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타이틀을 많이 만들고 있는 남코반다이에서 캐릭터 아티스트로 일하고 있는 이주한씨가 CGLand 독자들과 만나러 본사를 방문했다.  

캐릭터 아티스트 하면 인터뷰를 꺼린다는 선입관을 갖고 있던 기자로서는 이주한씨와 만나면서 이런 환상이(?) 깨졌다.  수더분 하면서도 털털한 인상, 말잘 하는 모습 등. 기존에 만났던 캐릭터 아티스트들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받았다. 

CGLand 독자들을 만나기 위해 시간을 내서 인터뷰에 응해준 이주한씨께 감사드린다. 

취재 및 정리 _ 박경수 기자, 문가용 기자

촬영 및 편집 _ 전정순 PD 

CGLand _ 이주한씨는 어떤 분인지 간략히 소개해 주시죠?

2001년도에 미국 아카데미 오브 아트 컬리지(지금은 유니버시티)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을 전공하기 위해 유학을 갔습니다. 컨셉 분야로 (방향을 정하고) 공부를 하면서 직업을 찾던 중에 벽에 부딪혔습니다. 컨셉만 열심히 해서는 취업하기가 힘들다는 것이었죠.
컨셉 작업을 하면서 직접 만들어 보고 싶은 욕구도 생겼고요. 그래서 대학원에 진학해서는 3D를 전공했습니다.

대학원에 다니던 중에 EA로부터 연락을 받았습니다. 예전에 제가 뿌린 포트폴리오를 보고 연락한 것이더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반지의 제왕’ 게임 캐릭터 작업을 했는데 학생 신분이라 풀타임으로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일하면서 3D와 컨셉의 유기적인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고 공부를 했습니다. 제가 컨셉과 모델링 작업이 모두 할 수 있다는 장점을 살려 여러 곳에 취업지원서를 냈죠. 답이 온 곳 중에 남코가 저와 가장 잘 맞는 것 같았습니다. 저를 끌어주신 선배님도 마침 남코에 계셨고요.

CGLand _ 남코 반다이만의 독특한 색깔이 있다면?

일본 회사라서 그런지 일본풍이 많이 느껴집니다. 그것을 바꿔보려고 이번에 ‘아프로 사무라’이라는 남코스럽지 않은 작품을 시도해 보고 있습니다. 남코 미국 지사인 저희 색깔과 일본 본사가 완전히 같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미국 스타일도 아닙니다만.

CGLand _ 최근에 참여한 <아프로 사무라이>는 어떤 작품인가요?

만화 원작인데요, 미국에서 크게 성공한 작품입니다. 사무엘 잭슨이 성우을 맡았죠. 원작을 보셨는지 모르지만 제가 만든 티저 보다 원작은 훨씬 더 잔인합니다. 제가 제작에 참여한 트레일러는 게임의 가장 큰 장점을 살려야 했습니다.
이 게임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사용자 마음대로 커팅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사용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말이죠. 또 하나의 가장 핵심적인 컨셉은 'Blood Is Beautiful'이었습니다.

CGLand _ 이 작품의 제작에 참여한 인원은?

처음에는 대여섯 명이 시작했죠. 대부분 아웃소싱을 했으니까요. 그러다가 사람이 점점 더 필요해져서 나중에는 60명까지 늘어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요즘은 워낙 외주를 많이 줘서 프로젝트당 할당되는 인원이 그렇게 많지 않아요.
예전에 EA에 있었을 때는 외주를 주지 않아서 120명에서 200명까지 (한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붙는 걸 봤었거든요. 그런데 점점 한국, 중국, 인도 등으로 외주를 주다 보니까 점점 더 인원이 줄더라고요. 지금은 이 분야, 저 분야를 가릴 것 없이 모든 것을 소화해야 하는 멀티태스킹 지향적으로 되어 가고 있는 추세입니다.

CGLand _ 남코 반다이에서 일하고 있는 한국인은 어느 정도인가요?

요즘에 많아졌습니다. 한국 사람들이 손재주가 좋고 무엇보다 시간 안에 일을 완수하는 것에 철저한 편이죠. 그래서 외국 사람들도 그런 점에 굉장히 만족을 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한국 사람들을 선호하는 편입니다. 지금 남코에는 총 120명 정도 인원이 있는데, 한국 사람은 10명 정도 됩니다.

