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서 화려한 특수효과와 컴퓨터 그래픽에 의한 가상의 배우가 인간 배우와 나란히 연기하는 모습은 이제 자연스럽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어색하던 특수효과가 지금은 없어서는 안될 필수 항목이 되었다. 캐릭터 모델링, 애니메이팅, 특수효과 등 영화의 퀄리티를 높이는 국내외 아티스트의 역할이 날로 커지고 있다. 특히 로토페인팅이라는 국내에선 다소 생소한 작업을 하는 오퍼나지 홍성환 슈퍼바이저를 눈 여겨 보자. 영화 속에서 말하는 그의 로토페인트 이야기를 전한다.

1. 본인 소개 부탁드려요.
저는 홍성환이라고 합니다. 2004년 샌프란시스코로 건너와 ‘VFX/Compositing’을 전공하고, 현재 The Orphanage Inc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작업에 참여한 영화로는 <괴물>, <슈퍼맨 리턴즈>, <캐리비안의 해적-Dead Man's Chest>,  <다이하드 4.0>, <아이언맨>, <적벽대전> 등이 있습니다. 현재는 <I Love You Beth Cooper>라는 코미디 영화와 디즈니 광고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곧 <적벽대전> 두 번째 영화 작업에 들어갑니다.

2. 해외에 진출하게 된 계기는?
특별한 계기랄 것은 없는데 하나를 꼽자면 영어를 배우기 위해서였습니다. 비록 상상했던 멋진 생활이 아닌 캐나다 작은 시골, 홈스테이로 시작한 유학 생활이었지만요. 처음엔 별다른 목표 없이 남들이 하니, 나도 한다는 식의 어학 연수였습니다. 하지만 타고난 사교성 덕분에 현지에서 만난 많은 외국 학생들과 못하는 영어를 나누며 가깝게 지냈죠. 여러 의견들을 공유 하던 중 진로에 대한 얘기도 나누게 되었는데, 그 때 제 자신이 부끄러울 정도로 확실한 목표를 가지고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몇 년 뒤 자신의 모습을 상세하게 묘사하며 얘기하는 그들의 모습은 ‘대충 영어 공부나 하고 여행이나 하고 돌아가야지’하는 제 모습을 초라하게 만들었죠. 그 때를 생각해보면, 내가 미래에 무엇을 하면서 살고 싶어하는지를 찾아야겠다라는 의지를 확실히 가슴속에 새길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시행착오 끝에 지금까지 오게 됐습니다.

3. 해외 진출의 어려움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물론 언어 부분에서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학비와 생활비, ‘학교에서 무엇을 어떻게 공부해야 하나’하는 막연함을 들 수 있겠네요.

다행히도 제 경우는 캐나다에서 오랜 기간 동안 체류하며 디자인 일로 생활비도 벌고, 놀기도 하면서 영어 공부를 한 후 샌프란시스코로 옮겨, 어학 연수 없이 바로 입학한 이들보다 상황이 좋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 미국 현지인들과 오랜 시간 동안 대화 하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었습니다. 과 친구들과 그룹 프로젝트를 할 때도 목소리 크고 자기 주장 뚜렷한 미국 학생들이 별로 실력은 없는 듯한데 교수님들한테 더 인정받는 모습에 화가 나더군요. 그래서 더욱더 미국 애들 표현 하나하나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을 앵무새처럼 따라 하며 연습하고, 발표할 내용을 제대로 준비해서 수업시간에 활발하게 발표하고, 작업은 더 열심히 했어요.

적지 않은 나이에 시작한 학교 생활이기에 유학 생활에서 최대한 습득할 수 있는 것들은 모두 해야 된다는 마음이 앞서 혹시 다른 유학생들에게 저 사람 많이 ‘설친다’라는 식의 눈초리를 받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지금 보니 조금 들기도 하네요.^^

학비 걱정 또한 매우 컸습니다. 우스개 소리지만 집에 안부를 물으려 전화하면, 가끔 식구들이 "우리는 네 이번 학기 학비 보내려고 김치만 묵고 산다, 한 눈 팔지 말고 열심히 해라이~." (고향이 부산입니다). 가끔 부모님의 영향을 받지 않는 이 망가지기 좋은 환경에서 어둠의 유혹이 있을 때마다 김치만 먹고 있는 집안 식구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작업을 했었습니다. 물론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할 수도 있었겠지만, 일하는 시간 때문에 졸업이 늦어지게 되고 늘어나는 기간 동안 쓰게 될 생활비를 생각하니, 열심히 할 수 밖에 없었죠. 제가 시장 터에서 자라 계산이 좀 빠릅니다. 좀 더 빨리 demo reel을 만들고, 빨리 졸업해 취업 준비를 하는 길이 식구들을 김치에서 해방시키는 것이라 생각했어요.

