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간 CG인생, 향후..."

필자는 디지털 콘텐츠 분야 중 , 3D 애니메이션 프로덕션 ( “ 시네픽스 ” ) 을 1989 년부터 2005 년까지 운영한 경험이 있다 . 1989 년 당시 지금은 상상하기 어려운 낮은 사양의 PC 를 이용하여 간단한 3D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 것으로 회사를 시작했다 . 이해를 돕기 위하여 필자가 사용한 컴퓨터의 사양은 다음과 같다 .

CPU : Intel 386 (Clock: 33MHz)

RAM : 2~4MB ( 최근 CPU 의 캐시 사이즈 정도 )

HDD : 140~340MB ( 현재 SD 및 CF 메모리 보다 작음 )

Graphic Adapter: Truevision Targa Board

( 보드는 역사 속에 사라졌지만 Targa Format 은 아직도 이미지 포맷으로 굳건히 존재합니다 .)

OS : MS-DOS

애니메이션 소프트웨어 : AT&T Topas (3D), TIPS (2D Paint)

가격 : 소프트웨어를 제외하고 1,000 만원 이상

지금 생각하면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장비로 1990 년도에 방송대상을 수상한 KBS 6.25 40 주년 기념 다큐멘터리에 필요한 CG 영상을 제작하였다 . 지금 생각하면 무척 단순한 CG 영상을 제작하는 프로젝트였다 . 회사를 설립하고 처음 수주한 프로젝트이다 . 이후 PC 를 이용한 작업에 근본적인 한계를 느낀 필자는 워크스테이션을 도입하는 것을 검토하기 시작하였다 . 왜냐하면 생산성의 문제로 PC 를 이용한 작업으로는 도저히 생계가 해결되지 않았다 . 그래서 좀 더 빠른 성능의 워크스테이션을 검토하기 시작하였다 . 당시엔 어마어마한 고가였다 . 그런데 다행히 SGI 사의 Personal Iris 기종이 출시되어 그나마 저렴한 (?) 가격으로 선풍적인 인기였다 . 지금은 SGI 브랜드도 거의 기억하는 분이 많지 않을 정도로 PC 의 성능이 이미 워크스테이션의 성능을 추월한 것이 오래 전이다 .

90 년대 초반 대표적인 애니메이션 소프트웨어는 Alias, Wavefront, TDI Explorer 가 있었다 . 대표적인 Alias 는 소프트웨어 가격이 대략 1.5 억원이었다 . 고가로 구입하는 것이 도저히 불가능하여 , 당시 무명에 가까운 Softimage 를 도입하기로 결정하였다 . Softimage 의 Richard Szalwinski 라는 영업담당자가 한국을 방문하였는데 , 첫 사용자가 되면 50% 디스카운트를 해준다고 제안하였다 . PC 에서 Topas 를 사용하던 필자의 눈에는 어떠한 워크스테이션 소프트웨어도 환상적으로 보였다 . 디스카운트 전의 가격도 Softimage 가 Alias 보다 저렴하였으므로 , 50% 할인에 다른 선택은 없었다 . 그래서 1990 년부터 Softimage 와의 긴 인연이 시작되었다 . 당시 Softimage 영업 담당이던 Richard 는 90 년대 중반에 회사를 그만두고 Discreet Logic 을 설립하여 지금도 특수효과 소프트웨어로 유명한 Flame 을 개발하여 엄청난 성공을 하게 된다 . 재미있는 것은 Richard 는 원래 소설가였다 . Softimage 의 Founder 인 Daniel Langlois 가 영어를 잘 못해서 , 영어를 잘하는 소설가를 뽑았다가 , Richard 가 영업도 담당하였다 . Softimage 의 유명해지기 이전 , 1991 년 Siggraph 에 가면 , Founder 인 Daniel 과 직접 얘기할 수 있었으며 , 전 세계의 사용자가 모여도 별로 많지 않았다 . 지금 생각하면 재미있던 시절이다 .

필자가 Softimage 를 도입하고 , 처음 제작한 CF 가 부광약품의 파로돈탁스에 들어가는 약 3 초가량의 이빨이 나오는 장면이었다 . 제일기획의 발주로 3 초 분량의 장면을 제작하는데 1 달가량이 소요된 것 같다 . 그 당시 제작 단가는 CF 기준으로 1 초에 300 만원이었다 . 3 초 제작하면 900 만원으로 직원이 3 명인 우리 회사로서는 먹고 살만했다 . 역시 생산성 면에서 워크스테이션을 도입할만한 가치가 있었다 .

1990 년부터 1995 년까지 추가로 워크스테이션을 도입하면서 그럭저럭 회사를 운영했는데 , CG 시장이 괜찮아 보이니 , 많은 경쟁업체가 대규모로 설립되어서 가격 경쟁을 하게되어 , 필자의 회사도 매출도 줄고 부가가치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 비즈니스에서 영원한 것이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

심한 경쟁과 나이를 먹기 시작하니 , 더 늦기 전에 뭔가 만들어서 꾸준히 팔 수 있는 것 ( 나중에 생각하니 “ 지적재산권 ” ) 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 지금 생각하면 콘텐츠에 대한 개념을 깨닫게 된것이다 . 이전까지는 다른 기업이 필요한 영상을 용역으로 제작하는 개념이었지만 , 언젠가부터 내 것을 만드는 것이 중요한 목표가 되었다 . 그러던 상황에서 이 분야의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영향을 준 “ 토이 스토리 ” 를 보면서 결심을 하게 되었다 . 당시만 해도 3D 는 고가의 제작비 문제 이외에도 느낌이 차가와서 30 분이상 보는 것은 피곤해 극장판 애니메이션은 무리라고 생각하던 시절이었다 .

