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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터들을 위한 그래피직스의 액팅마임스쿨이 성황리에 진행되고 있다.

(주)그래피직스에서는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의 후원으로 <2D/3D/게임 애니메이터를 위한 창의적 액팅/마임스쿨>을 지난 7월 6일에 개최하였다. 이는 9월 3일까지 2개월간 진행되는 과정으로 주 2회씩 교육이 실시되고 있다.

본 교육과정은 2005 문화콘텐츠 장르별 특화교육지원 사업에 선정된 케이스로서 국내 애니메이션 작품이 갖는 한계에 대한 원인을 산업적 측면에서만 접근할 것이 아니라 애니메이터들이 현장에서 느끼고 있는 창의적 영감부족에 대한 대안을 모색해보자는 취지에서 기획되었다.

그간 국내 애니메이션계의 문제점은 주로 산업적 부분에 대한 지적으로 모아져온 편이다. 최근 들어 독창적인 창작 시나리오의 부재, 프로듀서 혹은 감독의 역량부족 등에 관하여 자주 언급되어지고 있는데, 정작 작품 형상화의 최전선에 있다고 할 수 있는 애니메이터라는 포지션은 지나치게 관심대상에서 제외되어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번 행사는 바로 캐릭터들의 모습은 물론 움직임 하나하나까지를 직접 만들어나가는 역할을 해내고 있는 애니메이터들이 창작과정에서 느끼는 고민을 최대한 반영, 애니메이션계의 한계를 좀더 다른 차원에서 접근해보자는 취지를 담고 있으며, 그러한 기획이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에서 실시한 “문화콘텐츠 장르별 특화교육 지원사업”과 성격적/시기적으로 맞아떨어짐으로써 시너지를 만들어냈다고 할 수 있다.

해부학

액팅/마임스쿨의 출발점, 제작현장에서 얻은 고민이 모티브가 되다

설립 5년째의 3D애니메이션 회사인 (주)그래피직스의 대표이사 홍성욱은 큰 고민에 빠져있었다. 제작되고 있는 애니메이션의 캐릭터들이 생명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여러 차례 retake를 해 보았으나 한계가 있었다. 상당기간 가졌던 프리프로덕션의 기획자료가 시각화 되는 과정에서 더욱 입체적인 생명력을 갖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생명력이 퇴색되어 가고 있었다. 모션캡쳐의 방법도 사용해 보았지만 기대할 만한 결과를 얻지 못하였다.

이러한 고민을 안은 채 보게 된 한 연극공연에서 그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공연이 끝난 뒤 배우 안석환을 사석에서 만나 그가 취한 캐릭터 해석 방법론 및 동작으로 승화시키는 과정 등에 관한 얘기를 듣던 중 힌트를 얻게 된 것이다. 즉, 애니메이터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신체연기 메소드를 배울 수 있는 체계적인 교육과정을 만들어보면 어떨까하는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되었고 그것을 보다 구체화시키는 작업에 착수하였다. 관련분야 전문가들을 직접 만나서 상의하며 프로그램 제안의 윤곽을 잡아가던 중 배우 안석환씨를 비롯한 공연계 인사들을 중심으로 강사진을 구성, 성균관대학교 공연영상문화연구소의 후원을 얻어 교육커리큘럼을 구체화시키게 되었다. 이를 진행함에 있어서 애니메이션 및 게임현장 실무자들의 목소리를 최대한 반영하였고, 수강생 모집 당시 애니메이터들의 높은 호응을 얻어 현재 성황리에 진행되고 있다.

커리큘럼 구성회의를 통하여 얻은 결론은 ‘움직임’이 내러티브에 부여하는 무한한 가능성이다

<2D/3D/게임 애니메이터를 위한 액팅/마임스쿨>의 내용을 구성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시되었던 부분은 ‘교육내용이 과연 애니메이션에 어떤 식으로 적용될 수 있는가’ 하는 부분이었다.

