가 빠르게 움직이거나 복잡하게 옷이 엉키는 상황에서도 자체충돌처리가 완벽히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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퀄로스의 두 번째 장점은 "질감".

최 박사는 2002년 시그래프에서 “Stable but Responsive Cloth”라는 제목으로 논문을 발표해서 그 해 시그래프에서 세계 연구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그 논문의 이론의 핵심은 즉좌굴(Immediate buckling) 이론을 적용한 새로운 물리적 모델과 안정적 시뮬레이션 기술이라고 최 박사는 설명한다.

시그래프는 원래 그래픽스 기술에 대한 정보교류의 장으로 출발했다. "시그래프는 학회명칭입니다. 연구자들이 논문도 발표하고 토론하면서 최신 기술에 대한 정보 교류가 이루어지는 곳이죠. 정식 명칭은 (ACM SIGGRAPH) 이고, Association for computing machinery(조직명칭), special interest group on graphics(그래픽스 분과)의 약자입니다. ACM이 조직한 학회는 시그래프 말고도 SIGARCH, SIGCHI등 수많은 분과가 있습니다(www.acm.org). 참고로 ACM은 computer science에 관련된 세계에서 가장 크고 유명한 학술단체입니다. 시그래프는 학회에서 출발하였지만 그래픽스라는 성격상 전시회나 필름 페스티발 등의 행사가 크게 주목을 받으면서 좀 더 광범위한 행사 성격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학회가 아닌 전시회로 많이 인식되고 있는데, 이 부분은, 엔지니어를 제외한 대부분의 국내 CG인들이 오해하고 있는 부분인 것 같아서 참고로 말씀드립니다." 시그래프에 대한 최광진 박사의 보충설명이다. 시그래프 2004

마야 클로스 등 기존의 시뮬레이션 방식은 직물의 특성을 정확히 반영하지 못한 물리적 모델이기 때문에, 질감의 표현, 특히 주름의 표현 등에 있어서 굉장히 제약이 많았다. 즉 옷이 변형됨에 따라 자연스러운 주름이 생기지 않고, 시스템이 불안정해져서 계산 시간 또한 오래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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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최 박사는 즉좌굴 이론을 직물 시뮬레이션에 적용시켰다. 그 결과, 시뮬레이션의 계산 속도나 안정성이 향상됨은 물론, 물리적 질감에 있어서 표현의 폭이 대폭 넓어졌다. 이로 인해 얇고 가벼운 실크 같은 소재부터 두껍고 무거운 데님(denim)등의 표현까지 자연스러운 주름을 손쉽게 생성할 수 있게 되었다.

국내외 베타 테스트에서 성능 입증

퀄로스의 성능은 국내외에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베타 테스트에서 입증되고 있다.

디즈니, 드림웍스, 이미지웍스, 픽사 등 미국의 대형 스튜디오에서는 퀄로스를 현재 베타 테스트 및 구매가 진행 중에 있으며, 관련 성능의 우수성에 대해 긍정적인 답변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아직 어떠한 프로젝트에서도 이 플러그인을 사용해서 성공적으로 제작을 했다는 '실적'이 없으므로 제작 공정에의 전폭적인 도입은 아직 주저하고 있다고 최 박사는 설명했다. 확실하게 안정성이 입증되지 않는 한 획기적인 도입을 주저하는 미국 애니메이션 제작사의 신중함과 보수주의가 드러나는 대목이었다.

최 박사는 그러나 조만간 이러한 문제가 극복되리라 생각하고 있다. 퀄로스는 국내에서도 여러 제작사에서 테스트가 활발하게 진행 중인데, 이들 회사가 진행 중인 프로젝트에서 퀄로스와 관련한 훌륭한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여기에서 나온 데이터는 해외에서 퀄로스를 파이프라인의 일부로 채택하는 최종 결정을 크게 도와줄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다.

퀄로스는 현재도 계속 개발이 진행 중이다. 최 박사 자신은 물론 테스트를 해본 회사에서 퀄로스의 우수성을 증명하고는 있지만 아직 가야할 길은 남았다.

최 박사가 퀄로스를 개발했던 연구실

일반인도 쉽게 쓸 수 있는 천 시뮬레이션 지향

"아직은 부족합니다."

최 박사는 신중하게 퀄로스가 개선해야 할 점들이 많이 남았음을 밝혔다. 비록 현재 나와있는 천 시뮬레이션보다 성능이 좋지만 앞으로 나올 시뮬레이션 소프트웨어보다 더 나을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최 박사가 말하는 퀄로스가 더 발전해야 할 길이란, "일반 애니메이터가 편하고 쉽게 옵션의 변화를 주면서 원하는 천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이란다.

