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특집] 이소아의 작업 노트
-보조장비 이야기

프롤로그

여러분도 CG 작업을 하면서 컴퓨터 사양과 주요 사용 프로그램에 대한 고민을 간혹 해 보신 적이 있을 겁니다. 컴퓨터는 AMD로 하는 게 좋을지 인텔로 하는 게 좋을지, 프로그램은 3D 스튜디오 맥스를 쓸지 마야를 쓸지, 스캐너는? 마우스는? 프린터는?.. 쉽게 결정할 수 없는 고민이죠. 특히 내 뜻대로 결과물이 나오지 않거나 렌더링 결과물을 하염없이 기다리노라면 머릿속엔 ‘이러한 상황을 개선할 좋은 방법이란 없을까' 간절함이 가득 찹니다.

사실 저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런 고민을 잘 하지 않는 편이었습니다. 타고난 둔한 성격과 지나치게 긍정적인 사고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냥 있는 대로, 손에 쥐어지는 대로 작업을 하는 편이었고, 당시 갖고 있는 것으로 하고 싶은 것을 만드는 것만으로도 만족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저도 작업을 계속 해 나갈 수록 '좀 더 간편하게' 또는 '좀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하며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나뭇가지를 열심히 비벼 불을 내던 원시인이 좀 더 편리하게 불을 붙일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처럼요. 마침내 효율의 중요성을 깨달은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얘기하자면 아직까지 라이터로 불을 내 듯이 쉬운 방법을 찾지는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작업을 좀 더 수월하게 도와줄 수 있는 보조 장비들을 찾을 수 있었지요. 네. 지금 여러분께 드릴 이야기는 컴퓨터나 프로그램에 대한 얘기는 아닙니다. 저의 작업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게끔 도와주고 있는 보조 장비에 대해 얘기입니다. 이제 슬슬 시작해 볼까요?

1. 스캐너

2. 태블릿

3. 프린터

1. 스캐너

스캐너는 주로 연필 스케치에 익숙하신 분들이 스케치를 컴퓨터로 옮길 때 많이 이용하는 기기입니다. 스캐너는 제가 처음 3D를 익히기 시작하면서 얼마 되지 않아 곁에 두게 된 장비입니다.

→노트에 스케치를 했다면 이를 이용해 3D 모델링을 더 빠르게 제작할 수 있습니다.

스케치된 부분을 스캐닝하여 컴퓨터에 이미지화 한 후→3D프로그램에서 Plane을 만들어 스케치를 맵핑하여 씌웁니다→ 이를 가이드 라인 삼아 모델링을 합니다→그러면 스케치하면서 원했었던 크기나 모양을 정확하고 빠르게 모델링 할 수 있어서 시간을 절약할 수 있습니다.

스캐너는 3D작업자들에게 좋은 맵핑소스를 제공해 줍니다. 가지고 있는 옷이나 물건, 잎사귀들이 스캐너에 올려지면 모두 고품질의 맵핑소스가 됩니다. 요즘은 디지털 카메라가 보급화 되면서 맵핑소스를 얻을 수 있는 수단으로 카메라가 많이 이용되는데요, 두 장비 모두 장단점이 있습니다.

카메라는 접사와 수동기능이 있을 수록 이용가치가 높습니다. 밖으로 출사를 나가면 눈에 보이는 모두가 맵핑소스가 될 수 있을 만큼 폭넓게 쓸 수 있지요. 하지만 포커스로 인한 블러(blur) 현상이 있거나 이미지 왜곡 현상, 상황에 따라 사진에 노이즈가 있는 경우가 많아서 고품질로 소스를 창출하기가 어려운 단점이 있습니다.

스캐너는 평면으로 이루어진 모든 물체의 세세한 부분까지 깨끗하게 이미지화 시켜주므로 소스를 만드는 데에 좋은 기능을 갖추고 있습니다. 하지만 앞서 말씀 드린 대로 평면화된 물체라는 것과 사이즈의 제한이 있기 때문에 소스 선택의 폭이 좁다는 단점이 있지요.

스캐너는 나만의 라이브러리를 갖추는데 큰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아직 저는 인터넷 자료보다는 직접 구매한 서적이나 오프라인 잡지의 자료 품질을 더 선호하는 편인데요, 이렇게 구입한 서적들을 페이지 별로 찢어서 스크랩하지 않아도 스캔을 통해 내 하드의 원하는 카테고리 안에 분류합니다. 일종의 자신만의 도서관을 구축하는 것이지요.