애니메이션 비평, 해부학, 연기, 마임, 무용, 모델, 영화연출 등 다양한 분야의 권위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가졌던 전체 강사진 회의석상에서 다양한 애니메이션 자료를 함께 보면서 공유할 수 있었던 의견은 바로 내러티브에서 ‘움직임’이 갖는 무한한 가능성이었다. 즉, 애니메이션이란 시나리오 작가에 의해 ‘완결된 텍스트’를 연출가가 ‘영상으로 옮기는’ 개념의 linear한 과정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작가->감독->애니메이터’와 같은 형태의 작업방식이 아닌, 서로가 수직적 혹은 linear한 작업구조에서 벗어나 지극히 자유로운 방식으로 interactive한 소통을 하게될 때 비로소 재미있는 이야기도, 생동감있는 움직임 표현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즉, 이야기가 움직임을 낳을 수도 있지만, 움직임을 통해서 이야기에 대한 아이디어를 떠올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 어떤 박진감 넘치는 내러티브 없이도 지극히 섬세한 움직임과 표정만으로 이끌어가는 이야기가 갖는 흡인력이 우리에게 커다란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것처럼, 이야기 속에서의 ‘움직임’이 갖는 가능성이란 무한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액팅/마임스쿨과도 같이 다양한 분야의 창작자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자유로이 소통하며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더없이 중요한 것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회의에 참석한 강사진들은 자신들이 애니메이션에 있어서는 비전문가의 입장이지만 움직임을 표현하는 것에 있어서만큼은 각자의 분야에서 전문가의 입장이기에 각기 애니메이션에 관한 자신만의 독특한 시각과 견해를 매우 진지하고 활발히 제시해주는 등, 딱딱하고 형식적인 교과정 구성회의가 아닌 그 자체가 하나의 훌륭한 강의가 될 수 있을만큼의 열띤 분위기를 만들어주었다.

연기종합

애니메이터는 문화인력인가? 산업인력인가?

언제부터인가 문화콘텐츠가 갖는 잠정적 상품가치가 과잉해석되면서부터 애니메이션 역시 one source multi use 운운하며 잘만 되면 황금알을 낳는 거위처럼 인식되는 풍조가 생겨나기도 했다. 그만큼 애니메이션 및 게임회사들의 숫자는 몇 년전에 비해 급격히 늘어난 실정이며, 그만큼 여러 가지 경로를 통해 수많은 애니메이터가 배출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버린 애니메이션 교육기관은 이미 숫자적으로 포화상태이며 사실상 교육내용의 퀄리티에 있어서도 상당부분 회의적인 평가가 지배적이다. 즉, 교육기관에서 배출하는 애니메이터 인력들이 스스로 준비된 상태라고 볼 수 있는지에 대한 판단이 모호한 상태인 것이다.

되는 분야로 포화집중되는 현상이 문화콘텐츠에 대하여 부정적 영향을 끼쳐온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즉, ‘산업’은 있되 ‘문화’는 없는 양상으로 인하여 일종의 정서적 공황상태에 빠진 이들 중에 분명 애니메이터들도 속한다고 봐야한다. 어떤 측면에서 볼 때 그들은 문화인력이라기보다는 산업인력이다. 국가적/사회적 차원에서 서포트되었어야 할 영역은 순전히 애니메이터들의 자가발전을 통하여 지탱되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은 이제 정서적 고단함에서 벗어나 그동안의 갈증을 해소시켜줄 수 있는 대안을 누릴 자격이 있다.

모델수업

숨겨진 애니메이터, 그들의 숨겨진 열정과 고민들

<2D/3D/게임 애니메이터를 위한 창의적 액팅/마임스쿨>에 지원한 애니메이터들의 지원동기를 읽어보면 전체적인 의견이 한 곳으로 모아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지원자 모두의 공통적 의견은 ‘기술력보다 창의력이 중요함을 피부로 느낀다’는 것이었고, 보다 나은 작품을 만들고 싶지만 혼자만의 힘으로는 역부족이라는 것이었다. 중요한 것은 애니메이터 자신이 현실과 자기자신의 한계를 지극히 냉정한 시선으로 판단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더 나은 작품을 만들고자 하는 분명한 열정이 있다는 것이었다. 애니메이터가 되고자 하는 이들, 그리고 애니메이터로서 활동하고 있는 이들 모두에게 절실한 것은 바로 ‘기술교육’이 아닌 ‘정서개발’이라는 지극히 당연한 결론을 제시되는 지점이다.

참가자의 대다수는 근무하는 사무실 위치가 교육장소인 대학로까지 족히 1시간 넘게 걸리는 곳에 있음에도 거의 결석없이 부지런히 수업에 참석하는 열의를 보여주고 있다. 이는 이제까지 이러한 성격의 교육과정에 대한 끊임없는 요구가 있어왔다는 것에 대한 강한 반증이라 할 수 있다.

