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0년 설립된 DTI는 CG와 애니메이션 사업을 하다가 2007년 4월 영화부문이 독립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는 회사다. 지금은 영화CG 작업을 위주로 하지만 과거에는 애니메이션, 게임, CF 등 다방면에서 활발한 움직임을 보였다. 물론 작업의 중심이 3D CG였음은 언급 할 필요조차 없다. 2005년 이후 짧은 시간에 결과물을 만들어야 하는 CF 작업은 뒤로하고, 제대로 된 영상을 표현할 수 있는 영화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2002년부터 영화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지만, DTI의 이름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2003년 제작된 영화 ‘장화홍련’ 덕분이다. 계모와 두 자매라는 독특한 설정의 이 영화는, 세트와 그 안에서 펼쳐지는 환상적인 세계를 DTI라는 손을 거쳐 펼칠 수 있었다. ‘장화홍련’은 당시 평단은 물론 일반관객들로부터 상당한 반응을 얻은 작품이었고, 그 때문에 DTI의 이름도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했다. 20명이 채 안되는 인원으로 시작한 DTI는 영화 ‘장화홍련’ 이후 조금씩 규모가 커졌고, ‘고독이 몸부림칠 때’와 ‘...ing’ 그리고 ‘마지막 늑대’ 등의 영화소품 작업을 진행하게 됐다. 그 이후로 여러 영화작업을 거치면서 결정적으로 DTI가 명성을 얻기 시작한 계기는 영화 ‘중천’이다. 지난 2005년초 ‘중천’ CG 작업 계약을 체결할 당시 상황에 대해 이수영 실장은, “PT를 통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그리고 각종 영화작업에 대한 조언을 했는데, 그 과정에서 ‘중천’의 CG 작업에 대한 계약을 체결하게 되었죠. 그런데 알다 시피 스케일이 큰 대작이었기 때문에 DTI 자체적으로 처리하기 힘들었고, 그래서 생각한 것이 컨소시엄이었습니다”고 말했다. 사실 한국영화시장이 할리우드의 유명 CG 회사처럼 CG 작업만을 위해 몇 백 명 혹은 몇 천 명이나 되는 인원이 동시에 작업할 수 있는 회사를 만든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비록 할리우드 제작사들은 기본적인 회사규모가 커서 상주인력이 많기는 하지만 그래도 커다란 프로젝트가 시작되면, 애니메이터 등은 대개 임시직을 고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프로젝트가 끝나고 특별히 재능 있는 몇 몇을 제외하고는 해고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이런 고용관계를 외국에서는 유연한 고용이라 보는 경향이 있지만, 국내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구조다. 따라서 이런 방식보다는, 규모는 작지만 자신들이 잘할 수 있는 분야의 회사가 서로 뭉쳐 일을 나눠 하는 방식을 DTI에서 고민했던 것이었다. 그래서 ‘중천’과 ‘한반도’ 등의 대작을 작업할 때는 컨소시엄 형식으로 총 12개의 회사가 함께 일하기도 했다. 이를 두고 이수영 실장은 사람 모으는 작업이라고도 털어놓는다. 실제로 ‘중천’ CG 작업을 할 때 거의 2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작업에 임했다. 국내에서 이 같은 큰규모의 회사를 운영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평소에는 자신들의 규모를 유지하다 필요할 때 모여서 작업을 하는 방식을 채택하게 됐다. 하지만 이런 방식을 모두들 좋게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단다.“당시 우리에 대해 우려의 말들이 많았습니다. 작업자가 없다든가, 일은 하지 않고 프로젝트 수주에만 몰두한다는 소문들이 돌았어요. 하지만 DTI는 과정을 대부분 오픈하고, 협력 업체와 파트너 관계로 일을 하고 있습니다” 만약 과거의 파트너사가 그 동안의 작업 방식에 대해 불만을 제기한다면 어떻게 될까? 이에 대해서도 DTI는 영화사와 협력사를 직접연결 해 주면서 파이프라인 등의 관리 역할만 한다고 한다.