더 나아가 일반인들도 쉽게 천 효과를 낼 수 있는 소프트웨어로 발전시키고자 하는 게 최 박사의 계획이다. 이와 관련해 최 박사는 퀄로스를 의상 디스플레이 부문에도 응용하고자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훨씬 어려운 길을 자처하고 있는 셈이다. 이에 대해 최 박사도 퀄로스가 애니메이션 분야에서는 성능을 칭찬 받을지 몰라도 의류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는 아직 시뮬레이션이 자연스럽지 않다는 지적을 받는다고 어려움을 털어 놓았다.

"그러한 요구사항을 충족시키려면, 앞으로 해야 할 일이 지금까지 했던 일보다 더 많을 수도 있습니다."

최 박사에게는 고생스러운 일이겠지만, 얼마나 더 소프트웨어가 발전할지 자못 기대가 되는 대목이었다.

개발 초기

천 시뮬레이션 소프트웨어는 아무런 바탕이 없는 가운데 뚝딱 쉽게 만들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렇다면 퀄로스는 어떻게 개발이 시작된 것일까?

먼저 최광진 박사의 이력을 밝힐 필요가 있다.

2004년 ILM스튜디오, 대학원 시절부터 최 박사를 지도해 준 고형석 교수와 함께

92년 서울대학교 전기공학부에 입학한 최광진 박사는 96년 대학원에 들어와서는 고형석 교수가 이끄는 그래픽스 및 미디어 연구실에 들어가 3D 캐릭터 애니메이션 엔진을 개발하게 된다. 또한 박사과정 재학시절인 98년부터 3년 동안 인체 동작 데이터의 실시간 변형 및 편집 기술에 관한 연구를 진행한다.

그러나 박사 과정에서 연구한 모션캡쳐를 이용해 얻어진 인체 동작 데이터의 실시간 변형 및 편집 기술은 관련 영역에 대한 강력한 소프트웨어인 필름박스(Filmbox)의 등장과 마그네틱 모션캡쳐 기기에서 광학식(Optical) 모션캡쳐 기기로의 모션캡쳐 트렌드 변화로 인해 연구성과는 안타깝지만 빛 바래 버렸다.

그래서 최 박사는 연구의 방향을 상용 소프트웨어로는 표현하기 힘든 CG효과 생성으로 돌리게 된다. 그 즈음 최 박사의 관심에 든 게 유체 시뮬레이션과 천 시뮬레이션, 물리 시뮬레이션 등의 분야였다. 퀄로스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제작 라인에서의 검증을 거친 뒤 상용 소프트웨어 출시

최 박사는 앞으로 퀄로스를 포함, CG 제작에 필요한 다양한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야심찬 계획을 갖고 있다.

특히 최 박사는 제작 현장에서 사용을 해본 뒤 검증을 거친 완성된 소프트웨어를 상용으로 내놓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앞으로 개발되는 대부분의 기술과 소프트웨어는 실제 CG 제작 파이프라인에 적용되어 검증된 후, 축적된 노하우를 바탕으로 상용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생각입니다. 아무리 기술이 뛰어나더라도, 제작시 발생할 수 있는 실질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면 그 기술의 가치는 제한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퀄로스는 검증과정이 상당 부분 진행된 상태로 FXGear를 통해 판매가 진행 중이다. 또한 앞에서 밝힌 것처럼 완벽해질 때까지 지속적인 업그레이드는 진행할 계획이다.

퀄로스 이외에 최 박사가 개발하고 있는 툴들은 Hair, Fur, Deformation에 관한 것들이다. 최 박사는 현재 서울대 그래픽스 및 미디어 연구실, 그리고 한국전자통신연구소 등의 연구 인력들과 공동으로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과연 어떤 소프트웨어가 앞으로 나오게 될지 매우 기대된다.

You are only limited by your imagination

"CG를 하다보면, “You are only limited by your imagination”이라는 홍보 문구를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이 문구를 현실화 할 수 있는 기술력을 가진 모습으로 FXGear가 성장하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러한 기술력을 통해 국내 CG 영상 산업 발전에 작지 않은 기여를 할 수 있으면 하는 것이 저의 바람입니다. "

국내 CG 영상 산업 발전에 도움이 되고 싶다는 의견을 피력한 최광진 박사는 상상을 현실로 만들 수 있는 툴을 만들고자 노력하겠다고 다시 한번 포부를 다졌다.

최 박사를 취재하면서 기자는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우리 CG아티스트들이 우리가 만든 툴로 CG 작업을 하는 게 결코 허황된 상상만이 아님을 확신했다. 최광진 박사가 이끄는 FXGear의 활약을 기대해 보자.

 

cgLand 송근우 기자 egtree@cgland.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