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을 포함한 문화산업 전반에도‘글로벌화’에 대한 시장의 요구와 기대는 점차 거세지고 있다. 그리고 최근 그 흐름에 불을 당긴 것이 한미FTA가 될 것이다.

문화산업과 관련해서는 앞으로 케이블TV의 국산 애니메이션 의무편성비율이 35%에서 30%로, 영화는 20%로 하향 조정되고, 저작권 보호기간은 저작권자 사망 후 70년으로 대폭 연장된다. 표면적으로 보자면 지금보다 해외물 유통이 더 늘어나 제작환경의 위축이 예상되고, 로열티 유출도 증가될 것이다.

또한 PP(방송채널사용사업자)에 대한 간접투자가 100% 인정되어 미국의 디즈니가 국내에 100% 투자해 미디어회사를 운영해도 그것은 곧 한국회사로 인정받게 된다. 그들의 자본력과 방송컨텐츠사업 경쟁력에 대비하라고 주어진 시간은 유예기간에서 발효까지 5년 정도로 전해진다.

바야흐로 대외변수의 힘은 점차 막강해지고 있고, 거기에 더해 그 변수들이 가져올 결과에 대한 예측이 제각각인 실정이다.

여기에 한가지 더해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명목상의 제도에 가려진 ‘운영의 실태’이다. 지금까지 케이블TV의 국산 애니 의무편성비율과 애니메이션 수입의 1국가 비중상한(60%)은 공공연히 지켜지지 않았고, 일부를 제외한 채널사업자들은 규정을 지키느니 방송법에 따라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내는 것을 선택해왔다.

즉, 대부분의 채널에서 일본물이 80%∼90%를 차지해오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2005년에 비해 10편이 증가한 31편 이상이 작년에 국산애니로 창작되었음에도 방송유통의 공간과 그 질(프라임시간대 배정)은 열악한 실정에 있다. FTA같은 큰 틀의 제도변경 못지않게 사업자들의 국산 애니에 대한 방영비율 준수, 독점방영권 요구의 완화(좋은 작품의 ‘여러 채널’ 유통을 통한 스타작품 탄생의 구조 마련과 이를 통한 투자&창작증가의 선순환구조 창출), 판권료의 실질적 확대 등 운영의 묘가 절실한 시점에 와 있다.

‘상품의 글로벌화’는 어찌됐든 시대적 과제가 되었고, 애니메이터의 경쟁자는 동료를 넘어 인도나 중국, 싱가폴, 폴란드, 미국, 스페인의 애니메이터가 된 상황이다. 컴퓨터와 SW가 깔린 모든 곳은 CG를 만들 수 있는 세상이다.

그렇기에 5년 여 전부터 선도업체들은 빚을 내서라도 MIPTV, MIPCOM 등 해외 견본시에 참여해 한국의 창작물을 알리고 해외와의 네트웍을 확대해왔으며, 해외에 통할만한 작품의 제작방향에 대해 고민해오고 있다.

짧은 창작역사에 비춰볼 때 그 성과가 작은 것은 결코 아니다. 2006년 한국 문화콘텐츠 업체들이 각종 해외 전시회에서 따낸 수출계약은 총 1억 1591만 달러이며, 전년대비 10% 이상 증가한 바 있다. 수치로만 보면 2006년 영화 수출액(2451만 달러)의 4배가 넘는 실적이며, 특히 애니메이션 업체들의 선전이 주목받고 있다.

한국은 ‘개발도상국보다 우수한 퀄리티’에 ‘선진국보다 낮은 제작비’를 통해 일명 “샌드위치의 단점”을 ‘장점화’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창작 애니는 이룬 성과보다 이루어야 할 성과가 더 많은 단계 인게 현실이다. 문제는 이럴 때일수록 우리자신이 외풍에 흔들리지 않도록 얼마나 경쟁력을 강화해가고, 원칙을 충실히 다져나가는가 하는 점이 아닐까 한다. 그렇다면 한국 3D 애니메이션 업계가 만들어가야 할 경쟁력의 원천은 과연 무엇일까.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은 여러 갈래이겠으나, 여기서는 “피플(People) 비즈니스”에 대한 얘기를 꺼내볼까 한다.