짧다면 짧은 한국 영화 CG 시장에서 작은 규모의 DTI가 지금의 명성을 얻게 된 원동력은 무엇일까? 철저하게 분화된 전문가 집단의 힘이다. 이에 대해 이수영 실장은 “한국에서 ‘중천’이나 ‘한반도’급 대규모CG를 진행했던 곳은 없었습니다. ‘괴물’같은 영화는 외국기술이었죠. 꾸준히 프로덕션매니지먼트에 대한 능력을 키운 것이 이 같은 대작을 만든 원천이라 생각합니다. ‘중천’이 좋은 예인데요. 여기 들어간 CG는 총 800컷입니다. 이를 처리하려고 12개 회사가 모였는데, 각각의 회사 특성에 맞는 장면을 선정하고 적당한 곳에 배분·관리하는 능력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고 말했다. 요컨대 DTI에 시나리오가오면, 기획팀이 현장 제작 슈퍼바이저와 초기미팅을 통해 프리프로덕션 분석에서 견적까지 진행을 한다. 프리프로덕션이 끝나고 크랭크인에 들어가면 현장 슈퍼바이저와 제작팀장이 메인이 되어 작업을 시작한다. 후반부에는 제작 팀장이 내·외부작업들의 조율을 맡게 된다. 그리고 현장 슈퍼바이저는 영화사와 연락 및 조율을 맡고 외주업체와 협력업체의 조율을 통해 작업을 끝내는 방식이다.

“지난 5~6년 동안 이러한 방식으로 영화작업을 해왔습니다. 사실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일을 하다 보니 이것이 합리적이고 편하다는 것을 알게 됐죠” 아울러 DTI의 힘은 강력한 PT 능력이라고 이수영 실장은 덧붙인다. 초반 PT를 비롯한 진행들은 기획실에서 도맡아 한다. 영화 전반에 걸친 일들은 모두 PT를 거치게 되는데, 대부분 영업도 PT를 통한다고 한다. 그럼에도 최근 한국 영화시장을 대변하듯이 지난해부터 작업하기로 했던 영화 가운데현재 프로젝트가 시작된 것은 하나도 없단다. 경기불황의 여파가 오락 산업인 영화라고 비껴갈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이수영 실장은 “DTI는 함께 작업을 하지 않더라도 일단 PT는 계속”한다며 “언뜻 보면 손해인 듯 하지만, 어차피 영화작업에 필요한 자료이기 때문에 요긴하게 사용될뿐더러 우리와 작업을 하지 않더라도 PT를 계속하는 이유는 PT를 들었던 스태프 중 누군가는 우리와 다시 작업을 할 것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죠” 개의치 않는 표정에서 왠지 자신감이 느껴진다. 예산이 없다는 제작자에게도 일단 2주 동안 시간을 들여 PT를 준비하고 제공한다. 그래서 고마워하는 관계자들이 많다고 한다. 어떤 경우는 자신들이 영화 준비를 6개월 동안 했지만, 2주 준비한 PT가 더 도움이 많이 됐다는 이야기까지 했다고…. 여기까지 이야기를 듣자, 갑자기 PT 내용이 궁금해졌다. 어떻게 준비하고 어떤 내용을 전달하는지 물어봤다.

“우리 PT는 시나리오를 분석하고 이런 분야에는 이런 CG를 쓰고, 장비를 사용했을 때의 예를 보여주고 예상되는 결과물을 제시합니다. 보통 40분~1시간 정도 PT를 하고 질의 응답 시간을 합하면 2시간 정도 소요됩니다” 기자가 잠시 PT 내용을 봤더니 매킨토시프로그램인 ‘키노트’를 사용한 것이었다. 키노트는 스티브잡스가 신제품 발표회 때 주로 사용하는 프로그램으로, 파워포인트와는 달리 간단하면서도 인터렉티브한 여러 장점이 많다. 다른 곳에서도 이를 이용한 PT를 한다고 한다.

할리우드 CG 작업도 이제는 우리 손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