“ 토이 스토리 ” 를 보고 나서 너무나 부러웠다 . 결국 몇 년간의 노력 및 고민 끝에 “ 큐빅스 ” 가 탄생하였다 . 경험이 전혀 없던 우리직원 모두에게 너무나 힘든 일이었다 . 지금은 추억으로 남아있지만 , 모두 한마음으로 “ 큐빅스 ” 를 제작하던 시절이 다시 올 수 있을까 생각해본다 .

말도 많았지만 우리같이 작은 회사에서 제작한 첫 작품으로는 대 성공이었다 . 그 이후 몇 가지 프로젝트를 수행했지만 생각만큼 후속작을 성공시키기는 어려웠다 . 지금 생각하면 아마도 모든 콘텐츠 업체가 겪는 근본적인 문제라 생각된다 . 어쩌면 히트작 콘텐츠를 계속 만드는 것은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 이후에도 여러 좋은 기회가 있었으나 , 잘 성사되지 않았다 .

그러던 중 , 이 분야에 약 17 년쯤 종사한 필자는 2005 년 하반기 우연한 계기로 하던 일을 잠시 쉬기로 결정하였다 . 같은 일을 너무 오래하여 솔직히 좀 지친 상태였다 . 문득 제대로 배운 것도 없이 애니메이션을 한답시고 일만 벌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 ( 아직도 필자는 시네픽스의 주주로 남아있다 .) 거의 20 년 동안 너무 많은 변화가 있었다 . 엄청난 컴퓨터성능의 발전 , 그 와중에 국내외를 막론하고 한때는 잘나가던 기업들 , 이제는 기억 속에서 사라져가고 있다 . 이러한 분야에서 살아 남으려면 나 자신도 더 준비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

가끔 전자 상가를 가면 PS3, Xbox 360 의 게임을 보면서 , 경이적인 리얼타임 렌더링 기술의 발전을 보면서 , 놀랄 뿐이다 . 무한한 그래픽의 능력 …

2006 년부터 해외에서 거주하며 , 새로운 사람들과 전혀 다른 경험을 하면서 , 나름대로 필자가 그 동안 해온 일에 대하여 돌아볼 기회도 갖고 , 다른 관점에서 콘텐츠 분야를 새롭게 경험하고 있다 .

오랜 기간 동안 콘텐츠 제작 분야에 종사했지만 , 앞으로 남은 삶에서는 콘텐츠 제작보다는 다른 방향으로 전환해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였다 . 솔직히 제작은 너무 잘하는 분들이 많아 자신이 없어서 이런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 많은 사람들이 게임 , 애니메이션 등의 디지털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으나 , 변화하는 콘텐츠 배급 채널의 Value Chain 구조를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 이제는 단순히 라이센스 사업만 생각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 수익을 발생시키지 못하면 다음 기회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 이 분야이다 . 이미 방송 , 인터넷 , 모바일 등을 통하여 새로운 콘텐츠의 배급 채널과 기업간의 다양한 결합으로 Value Chain 이 계속 바뀌고 있는 상황이 전개 되면서 ,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많은 변화를 겪고 있다 .

당장 한국의 상황도 최근 몇 년간 새로운 방송 미디어인 DMB, IPTV, 곰 TV, 판도라 , 기타 UCC 등의 매체가 이슈화 되고 있으며 , 완구 시장 같은 전통적인 시장은 지속적으로 감소되는 상황에서 ,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면서 , 어떻게 수익을 내야 하는지의 문제가 제작만큼이나 어려운 일이 된 실정이다 .

제작 기술만 보면 한국의 디자이너들 … 정말 훌륭하다는 생각이 든다 . 필자 같은 세대에서 보면 부러울 따름이다 . 그래도 자칭 3D 애니메이션 1 세대인 필자도 기회가 된다면 , 그간의 경험으로 바탕으로 한국의 애니메이션 업계 , 크게는 디지털 콘텐츠 분야에 조금이나마 더 참여하고 싶은 것이 바람이다 . 그래서 당분간 해외에 있으면서 , 도움이 될만한 콘텐츠 분야의 배급 및 Value Chain 을 좀 더 배우고 , 언젠가 다시 돌아가서 지금 배운 것을 활용하여 업계에 도움이 되고 싶다 . 두서 없는 글을 끝까지 읽어주신 분께 정말 감사 드립니다 .

조신희 시네픽스/이사

연세대학교
(주)금성반도체 연구소 컴퓨터개발실
(주)금성소프트웨어 연구소 OA개발실
시네픽스 설립/㈜시네픽스로 법인전환
아주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 (4학기)
2002년-2004년 정보통신부 온라인디지털콘텐츠 산업발전실무위원회 위원
現 시네픽스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