유의할 점은 스캐너는 기능에 따라 품질의 차이가 현격하다는 것인데요, 소스추출용으로서의 스캐너의 기능을 충분히 이용하려면 복합기 같은 보급형 보다는 스캔 전용 스캐너를 마련하는 것이 좋습니다. 복합기에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다가는 여권을 스캔 해도 실망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습니다.

* 쓰고 있는 스캐너 기종: HP scanjet G4050

* 스캔을 통해 제작한 소스로 3D 청바지 만들기

1. 청바지를 스캐너에 올립니다	2. 바지의 여러 면을 스캔 합니다.
3. 스캐닝 한 소스를 포토샵에서 합쳐 하나의 펴진 청바지 맵을 만듭니다. 원래는 긴 바지지만 3D로는 반바지를 만들 것이므로 밑단을 짧게 하였습니다.
4. 3d 스튜디오 맥스에서 제작한 몸에서 허리와 허벅지 부분을 복사하여 바지의 기본형을 만듭니다. 이렇게 몸에 달라붙는 형태의 경우, 몸에서 기본형을 추출하기도 합니다. 5. 청바지 소스를 참고하면서 바지의 접힌 부분을 묘사합니다.
6. 이렇게 돌출된 부분을 모델링 해야 좀 더 입체적으로 보입니다. 7. 대충 큰 모양이 나오면 미리 제작하였던 맵소스를 바지 모델링에 입혀 봅니다. 아직은 맵 좌표가 제대로 설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8. Unwrap를 이용해 모델링의 맵좌표와 청바지 소스가 일치되도록 맞춥니다. 9. 커다란 맵좌표가 맞추어지면 collapse all로 좌표를 모델링에 합치고, 바지 주름 표현등의 디테일한 모델링을 합니다. 10. 3D 캐릭터가 포즈를 잡고 렌더링 된 모습

2. 태블릿

3D 프로그램을 다루는 사람은 태블릿이 필요 없을 거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사실 저도 처음에 태블릿을 사용하게 된 경위가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나 맵핑 소스를 더 잘 그리기 위해서는 아니었습니다. 마우스로도 그림을 그릴 수 있을 만큼 마우스 사용에 길들여지면 태블릿이란 무기를 새로 익힌다는 것도 귀찮아지게 마련이거든요.

제가 처음에 태블릿을 써야겠다고 느낀 것은 오랜 마우스 사용으로 인한 잦은 어깨 결림과 근육통 때문이었습니다. 일을 해야 하는데 손가락으로 마우스를 쥐기조차 힘들어서 다른 방법을 찾을 수 밖에 없었지요. 양손 잡이로 바꿀까 마음먹고 왼손으로 젓가락 쥐기부터 해보았지만 제멋대로의 왼손을 훈련시키기가 너무 어려웠어요. 그래서 가지고 있었지만 잘 쓰지는 않았던 태블릿 펜을 이용하기 시작했지요.

태블릿 사용은 손가락이나 손목 근육에 무리가 없어서 장시간 작업에 좋다는 큰 장점이 있습니다. 이것만으로도 아파서 쉬는 시간을 끌어낼 수가 있지요. (그렇다고 쉬지 말고 일하자 주의는 절대로 아닙니다.) 또 웬만큼 3D작업에 쓰이는 단축키들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인튜어스 3를 쓰기 전에는 MAX의 줌인 기능을 대신할 마우스 휠이 없어서 불편했었습니다. 사실 그 때문에도 태블릿을 써서 모델링하기가 쉽지 않았는데요, 인튜어스 3에 갖추어진 단축키 패널들은 그런 고민을 일축시켜 줍니다.

제가 쓰는 모델은 4X5 사이즈로 일반적으로 2D프로그램을 다루시는 분들이 쓰시는 6X8 크기보다는 작습니다. 이것은 그저 개인의 편리성 때문인데, 저는 가능하면 팔을 적게 움직이기 위해서 이것을 사용합니다. 한 때 '큰 것이 좋다'라는 소문을 믿고 큰 디지타이저 판을 사용해 보았었지만 그만큼 팔을 많이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피곤이 금새 오는 것 같았습니다. 어쩌면 그 전에 이미 4X5에 익숙해져서 일 수도 있지요. 크기에서 느껴지는 편리함은 무엇에 더 익숙해지냐에 따른 문제인 것 같습니다.

아무튼 마우스 대신 펜을 사용한다는 것은 수험생의 팔은 어째서 무적인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주는 듯합니다.