CGLand _ 아트, 일러스트레이션, CG는 어떻게 다릅니까?

제 생각으로는 크게 순수미술과 일러스트레이션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순수미술은 주로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 주된 과업이고 일러스트레이션과 CG는 클라이언트를 두고 하는 경우가 더 많잖아요? 그 사람들을 위해 맞춰가는 것이 과업이 되는 것이죠.
물론 작가로서 일러스트레이터들은 충분히 자기 그림을 그립니다만 그래도 순수미술 보다는 더 대중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상업성도 살짝 가미되어 있고요. 제가 주력하는 컨셉 아트나 CG 부분은 물론 자기 스타일도 있어야 하지만, 시대의 흐름에 맞는 디자인을 만들어 내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CGLand _ 3D도 예술의 한 장르일까요?

예, 그렇게 생각합니다. 예술품이란 것도 점점 혼합미디어로 가는 추세라 꼭 오일, 유화, 캔버스만이 예술이 되는 것은 아니거든요. 제가 알기로도 요즘 디지털 아트 쪽도 많이 활성화 되어 가고 있고, 갤러리 전시도 많이들 하시고 있으니까요. 꼭 순수미술만이 예술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CGLand _ 2D에서 3D로 넘어가는 과정이 어렵지 않았나요?

제 경우에는 2D를 했다는 것이 오히려 장점이 되었습니다. 제가 생각할 때 가장 3D에서 발전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은 첫 번째가 조각가인데요. 왜냐면 손으로 만지고 부피를 알기 때문에 직접 작업을 할 때 그 감각이 많이 도움이 되는 것 같더라고요.

예를 들어, 지금 블리자드 시네마틱에 용현씨라는 분이 있는데, 처음에는 CG를 열심히 하다가 조각에 더 몰두했습니다. 손으로 만지고 조각하고....... 근데 그것을 되게 열심히 하다 보니까 어느 순간 처음에 만들던 작품과 비교도 되지 않는 작품들을 만들더군요.

때마침 지브러시 머드박스 같은 툴도 나오고요. 조각하던 분들께는 툴만 바뀌었을 뿐이라, 아웃풋이 정말 대단했습니다. 그림 그리는 사람들은 물론 평면에서 더 익숙한 사람들이지만 아이디어나 컨셉이라는 부분에 있어서 CG만 하시던 분들과 또 다르더라고요.
일반적인 사람들이 주로 많이 듣는 말이 ‘컨셉을 달라’라는 요청입니다. 그대로 서 있는 사람이라면 만들 수 있는데 그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보통 CG인들이 아이디어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형상화 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제 경우에도 그런 점이 더 편했고요.

<그림> 개인작품들

CGLand _ 영어 문제는 어떻게 해결했는지 궁금합니다.

솔직히 언어는 특히 프레젠테이션을 늘 해야 하는 컨셉 아티스트에겐 더 중요한데요. 아티스트라면 작품으로 모든 것을 보여주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특별히 단어 많이 외우고 그런 것보다는 문법에 맞지 않는 영어라도 사람들과 많이 대화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회사 생활에서 각자의 영어 수준도 틀리고요, 특히 캘리포니아 같은 국제도시에서는 웬만한 국적불명의 영어는 다 이해하는 편입니다. 언어 문제 때문에 고민하거나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CGLand _ 해외취업시 겪었던 시행착오를 알려주세요.

제가 실수했던 것은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작품만 좋으면 취업이 되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여러 가지 문제가 많더라고요. 저희 같은 외국인의 경우는 비자 문제도 굉장히 크고요. 비자 신청기간을 고려해서 취업활동도 해야 하는데 저는 그런 정보가 없어서 벽을 느꼈던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대학원에 가서 3D를 전공했을 때에는 졸업하기 전에 미리 포트폴리오를 다 뿌렸어요. 그리고 취업비자 타이밍을 잘 맞춰서 졸업과 구직을 했기 때문에 일도 잘 풀렸던 것 같고요.

CGLand _ 해외 진출을 꿈꾸는 후배들을 위해 한 말씀해 주시죠.