그 다음 걱정이 ‘어떻게 취업 준비를 해야 되느냐’였죠. 선배들과 교류 없이 학교에서 준비하는 것만으로는 대답을 찾기가 힘들었어요. 다행히도 VFX 모임은 그런 질문들을 쉽게 해결할 수가 있었습니다. 직장 경험이 풍부한 선배님들과 나보다 일찍 수업을 들었던 재학생 선배님들도 많은 도움을 줬죠. 그 때 쌓게 된 인맥들은 아직까지 제 직장 생활에 큰 도움이 되요. 모두 자랑하고 싶은 분들입니다.

4.오퍼나지에서 아티스트로 생활한다는 것은?
꿈은 이루어진다?

캐나다에서 미국으로 오게 된 이유 중 하나가 우연히 읽은 Visual Effects 매거진에서 한국인 아티스트가 오퍼나지에서 일하고 있는 기사 때문입니다.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더군요. 무작정 오퍼나지에서 일해야겠다라는 생각을 하고 샌프란시스코로 건너왔습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지금, 그 회사의 아티스트로 일하고 있다는 건 저에게 참 감사하고 기적과 같은 일이죠. 2주 계약의 비정규직 인턴으로 일 했었던 첫 시작을 생각하면 입사한지 3년이 되어가는 지금의 제 상황을 감사하며 살아갑니다.

일을 하다 한번씩 주위를 둘러봅니다. 그리고 제 주변에 있는 아티스트들을 보죠. 그들은 정말 어디 가도 뒤쳐지지 않을 뛰어난 실력을 가진 아티스트들이고 그들과 함께 영화 작업을 해나간다는 것은 정말 뿌듯한 일이에요.그들도 저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으면 좋겠네요. 그렇지 않다면 더 열심히 해서 실력을 쌓아야겠죠. 아니면 밥을 많이 쏴서 그렇게 생각하도록 세뇌를 시키던지..^^

5.오퍼나지에 들어가기 위해 준비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요
"고아원(Orphanage)에 입사하려면 먼저 고아(Orphan)가 되어야 합니다." 제가 유학생 시절 똑같은 질문을 선배님한테 했더니 돌아온 답변입니다. 우스개 소리로 들었는데 정말 우리 회사에서 일하는 아티스트들은 모두 자신들을 고아라고 부릅니다. 그러고 보니, 참 우리 회사 아티스트들은 돌아갈 집이 없는 사람들처럼 열심히 일하네요.^^ 애사심이 매우 강해 무식한 스케줄이더라도 혹은 아무리 불가능한 샷이 눈앞에 놓이더라도, 반드시 해내고야 마는 끈기가 있습니다.

예전에 박재욱 선배 인터뷰 기사를 봤었는데 “한국인 아티스트가 CG 업계에서 인정받는 이유는 실력과 끈기, 미적 감각 등 한국인 특유의 장점을 잘 살려서 그런 것이다”라고 하셨더군요. 맞습니다. 만약 오퍼나지 입사를 원한다면 완벽한 한국인이 되길 바랍니다. 단, 영어 잘하는 한국인이면 더 좋습니다. 커뮤니케이션에 전혀 문제가 없는 한국인이면 더욱 좋습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분야에 대한 지식과 열정, 어느 하나 부족하지 않은 한국인이면 더더욱 좋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고아원에서 고아가 될 수 있어야 합니다. 이해하실지...

6. 오퍼나지에서의 포지션은?
현재 로토페인트 수퍼바이저라는 직함으로 일하고 있어요. 클라이언트로부터 Visual Effect샷이 오면 그 샷을 리뷰하고 우리 쪽 디파트먼트 일이 얼마나 될지 분석해, 최종 제작 기간과 어떤 아티스트에게 어떤 샷을 부여할 것인지를 결정합니다. 그리고 부서 아티스트들에게 디렉션을 주고, 작업들을 여러 번 리뷰해서 제대로 된 결과물이 나올 수 있도록 하는 일입니다. 컴퍼지터와 끊임없는 커뮤니케이션을 통해서 샷이 원활하게 잘 진행되게 하는 일도 제 업무 중 하나죠. 로토페인트 디파트먼트는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한 분야일 수도 있겠지만, 로토스코핑과 디지털 페인팅을 같이 전담하는 부서라고 생각하시면 이해가 빠를 겁니다.

로토스코핑이란 쉽게 말해 흑백의 Alpha channel matte을 만들어내는 일인데요. Green screen에서 찍은 필름 플레잇들은 extraction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로토스코핑이 필요하지 않은 경우가 많지만, 일반 라이브 액션 샷에서 CG elements가 들어가게 되는 경우나 매트페인팅 같이 다른 뒤 배경으로 들어가는 대부분의 샷들이 우리 디파트먼트의 작업을 거치게 됩니다.

플레잇을 분리하는 작업을 거쳐야지만 컴퍼지팅을 통해 여러 가지의 elements 들을 샷에 조합할 수가 있겠죠. 예컨대 공판화 같은 원리나 콜라주의 종이를 잘라 준비하는 과정으로 생각하면 됩니다. 디지털 페인팅 작업은 와이어 제거 작업부터 필름 복원 작업, 플레임 바이 플레임 페인팅 등이 있습니다. 실제로 촬영 중 카메라에 잡혔던 불필요한 부분들이 우리 디파트먼트의 작업을 통해 없어지게 됩니다. 