* 쓰고 있는 태블릿 기종: Wacom Intuos 3

 

 

3. 프린터

그림이 책에 실려 출판되는 것을 보면 꼭 내 자식의 세상 데뷔를 흐뭇하게 지켜보는 듯한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그만큼 작가에게는 어떤 보상보다도 큰 의미가 되지요. 그 동안 모니터에서 보이는 것과 프린트 되어 보이는 이미지는 다소 차이가 있어 왔습니다. 하지만 그 차이조차도 신선한 자극이 되기도 하기도 해서 운에 맡기곤 했지요.

그런데 점점 작품의 쓰임새가 다양해 지면서, 작품의 실제 아웃풋에 별 무관심하던 저를 아찔하게 하는 일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모니터를 바꾼 후 별다른 색 조정 없이 사용하던 어느 날 그림을 미술관에 전시할 일이 생겼습니다. 그 때 크게 프린트된 최근 그림을 보게 되었는데 색이나 명암차가 내가 알고 있던 것과 확연히 달랐던 것입니다. 그림이 어떤 모습으로 보여지느냐도 그림의 퀄리티 만큼이나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죠.

또한 그림을 이용한 퍼즐이나 포스터 같은 제품을 만들 때 작가가 생각하는 ‘오리지널 색상'을 결정하는 것도 그림의 질을 좌우하기도 합니다. 사실 디지털을 이용하여 그림을 그리는 우리는 그림의 진정한 오리지널 색상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오로지 그린 사람의 머리 속에 남아 있을 뿐이지요. 모니터도 기종에 따라 발색 정도가 다른 경우가 많습니다. 때문에 모니터에서 보이는 그림은 진짜가 아니다.. 라고 생각하는 편이 낫습니다.

저는 그런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그림을 완성 후엔 보급형 프린터로 그림을 출력해 봅니다. 출력해서 나온 그림을 통해 모니터상에서 놓쳤던 부분을 손쉽게 발견하게 되지요. 출력된 그림은 이미 액자에 들어갈 수 있는 품질인가를 두고 냉정한 잣대에 올려지게 됩니다. 때문에 색상뿐만이 아니라, 그림의 전체적인 느낌을 더욱 냉철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습니다.

세세한 수정이 끝난 후 마지막 출력은 전문가용으로 다시 하게 되는데요, 이 과정까지 가기 위해서 스스로가 그림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노력을 다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요즘에는 인화지로 사진처럼 출력해 주는 프린트가 보급형으로 많이 출시되었습니다. 보급형은 출력물을 빠르게 확인해 보기에 무리가 없으나 전문가용과 비교 해 보았을 때 출력물의 질 차이가 확연히 드러납니다. 같은 이미지를 출력했을 때, 보급형(좌)보다 전문가용(우)의 출력물에 노이즈가 없고 전체적인 색감이 풍부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침내 완성되어 출력된 그림은 온라인에서 쉽게 떠돌아 다닐 수 없는 나만의 오리지널리티를 가지게 됩니다.

* 쓰고 있는 전문가용 프린터 기종: HP Photosmart Pro B9180

그림을 출력하는 중

작업 환경. 볕이 들어 오는 창가를 선호합니다.

출력한 그림들을 앞에 둬서 작업 도중에 저의 최근 그림들의 흐름을 수시로 확인합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쌍둥이 형제의 그림을 액자로 장식 해 놓았습니다.

거실 한 켠에 있는 에우로파 그림

에필로그

주변기기들은 여러분의 작업환경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기기들이 완벽하고 좋은 것으로 갖추어졌다고 해서 그림의 질이 월등히 상승하지는 않지요. 하지만 이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면 일할 맛 나는 작업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 현재의 환경에 만족하고 있다면 그것만큼 좋은 것이 없겠지만, 어떤 개선이 필요할 것 같다면 이제껏 해 왔던 작업과정의 틀을 한 번 깨어 보는 것은 어떨까요?

더 나은 길은 항상 여러분 주위에 있습니다. 필요할 때 그 길이 보인다면 걸어 보는 것도 의외의 수확을 가져다 줄 지도 모릅니다. 그럼 오늘도 힘차고 즐거운 하루 되길 빌며….

감사합니다.

이 글을 쓴 이소아 작가는

홍익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3D 일러스트레이션이라는 분야를 개척했다. 게임 <A3>의 ‘레디안', 엘사 그래픽카드의 전속모델 ‘엘렌', LG생활건강 화장품 모델 ‘서시' 등 일반인들에게까지 널리 알려진 캐릭터를 만들어 온 프래랜스 아티스트이다.

홈페이지: http://www.soanal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