액팅/마임스쿨의 1주차 교육이 끝난 후 마련된 회식자리에는 수강생 전원과 주관사인 그래피직스의 대표이사 및 기획팀원이 참석하였는데, 교육과정 및 업계현실 등에 관한 대화를 보다 허심탄회하게 나눌 수 있었다. 함께 자리했던 이들은 애니메이터로의 길이 현실적 조건으로 따져보았을 때 결코 좋은 여건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애니메이션에 대한 나름의 열정으로 버텨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마냥 꿈만을 쫒을 수 없는 상황이기에 눈앞에 주어진 대로 일을 해나가고 있지만 그러한 과정중에 갖게되는 매너리즘과 한계로 많은 답답함을 느낀다는 심정을 토로하였고, 그러한 부분은 모두가 공감하게 되는 부분이었다.

애니메이터들의 몸 연기, 서툴지만 진지한 태도, 그리고 그들의 빛나는 아이디어들

<2D/3D/게임 애니메이터를 위한 액팅/마임스쿨>은 현재 30명 가량의 수강생이 참여, 예상외로 매우 적극적이며 활기찬 분위기의 수업이 진행되고 있다. 작업의 특성상 대부분의 애니메이터들은 일반적으로 다소 숫기가 없거나 무언가를 표현함(특히 신체로 표현하는)에 있어서 상당히 수줍어하는 성향이 있는 편이어서 초기에 커리큘럼 구성회의 등의 자리에서 그러한 부분에 대한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막상 교육과정이 시작되자, 과중한 업무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빠짐없이 출석, 매우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신체를 통한 표현을 경험해본 적이 거의 없는 이들인만큼 수업진행중 각자의 과제를 발표함에 있어서 대부분의 수강생들의 몸놀림은 많이 서툴렀지만, 어느 누구하나 수줍어하며 뒤로 빼거나 웃음을 터뜨리거나 하지 않는, 지극히 진지하고 성실한 태도로 매 수업에 임하고 있다.

참고로, 7월말에 있었던 임도완 교수(서울예술대학 교수/연극연출가/연극배우)의 수업시간에는 다양한 방법의 신체표현에 대한 강의가 이루어졌는데, 특정동물 혹은 사물을 사람에게 대입한 캐릭터를 몸으로 표현해보는 과제발표, 구겨진 비닐과 종이가 펴지는 과정을 몸으로 표현해보기, 그리고 물컵에 떨어뜨린 각설탕이 녹는 과정을 조별로 관찰한 뒤 각자 표현해보고 그 모티브를 이용하여 하나의 스토리를 만들어보는 등... 이전에는 접해볼 수 없었던 내용을 배울 수 있었는데, 조별로 스토리를 만드는 과정에서는 애니메이터가 아니라 시나리오 작가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너무나 기발한 아이디어와 감성을 보여줌으로써 다시 한번 놀라게 하기도 했다.

오는 8월 13일(토)에는 현재 연극배우/영화배우/탤런트로 활동중인 안석환씨의 강의가 있는 날로서, 4컷만화 분량의 대사를 표현함에 있어서 다양한 동물/식물의 물성을 적용시킨 캐릭터연기 등에 관한 내용으로 수업이 진행될 예정이다.

기초신체훈련

강사진들의 전체적 반응 “오히려 제가 배우고 갑니다”

커리큘럼 회의당시 강사진들은 본 행사의 취지에 상당부분 공감하며 자신의 분야에서의 전문가적 입장과 일반 애니메이션 관객으로서의 입장에 대한 견해를 적극적으로 피력해주었다.

그들은 강의를 시작하기 이전, 자신들이 애니메이션에 있어서는 비전문가의 입장이기에 어떠한 방법으로 수업내용과 애니메이션과의 접점을 찾아나갈 것인지에 대한 부담감을 가졌었는데, 대부분의 강사진들(특히 실기과목)의 강의를 마치고 난 후의 공통적인 반응은 ‘애니메이터들을 직접 대해보기는 처음이라 많이 걱정을 했었는데 너무나 진지하게 임하는 모습들을 보고 많은걸 느꼈다. 오히려 내가 배우고 간다’며 강사진으로 초청해준 것에 대해 오히려 감사를 표하기도 했다.

