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와 북유럽을 드나들면서 한국 상품과 문화를 알리는 행사를 기획하는 스밀라(한국 이름: 고민정) 객원기자가 스웨덴의 모바일 게임 산업 현황을 정리해 보았다. 모바일 게임 산업에 종사하는 분들에게 좋은 정보가 될 것으로 생각된다.

게임산업 육성에 열심인 스웨덴

스웨덴은 산업 클러스터를 통해서 게임 산업 육성을 꾀하고 있다. 세계적인 게임 제작인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웨덴 팝음악보다 더 큰 이익을 창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배틀필드 1942』

2002년에 출시된 『배틀필드 1942 시리즈』의 상업적인 성공은 70년대 후반 팝 그룹 아바의 성공과 비교할 수 있으며, 『리딕연대기(스타블리이즈)』에 대한 세계적 게임 평론가들의 찬사는 스웨덴의 대표적인 영화감독 ‘잉그마르 베르히만’의 영화작품에 견줄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 스웨덴의 영화나 문학 부문의 수출은 게임산업의 규모나 수출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이다.

현재 스웨덴 게임 산업에 관련된 인력은 불과 6백 명 정도지만 그 잠재적인 효과는 매우 방대하다. 미국, 영국, 일본과 함께 스웨덴은 온라인과 모바일 게임에 있어 우위를 자랑하고 있다. 스웨덴 국내 시장만 고려하더라도 2002년 기준, 컴퓨터 게임에 1.5 억 크로네(180억 원 상당)를 지출했다. 이는 영화보다 큰 규모로 스웨덴 9백만 인구로 볼 때 적지 않은 금액이다.

스웨덴 게임 제작자 협회 (The Association of Swedish Game Developers)는 컴퓨터 게임이 향후 스웨덴의 대형 수출상품이 될 것이며, 2015년까지 현재보다 4배 많은 25,000 명 가량의 고용을 창출할 것으로 전망했다.

스웨덴의 최대 게임 제작 업체로는 『배틀필드 시리즈』를 제작한 ‘디지털 일루젼스’ (Digital Ilusions, 줄여서 Dice)로, 2004년에 ‘EA’에 의해 인수된 바 있다. Dice는 게임부문에서 국제적인 상을 휩쓴 바 있으며, 최근 Xbox 360과 Playstation 3 등 차세대 콘솔게임 분야에 선두적인 주자로 약진하기 위해서 2006-7년 간 차세대 기술에 6천5백만 크로네(82억원)를 투자한다고 밝혔다.

모바일 분야에 특히 강한 IT 강국 스웨덴

스웨덴은 IT 분야에 있어서 강국이며, 무선 통신 분야에 있어 기술혁신 기업들의 본고장으로 NMT, GSM, WCDMA EDGE, Bluetooth 등과 같은 세계 무선통신 표준의 탄생지이다. 시장 환경을 보자면 개인용 컴퓨터, 인터넷, 광통신망, 모바일 폰 등을 일반인들이 광범위하게 이용(총 인구대비 모바일 폰 사용률이 98%)하고 있다. 스웨덴은 이처럼 무선 통신과 모바일 어플리케이션 발전에 우위를 차지하고 있어서 스웨덴 게임제작자들 역시 모바일 게이밍과 기존 게임의 통합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스웨덴은 특히 게임산업육성을 위한 산업클러스터가 국가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주요 스웨덴 교육, 연구 기관으로는 인터랙티브 인스티튜트, 린쇼핑, 노르쇼핑 대학, 빅토리아 인스티튜트 등을 들 수 있는데, 이들 기관들은 게임 디자인, 게임 제작, 프로젝트 매니지먼트 등 분야에 경쟁력있는 게임관련 커리큘럼을 제공하고 있다. 또한 공학 연구소 등도 창의적인 엔지니어 기술 등을 민간 부문으로 이전시키기 위해서 프로젝트를 다양하게 진행하고 있다.

이 같은 기술, 예술, 미디어, 쌍방향적 디자인, 컴퓨터 과학 등을 망라하는 다학제적(interdisciplinary)인 접근은 스웨덴의 게임 관련 교육, 연구 그룹이 지니고 있는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지난 2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국제 모바일 게이밍 수상식에서 최고의 기술부문상과 그랑프리 등 2개의 최고상을 수상한 ‘안델스 헨리손’(Anders Henrysson) 역시 노르쇼핑 (Norrkoping)이라는 도시에 위치한 NVIS(Norrkoping Visualization and Interaction Studio)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중이다. NVIS스튜디오는 컴퓨터 그래픽스, 시각화와 가상 현실 기술에 초점을 두고 연구활동을 진행하고 있는 중인데, 연구실적이 게임산업으로 직접적으로 연결되고 있다.

스웨덴 제 2의 도시인 예테보리(Gothenburg) 역시 지방 정부에서 시각화 센터(Visualisation Center)를 건립, 게임산업과 대학, 관련 업계를 잇는 인큐베이터 역할을 하고 있다.

모바일 게임 『뷔스비』

현재보다는 5년 뒤의 게임을 연구

인터랙티브 인스티튜트의 ‘예스카 헬레나 안델손' (Geska Helena Andersson)은 “스웨덴 게임 연구자들은 오늘날 판매되고 있는 컴퓨터 게임을 쳐다보지도 않는다. 이런 게임들은 너무 수동적이라고 여기곤 한다. 대신에 연구자들은 게임을 디자인하는데 있어서 게임이 향후 5년 안에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에 대해서 연구한다"며 스웨덴 게임 개발자들의 미래 지향적, 연구중심 특성을 강조했다.

