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사랑해도 되나요?' 약간은 겁먹은 듯한 표정과 어눌한 말투의 영화속 여주인공이 내뱉었던 이 대사가 한때 유행처럼 번졌던 경우가 있었다. 상대에게 말하는듯한 '사랑해!'가 아닌 물어보는 듯한 조심스러운 말투. 그 말투때문인지 필자를 포함한 여러 사람들에게 그 대사가 꽤나 신선하게 다가왔던 기억이 난다.
한번쯤 사랑을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아마 그 말을 내뱉기까지의 망설임과 약간의 두려움, 가슴설렘을 이해할 수 있기때문이리라. 끝임없는 화두로 등장하는 '사랑'. 이 사랑을 주제로 한 순도 100%의 3D 디지털 애니메이션이 드디어 탄생했다. 그것은 바로 '슈렉'!


슈렉을 말하는 이유

영화가 시작되면 동화책의 한 장을 박력있게 부욱 찢어서 과감하게 응가처리용으로 사용하는 한 인물이 나타난다. 초록빛의 몸에 덩치크고 개성강한 외모를 가진 그는 바로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슈렉'. 출중한 외모보다는 엽기적이면서도 개성강한 주인공이 그 어느때보다도 사랑받고 있는 요즘 세태를 반영이라도 하듯 초록 사나이 역시 이러한 시대흐름에 고스란히 부합하는 외양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이 사나이를 둘러싼 재미있는 외모와 성격을 가진 캐릭터들이 등장하면서 후라이팬에서 계란 뒤집기에 비할만한 반전들이 줄줄이 비엔나 쏘세지처럼 끊임없이 이어진다.
이 영화를 아직 못보신 분들을 위해 잠깐 정보를 흘리자면 무수한 반전가운데 최고봉(?)은 바로 피오나 공주의 실체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는 어찌하여 극장에서 개봉된지 꽤 지난 현시점에서 구구절절히 이 작품을 언급하는지 의아스러울지도 모르겠다. 혹시 그 중에는 이 글을 클릭한 자신을 책망(?)하는 분마저 있지 않을지 염려된다. 그러나 애니메이션을 좋아하고 '슈렉'을 좋아하는 필자가 이것저것 하고 싶은 말이 많기 때문이라고 말한다면 이해해주실지. 그럼 잠시 맘이 약해진 독자분들의 남은 관심을 모아모아서 서둘러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야할 것 같다. ^^

차가운(?) 디지털 애니메이션

'움직이는 그림'내지는 '살아있는 그래픽'이라고 불리는 애니메이션은 그 기법에 따라 몇 가지로 나뉜다. 그 중 대표적인 애니메이션 기법 중 하나가 '셀 애니메이션'으로, 이것은 종이에 그린 그림을 투명한 셀에 옮기고 그 뒷면을 채색한 후 배경 위에 셀을 겹쳐놓고 한 프레임씩 촬영해 나가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 기법의 경우 여러 사람이 분업해서 작업할 수 있다는 특성이 있어 상업용 애니메이션으로 주로 발전해왔다. 그러나 컴퓨터의 발달로 수작업 비중이 줄어들고 컴퓨터 작업이 늘어나면서 이 기법외에 각광받게 된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디지털 애니메이션'이다. 물론 이 기법의 경우 셀 애니메이션에 비해 제작비용이나 작업시간이 많이 소요된다는 단점이 있지만, 특정 이미지를 한번 작업해 놓기만 하면 이것을 다시 가져와 제작자가 원하는대로 변형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아무리 장점이 많다고 해도 사람의 손길을 거친 것 만큼의 정감있는 느낌을 표현하기는 힘든 법. 이때문에 디지털 애니메이션은 질감이나 표현면에서 다소 차갑다는 평을 많이 얻고 있다. 그러나 나날이 버전업되고 있는 애니메이션의 현상황을 살펴본다면 이 점은 서서히 극복되지 않을까.

자연스러움에 승부를 걸다!

앞에서 잠깐 디지털 애니메이션은 차가운 느낌을 준다라고 언급했다. 그렇다면 슈렉은 어떨까? 빈수레가 요란하다는 말도 있던데... 슈렉도 어쩔 수 없는 디지털 애니메이션이 아닐까? 그러나 다행히도 여러분은 그런 걱정은 꽉 붙들어 매셔도 된다. 슈렉을 본 순간 괜한 염려라는걸 즉시 깨닫게 될테니 말이다.
바로 여기서 슈렉의 또다른 인기비결이 등장한다! 그것은 바로 너무나 사실적으로 그려진 등장인물들의 표정이다. 흔히 애니메이션의 한계라고 불리는 표정묘사. 작품에 대한 상당한 열의로 똘똘 뭉친 카젠버그 감독을 중심으로 한 제작팀 전원은 이 점을 좀더 보완하기 위해 이를 극복할 만한 소프트웨어를 직접 개발하는 기염을 토한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미세한 근육의 움직임이나 옷의 주름같은 작은 움직임까지 표현해 낼 수 있게끔 해주는 '쉐이터'와 사물 표면의 빛과 그림자를 자연스럽게 표현해 질감을 나타낼 수 있게 해주는 '쉐이더'다. 뿐만 아니라 제작사인 PDI/드림웍스사는 지난 ’97년에 이 작품을 기획한 이후 약 5년이라는 긴 시간을 '슈렉'이라는 애니메이션에 투자했다. 결국 이 노력은 헛되지 않아 국내외 관객들의 인기는 물론이고 2001년 깐느 영화제 본선 경쟁부문에 진출작으로 선정되는 등을 보면 '뿌린대로 거둔다'라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

진정한 사랑이 숨어있는 작품

슈렉과 피오나. 제작진의 5년간의 노력과 열의 끝에 탄생한 이 두 주인공은 비록 처음엔 하늘이 반쪽나도 어울릴것같지 않은 외모로 만나게 되지만 결국 너무나 잘 어울리는 한쌍이 된다. 사실상 공중제비 발차기를 구가하는 고난도의 무술실력과 새를 폭파시키는 성악실력을 겸비한 피오나 공주를 감당할 이가 그리 흔하겠는가. ^^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그 많은 영화들처럼 '슈렉'역시 심금을 울리는 대사 한마디를 남긴다. 뚱뚱하고 못생긴 모습으로 돌아온 피오나 공주에게 그가 건네는 말. '당신은 지금도 충분히 아름다워요'라는 한 마디. 중간중간의 웃음과 아름다운 배경과 실제적인 표정묘사로 살아있는 애니메이션에 도전한 '슈렉'. 그리고 이를 감싸는 진정한 사랑. 저물어가는 여름날의 한 귀퉁이를 장식할 멋진 작품이라고 과감히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