의상과 소품에 따른 자세 및 표정설정 등에 관한 수업을 진행한 모델 송주희씨는 ‘다들 최선을 다해 열심히 따라해주는 모습이 너무 귀엽다’며 ‘예상외로 뻔뻔(?)하고 적극적으로 자신을 표현해주어서 많이 놀랐다. 다들 표현을 안해왔을 뿐이지 많은 끼와 에너지를 가진 사람들이라고 느꼈다’며 수강생들을 칭찬하며 매우 즐거워하기도 했다.

크로스오버적인 발상의 전환이 필요 - ‘자유로운 몸이 자유로운 머리를 만든다’

한때 ‘크로스오버’가 유행어처럼 회자되던 때가 있었다. 해석하기에 따라서 복잡한 개념일 수도 있겠지만, 국내 애니메이션이 좀 더 나아지기 위해서는 크로스오버적인 사고가 필요함을 다시한번 확인하게 된다. 즉, 각종 미디어를 통해 거론되는 ‘국내 애니메이션계의 문제점’에 관한 대안을 모색함에 있어서 단순히 산업적 상황 혹은 양질의 시나리오 부재 등으로만 초점을 맞추는 것은 뻔한 방식의 사고를 반복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애니메이션을 하나의 텍스트라고 보았을 때, 이제까지의 대안모색에 있어서 그 시도의 대부분은 텍스트의 바깥에서 안으로 들어가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반대로 텍스트 창작의 최전방에 서있는 애니메이터들이 머리도 손도 아닌, ‘몸’을 움직임으로써 전혀 색다른 종류의 영감을 받는 기회를 통해 창작과정에 신선한 공기를 불어넣는 계기를 만들고자 한다.

즉, 머리가 시키는 일을 몸이 해내는 구도에서 벗어나, 몸이 만들어내는 움직임을 통해 새로운 영감을 받아 의외의 아이디어를 얻게되는 발상의 전환을 일으켜보자는 것이다.

신체표현

국가지원사업이 갖는 커다란 의미와 가능성, 그것이 던져주는 희망적 암시

언제부터인가 장르의 구분이 모호해지면서 창작물을 바라봄에 있어서 장르적 ‘구획 나누기’는 거의 무의미해져버렸다. 즉, 창작자는 더 이상 한분야만의 전문가로서의 포지션만을 고집하기가 어려워진 부분이 있다. 그러나 개개인이 모든 분야의 전문가가 될 필요는 없다. 자신의 분야를 하나의 좌표로 하여 다양한 분야의 인재들과 네트웍을 조성하여 지극히 자유로운 방식으로 각자의 세계를 공유하며 소통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금년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에서 실시한 “2005 문화콘텐츠 장르별 특화교육지원”사업은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문화콘텐츠를 양산해내는 각 분야의 창작자들은 자신들의 창작상황 및 방식에서 느끼게 되는 많은 한계점으로 고민하고 있지만 그들 자신이 서로에게 해결책을 제시해줄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각자의 좌표에 갇혀있는 상황이다. 이번 <2D/3D/게임 애니메이터를 위한 액팅/마임스쿨>에 참여한 수강생들의 목소리가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자신들이 찾고 있던 것이 바로 이런 프로그램이라며 앞으로도 더 많은 형태와 내용의 교육과정이 생겼으면 좋겠다며 눈을 빛내던 애니메이터들이 곳곳에 존재하고 있기에 문화콘텐츠 장르별 특화교육지원사업은 더욱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수많은 국가지원사업이 그 취지와는 달리 근본적 취지가 퇴색되거나 악용되는 경우를 숱하게 접하게 되면서 많은 창작자들은 오히려 박탈감에 빠지기도 한다. 이번 기회를 통하여 국가지원사업이 절실한 취지를 가진 기획력과 만났을 때 어떻게 시너지를 낼 수 있는지를 직접 눈으로 확인시켜줌으로써 행사의 주관기관인 그래피직스는 물론, 교육과정에 참여한 애니메이터들은 상당부분 희망적 메시지를 안고갈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결과를 누구보다도 의미있고 희망적으로 받아들이게 될 주체는 바로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그리고 이를 지켜보는 다수의 사람들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