예를 들어, 아이언맨의 주인공 Tony Stark(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Pepper(기네스 페트로)의 도움으로 가슴 속에 있는 무언가를 교체하는 장면이 있는데. 사실 그 몸은 실제 몸이 아닌 고무로 만든 가짜 스킨이죠. 그 스킨이 어깨 쪽이나 겨드랑이 쪽에 닿는 부분에는 당연히 가짜임이 선명하게 들어나는 곳이 있었습니다. 그 같은 부분을 페인트를 통해 없애는 작업을 하는 거죠. 영화를 보면서 눈치채지 못했다면 작업이 괜찮았다는걸 뜻하겠죠?

7. 실력을 쌓기 위해 연마하는 스킬이 있다면요
스킬도 좋지만 눈을 보호해주세요. 좋은 눈을 가지기를 권합니다. 물론 다른 부서의 일도 눈이 좋아야 하지만 로토페인트 아티스트는 특히 눈이 좋지 않으면, 눈이 더 좋은 사람에게 잔소리를 듣기 마련이죠. 시력이 좋아야 한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저는 시력이 좋지 못한 Visual Effects 수퍼바이저에게 가끔 잔소리를 듣는데, 왜 그가 그 위치에 있는지는 얼마나 짧은 시간에 문제점을 찾아내고 디렉션을 주는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어디를 봐야 할지를 알고, 어떻게 해야 고칠 수 있는지를 보는 거죠.

좋은 눈을 가지려면, 사진을 많이 찍어보는 것도 좋고, 포토샵으로 합성 작업을 하거나, CG가 많은 영화를 보면서 샷을 크리틱 해보는 것도 좋습니다. 엄격한 눈은 수퍼바이저에게 사랑 받는 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회사에서 사랑 받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실력있는 사람으로 통하겠죠.

8. 단기간 내 슈퍼바이저 위치에 섰다고 들었습니다. 비결이 있다면
서비스 정신. 처음엔 고아가 되려고 노력했고, 마치 집이 없는 사람처럼요. 그리고 제 샷에 대해 엄격해지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냥 대충 시간 맞춰서 끝내는 일이 아닌 내가 맘에 들지 않으면 그 샷이 파이널이 되어도 꿈속에서 다시 그 작업을 하게 될 만큼 샷 하나 하나에 대한 집착이 강했던 것 같습니다. 샷을 끝내고, 아침에 그것을 수퍼바이저에게 보여주고 파이널이 되면, 그 기쁨을 노력의 보상 차원에서 충분히 누리려 애썼고, 다음 샷에서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더욱 더 신경 써서 열심히 했었던 것 같습니다. 수퍼바이저가 무엇을 중점적으로 보는지 파악해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그 부분을 집중적으로 작업을 했고, 문제가 있을 때는 숨기려 하지 않았어요. 지적 당하기 전 미리 고쳐나갔습니다.

더불어 아부근성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수퍼바이저와 프로덕션을 기쁘게 하는 것이 제 목표였고, 물론 작업으로요. 지금도 그 목표는 변함이 없습니다. 가장 중요한 비결은 나를 지원하는 이들을 많이 모았습니다. 각종 모임에 자주 나갔고, 선배들의 조언을 빠짐없이 기억하려 노력했고, 내 편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은 기도입니다. 제가 다니는 한인 교회의 목사님과 많은 신도분들이  회사 계약 기간 연장과 제 승진을 위해 밤낮으로 얼마나 열심히 기도해주셨는지 모릅니다. 그 분들이 없었더라면, 쉽게 좌절하고 포기했던 옛날 모습으로 회귀했을 가능성이 컸죠.

9. 한국 스태프에 대한 현지 평가는?
두 말 할 것도 없이 고아원의 발전을 위해 없어서는 안될 아티스트들입니다. 그 동안 고아원에서 일하고 계신 그리고 거쳐간 많은 선배님들이 한국 아티스트의 명성을 높게 쌓아놓아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더욱더 실력을 쌓고 열심히 작업하고 있습니다. 가장 많은 평가는 실력 있고, 친절하며 같이 일하기 좋다라는 것입니다.

10. 아티스트로서의 목표와 비전
현재까지 제가 쌓아온 경험들은 아주 작은 것입니다. 아직 배워야 할 것이 많고, 정말 이루었다고 할 만큼 괄목한 성장을 하려면 내공을 더 쌓아야 합니다. 열정을 불태우고, 나아가 한국인 아티스트의 우수성을 널리 알려, 한국 사람이 만들면 다르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많은 한국인 아티스트들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작업하고 있고, CGLAND를 통해 그 분들의 활약상을 접할 때 뿌듯합니다. 나중에 모두 모여, ‘대박’ 한번 터뜨렸으면 좋겠습니다. 아자 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