“고도의 컴퓨터 기술적인 면이 스웨덴 게임의 경쟁 우위조건이었지만, 최근에는 디자인이라든지, 스토리 텔링 기법이라든지 타 문화적인 요소들이 게임에 흡수되어 흥미로운 상품이 제작되고 있다"고 스웨덴 컴퓨터 게임 인스티튜트(SDSI)의 ‘토미 팜'(Tommy Palm)은 전했다.

인터렉티브 인스티튜트 대표이사 스테판 트뤼베 씨(Staffan Truve)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허물다

기술력을 보여 줌은 물론, 현실과 가상을 섞은 스토리텔링으로 호평을 받는 게임 가운데 대표적인 사례로 『뷔스비』 게임을 들 수 있다.

뷔스비는 스웨덴 육지에서 동쪽으로 90Km, 발틱 해의 중심에 위치한 인구 6만의 섬인 고트란드에 있는 도시이다. 이 섬은 우리나라의 제주도처럼 기암괴석과 자연풍광, 그리고 7천년 전부터 내려오는 토착설화로 유명하다. 뷔스비는 중세에 발틱해의 해상교역 중심지로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 유적지에 등재된 바 있다. 인터렉티브 인스티튜드 소속의 제로게임 스튜디오에서는 이 중세 도시 뷔스비의 옛날 이야기를 이용해서 멀티 유저 모바일 게임을 만들었다.

매년 여름 열리는 뷔스비 시의 중세 축제. 소스 : gotland.net

북유럽 신화와 그리스 신화가 만나서 이 섬의 전설과 어우러진 독특한 캐릭터들, 왕 발데마르와 그의 신하들. 요정 트롤, 온갖 괴물들이 등장한다. 게임의 중심에는 이 섬을 수면 위로 올라오게 하려는 세력과 파도 아래 이 섬을 묻어두려는 반대 힘 간에 대립이 전제되어 있다. 이는 곧 신화적 세계와 과학적 현실 사이에서 이뤄지는 전쟁을 상징한다. 결국 기술이 이 두 세계를 힘과 이성이 지배하는 세계로 통합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게 뷔스비 게임이 바라는 궁극적인 이상이다.

게임에 등장하는 트롤이라고 불리우는 괴물 요정은 북유럽 신화에 자주 등장하는 캐릭터로 근본적으로 사악한 괴물은 아니지만 인간과 같이 실수를 연발한다. 질투, 자만, 탐욕, 무지, 때로는 눈치 없는 순수함으로 어리숙한 실수를 저지르곤 하여 사람들과 무척 친숙한 상상 속의 존재이다.

스웨덴의 대표적 트롤 작가 욘 바우어 (1882-1918) 작품. 소스 John Bauers Museum

스칸디나비아 어린이들은 트롤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이 캐릭터에 친숙하다. 아침에 이를 닦지 않으면 작은 이빨 트롤요정들이 이빨에 구멍을 낸다고 믿고 있을 정도이다.

뷔스비 게임의 유저는 트롤 요정의 혈통을 부여 받고, 특별한 능력을 가진 트롤 혈통을 찾아서 일가를 이루려는 모험에 참여하게 된다. 이 모바일 게임에는 마법 모으기, 수수께끼 풀기, 어려운 암호 해독하기, 장소 찾기 등 다른 게임 유저들과 같이 할 수 있는 기능이 있으며, 라이브 액션 게임 즉 게임 속의 장소를 직접 찾아 걸어가거나, 다른 게임 유저를 탐색하거나 협력하는 내용이 들어 있다.

인간들이 요정세계로 걸어 들어가다

요정과 신들이 더 이상 인간 세상으로 걸어들어오지 않는다면 아마 인간들이 이들의 세계로 걸어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모바일을 들고 게임의 장소로 직접 걸어들어가서 게임을 즐기고 간단하게는 지역의 역사와 전설과 교류한다는 컨셉은 이 도시 뷔스비에 있는 꼬불꼬불한 거리들이며 중세 교회, 학교 등에 - 한때 말괄량이 삐삐 시리즈의 촬영지였던 곳임 - 현대적인 활기와 재미를 부여했으며, 이는 시 차원의 관광정책과도 잘 맞아 떨어졌다.

그러나 현실과 가상을 뒤섞어버리는 이런 획기적인 게임 발상이 찬사와 환영만 받은 것은 결코 아니다. 어떻게든 라이브 게임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 게임 개발자들은 지역 주민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한 폐가에 빨간색 잉크물을 부어 놓고, 마치 귀신이나 괴물이 진짜로 존재하는 듯한 연출을 시도했다. 귀신이 출몰한다는 소문을 듣고 스웨덴 본토에서 프로페셔널 점성술사들이 몰려들어 귀신을 찾고 다니는 등의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하고, 또 한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짓궂게 장난을 쳐서 아이들이 실신을 하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래서 2003년에 제로 게임 스튜디오는 문을 닫을 지경에 이르기도 했으나, 연구 과정과 결과에 대한 국내외 호평이 이어지면서 후속 버전을 연구하고 있다.

『뷔스비』 게임

일례에서 보듯 모바일과 무선 기술에 있어서 앞선 기술을 보유한 스웨덴 게임 연구자들은 첨단 기술에 더해 어떻게 하면 지역의 설화 이야기 등 문화적인 요소를 스토리텔링 기법으로 연결시킬까를 연구하고 있다. 협력 기관으로 정보통신업체 뿐만 아니라 언뜻 보기에 서로 연관이 없을 것 같은 박물관 등과 프로젝트 협력작업을 하는 것도 흥미롭다. 과학, 역사, 문화, 예술의 경계를 허무는 다학제적 접근이 게임개발 프로젝트라는 첨단의 옷을 입은 이름으로 시도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