‘피플 비즈니스’라 하면 통상 회사의 비용 및 투자의 대부분이 ‘사람’을 대상으로 하고, 매출의 대부분도 그 ‘사람의 역량’을 통해서 창출되는 비즈니스를 말한다. 즉, 자동차나 화학같은 전통적 자산 중심의 비즈니스와는 대비되는 서비스, 컨설팅, 유통, 광고 등의 지식서비스 기반 사업이 여기에 해당될 것이다. 3D 업계 역시 인건비의 비중이 높고, 정형화된 작업이 아닌 개개인의 창조적 역량이 중시된다는 측면에서 인재경영 중심의‘피플 비즈니스’로 접근해보려 한다.

그렇다면 3D 애니메이션 분야가 진정한 피플 비즈니스로 거듭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그 중요성을 실감해야 한다. 3D 업계의 국제경쟁도 결국은 ‘인재 싸움’이 될 것이고, 얼마나 인재의 채용, 육성, 관리, 계발에 적극적으로 임하는지가 회사의 성패를 가르는 요인이 됨을 인식해야 하는 것이다.

직원이 단지 거대 프로젝트의 한 부속품 정도로 인식되고, 결과만 내면 그만이라는 식의 소통부재는 얼마못가 그 부작용을 치르고 만다. 퇴사사유서에 적힌 “내가 기계의 부속품 같다”거나 “서로 자기 일에만 바쁘다. 적응이 안된다”는 항변은 퇴사의 직접적인 사유가 아닐지라도 중요한 대목이다.

그런데 제작을 하는 사람들은 일정에 쫓겨 시간적, 정신적으로 여유가 없는 게 현실이다. 직책은 대리, 팀장이지만 실제 팀장도 자기가 작업할 분량이 있고, 그러다보면 팀과 조직(소위 ‘공동의 문제’)는 공중에 뜨는 현상이 종종 발생하는 것이다. 그러다보면 정작 머리를 맞댄 회의는 일이 터졌을 때 수습하기용으로 전락하고 만다.

그래서 두 번째로 사람과 조직, 소통의 문제를 다룰 전담인력이 필요하게 된다. 장비나 시스템을 관리할 담당자는 있는데, 정작 피플 비즈니스의 핵심을 관리할 담당자가 없다면 이는 주객전도나 마찬가지다.

- 천부적 끼와 재능을 갖춘 인재가 3D 애니 업계에 관심을 갖고 진출하도록 어떻게 유도하는가.

- 3D 업계에 진출한 사람이 비전과 믿음을 갖고 일을 해나가도록 어떤 액션을 취하는가.

- 그들의 목소리에 정기적으로 귀를 기울이고, 이를 회사 발전의 지침으로 삼는가.

- 고급인력을 일순간 빼앗기지 않도록 장기근속 지원책이나 정서적인 유대에 신경쓰고 있는가.

- 개개인의 발전을 유도하면서도 팀웍을 잃지 않는가.

이러한 당면문제들에 대한 지속적인 고민과 대안의 제시가 이루어지는 회사와, 그저 빡빡한 스케줄 맞추기 바쁘게 굴러가다가 핵심인재는 더 높은 연봉 주는 영역으로 이탈하고 역량이 쌓이지 않는 회사는 갈수록 격차가 벌어지게 된다. 특히 비전과 애사심의 공유는 임원과 직원의 1:1 직접소통, 정기적 워크숍이나 행사, 인트라넷이나 게시판 운영, 마케팅 상황에 대한 공유, 사내 교육동아리 지원 등 다양한 방법을 활용해볼 필요가 있다.

세 번째로 적절한 평가, 보상체계의 구축은 피플 비즈니스에서 빼놓을 수 없는 축이라 할 수 있다. 컨텐츠업계가 개개인의 창조적 역량을 중시한다는 것은 개인별 편차를 전제로 하는 것이다.