제가 본 바로는, 그쪽(외국)이 원하는 스타일로도 포트폴리오를 준비해야 합니다. 자기만의 스타일을 고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저는 배울 것이 아직 더 많다고 생각하거든요. 과감히 자기 스타일을 버려서 뭔가를 이룰 수 있다면 얼마든지 버릴 줄 알아야 합니다.

또한 비자에 대해 많은 정보를 모아야 합니다. 솔직히 유학이나 취업문제에 있어 가장 크다고 느끼는 게 바로 비자 문제거든요. 지금도 취업비자 받으러 들어와 있는 상태죠. 게다가 요즘은 너무 신청자가 많아서 추첨으로 뽑습니다. 아무리 회사에 잘 취직해서 풀타임이 되더라도 비자가 안 나오면 참 난감하죠. 그런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많이 알아두시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점점 중요해지는 것이 기초과목이에요. 그림이나 조각 등 말이죠. CG 자체로는 툴도 쉬워지고 좋아지니까 이젠 복사할 수 있는 능력만 가지고는 경쟁력을 가질 수 없습니다. 기본이 어느 정도 되어 있느냐가 더 중요해지고 있죠.

텍스처에 대한 감각이 있느냐, 아이디어를 뽑아 구현할 수 있느냐, 같은 기본적인 자질을 많이 봅니다. 제 경우에는 회사에서 제안을 받은 자리는 굉장히 다양했어요. 이곳에서는 캐릭터 아티스트지만 텍스처 아티스트로 뽑힌 곳도 있었고, 컨셉 아티스트로 제의를 받은 곳도 있었어요. 즉, 자기가 무엇을 잘 할 수 있는지를 모아 포장해서 보여주면 선택하는 입장에서도 더 선택의 폭이 많아지겠죠. 회사도 딱 한 가지 분야에만 사용하려고 사람을 뽑는 것도 아니고요.

CGLand _ 작품 제작에 필요한 영감은 어떻게 얻고 있나요?

주로 웹사이트를 많이 봅니다. 꼭 전문가의 것이 아니더라도 영감을 줄 수 있는 작품은 많거든요. 그림을 잘 그렸다는 것 보다는 아이디어를 더 중점적으로 보고, 그것을 또 제 나름 발전시키는 것이 더 좋은 것 같아요. 참고로 저도 CGLand의 회원입니다.(웃음)

그림 성향 같은 경우 트렌드에 많이 영향을 받는데, 미국에서는 ‘굿 브러시’라는 사람이 전설처럼 남아 있죠. 배경을 그릴 때는 그런 사람의 작품을 많이 참고하고 있지요. 크리처 같은 경우 ‘까를로스 헌트’라고 예전 아일랜드의 크리처 수퍼바이저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분의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었죠. 또, 사진이나 평소 관심사 등 전공에 관련 없는 사이트들도 많이 관심을 가지고 보는 편입니다.

<그림> 개인작품들
 

CGLand _ 작품을 제작할 때 징크스 같은 것은 없나요?

저는 특별히 없습니다. 제 자신을 고정시켜 놓고 가둬 놓는 것을 좋아하지 않거든요.

CGLand _ 한국인들의 CG 실력에 대한 해외 평가는 어떤가요?

제가 봤을 때 한국 CG는 굉장히 수준이 높습니다.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회사에서도 한국 사람을 선호하고 있습니다. 어떤 회사라도 일단 포트폴리오만 본다면 한국 사람들의 포트폴리오를 좋아하고요. 기술력에 있어서는 크게 선호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다만 스타일 부분에서 좀 부딪힐 수 있는데, 그런 것 말고 아이디어와 실력으로만 봤을 때는 한국 CG의 수준은 굉장히 높습니다.

<그림> 게임 '반지의 제왕'에 등장하는 캐릭터들

CGLand _ 앞으로 어떤 아티스트가 되고 싶은 가요?

맨 처음 미국에 갔을 때는 ‘마시마로’라는 캐릭터를 보고 남들에게 널리 알릴 수 있는 그런 캐릭터를 만들고 싶어서 간 것입니다. 디즈니 캐릭터들도 동경했고요. 그렇게 장수할 수 있는 캐릭터를 만드는 것이 제 꿈입니다. 어떤 캐릭터이던지 한 번에 잊히는 것이 아니라 아주 오래 사는 캐릭터를 만드는 것이 누구나 갖고 있는 꿈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