스케줄 준수여부, 근무태도, 업무의 퀄리티, 업무량, 커뮤니케이션 능력 등이 탁월한 직원을 찾아내 더 좋은 대우를 해주는 것은 조직의 긴장과 활력을 불어넣고, 질적인 향상을 통해 조직의 정예화를 앞당기게 된다.

조직의 정예화는 인원이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다. 작은 회사도 정예화해야 하고, 큰 회사도 정예화의 목표를 갖고 있다. 대그룹 GE의 잭웰치조차 늘 강조했던 것은 ‘구멍가게 정신’이었을 정도이다. 정예화는 인력의‘수준’의 문제이며, 중국, 동남아나 동유럽 등이 저가의 인건비와 중급의 퀄리티로 3D 업계를 장악하는데 맛서서 한국이 지향해야 할 목표와도 같다.

직원들을 하급은 중상으로, 중급은 상으로, 상급은 최상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자극은 차등성과급제, 승진 및 직급우대제, 우수사원 포상제, 교육훈련 등 다양한 방법이 가능할 것이다. 또한 자신의 역량을 동료와 조직이 ‘공유하도록’ 힘쓰는 직원을 장려할수록 조직전체의 생산성은 눈에 띄게 증가할 수 있다. 이는 성과평가제가 자칫 개인별 파편화로 가는 것을 막기 위한 방편 중 하나이다.

한국문화관광정책연구원에서 최근 발간한 ‘문화산업 대미 개방에 따른 영향분석’보고서에 따르면 한미 FTA 타결에 대해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판단하는 문화산업의 비율은 애니메이션(68%), 공연(59%), 출판(54%), 음악(50%)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이는 한국의 애니메이션이 이미 세계수준의 제작역량에 와 있으며, 미국이라는 큰 시장에 빠르게 진출할 수 있는 글로벌 상품성격을 갖고 있다는 반증이다. 또한 미국의 풍부한 자금이 한국 애니메이션 산업에 유입될 가능성도 점쳐진다.

그러나 샌드위치 신세는 양날의 칼과 같아서 고가의 미국작품, 저가 물량위주의 개발도상국 작품과 경쟁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그리고 어느 나라든 제자리에 멈춰 서 있지 않다. 디지털컨텐츠 분야를 정부 발표대로 신성장동력산업으로 키워내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는 투자저변을 정부가 반드시 확대해야 하며, 마케팅 지원체계 강화, 고품질 애니메이션 제작을 위한 R&D 지원, 방송사의 국산애니메이션 진흥노력 등이 절실하다.

그리고 업계는 이에 맞추어 피플 비즈니스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인력과 체계를 만들어가야 할 것이며,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전체시장을 키워나갈 방법을 모색하는 유대의 끈도 강화해나가야 할 것이다.

불과 10년전까지만 해도 한국 애니 업계는 창작의 불모지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도전은 분명 해외시장에서 이야기 거리가 되고 있고, 우리의 경쟁력은 수년 내 빛을 발할 시기에 와 있다. 그것이 더욱 희망적인 이유는 한국에서 막연히 해외시장 진출을 꿈꾸고 있는 것이 아니라, 미국 LA를 누비고 프랑스 칸을 누비고, 중국과 베트남을 누비며 우리의 경쟁력과 국제적 감각, 적극적 사업추진의지를 인정받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해외의 역량있는 작가와 프로듀서, 기업들이 우리와 힘을 합쳐가고 있다.

바야흐로 무한경쟁과 무한협력의 시대가 도래하였고, 다시금 우리의 민족적 능력에 확신을 가져야 할 때이다.

글. 김 홍 철.
- 현) 삼지애니메이션 경영기획실장.
- 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졸업.

2000-01 ㈜프리네이션 언론PR팀장.
2001-07 (주)삼지애니메이션 경영기획실장.
- 인사, 재무, 기획사업, 홍보 총괄 .
- 창작애니메이션 <오드패밀리> 프로젝트 재무 총괄 .
- 마케팅대학, 청강대, 호서대 컨텐츠비즈니스 분야 초빙강사.
- 한국문화컨텐츠진흥원 사이버문화컨텐츠 아카데미 초빙강(05~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