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12월29일부터 30일 이틀간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관련 아마추어에게 있어서 일본 최대 이벤트라고 할 수 있는 코미케가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1975년 참가자 700명, 참가 서클 32 정도의 소규모로 시작한 코미케는 현재 한해 참가자 약50만 명, 참가 서클수만 도 4만을 넘어서는 엄청난 규모로 성장했다. 더군다나 일본 국내에 만화, 아니메라는 특수한 매체를 대상으로 함에도 불구하고 국내 뿐만이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그 인지도가 높아, 세계 각국의 코믹마켓, 만화 애니메이션 컨벤션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며 일본 오타쿠 문화의 세계화에 크게 공헌한 영향력을 자랑하는 이벤트이기도 하다.

코미케에 없는 것은 없다!’라는 말이 있다. 그 이유는 코미케에 찾아오는 사람들이 코미케에 없는 장르를 찾아내어 다음 번에는 자신이 동인지를 만들어 참가하는 자가증식 이벤트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코미케가 이정도 성장을 거둔 것은 동인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더불어 장르를 불문한 자유로운 표현의 자유를 허용하는 토양이 마련되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역시 직접 가보지 않으면 한마디로 표현하기 어려운 코미케를, 그래도 부족하나마 소개해 보기로 하겠다. 코미케의 인간지옥은 신바시의 유리카모메(신바시에서 빅사이트의 아리아케까지 연결되는 레일식 전동차)에서 부터 시작된다. 계단을 올라서자 마자 승강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로 붐비기 시작해서 이 상황은 빅사이트 광장에까지 긴 줄로 이어진다. 다행히 필자는 한국 애니메이션을 소개하는 평론 동인지 서클 ‘카니폭동’의 협력으로 참가자 입장권을 입수, 줄을 서지 않고 바로 입장할 수 있었는데 인지도가 높은 동인지를 구입하기 위해 허위로 부스를 신청 하는 사람들도 있으며 고가로 입장권을 거래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한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입장권 디자인은 지폐처럼 복잡한 문양으로 디자인 되어 있다.

‘BeNETSU 증후군’은 아르헨티나의 애니메이션 ‘CYBERSIX’(실제 애니메이션 제작은 도쿄무비)를 소개하는 동인지를 판매하고 있었는데 30엔이라는 초 염가 판매로 오전에 완전매진 되었다. 또한 같은 줄에 ‘한국 이벤트 감상기’라는 동인지가 필자의 눈길을 끌었는데 한국의 아카와 코믹월드에 참가하고 직접 동인지도 낸 경험이 있는 한다씨가 한국 코믹마켓에 대해 느꼈던 점을 동인지로 엮어낸 것. 한국 이벤트에 대한 애정어린 관심과 따가운 비판이 눈길을 끈다. 그밖에도 1977년 토에이 제작의 지금은 잊혀진 B급 특촬물 ‘더 카게스타’와 과거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끈 케네스 존슨의 SF드라마 ‘소머즈’, ‘헐크’, ‘브이’를 다룬 ‘BJ PRESS’ 의SF특집 등, 코미케가 아니면 좀처럼 볼 수 없는 소재들의 동인지들을 발견할 수 있어서 과연 없는 게 없다는 코미케를 실감하게 된다. 또한 자신의 관심분야에 철저히 몰두하는 탐구정신, 그것을 다양한 형태로 재미있고 다채롭게 변형해 내는 유희와 상상력 또한 코미케에 활기를 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코미케는 크게 동관과 서관, 기업부스와 야외 코스프레로 구획 지어져 있는데 끝날 무렵인 오후 3시경에도 야외에서 줄줄이 걸음을 해야 할 정도로 붐볐다. 특히 기업관에는 비주얼 아트 등 미소녀 게임 부스들이 큰 성황을 이루어 ‘18금’과 ‘미소녀’ 라는 장르는 동인지 뿐만이 아닌 기업에서도 두드러진 강세를 나타내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다. 물론 일반 서점에서 구입할 수 없는 출판사 아니도우의 ‘세계 애니메이션 영화사’와 ‘명탐정 번개’의 설정과 더불어 ‘나카무라 타카시’, ‘카나다 요시노리’등의 유명 애니메이터들이 만화를 기고한 ‘Betty’라는 잡지를 구입할 수 있다.

코미케는 저작권 문제, 외설시비, 증가하는 코미케 입장객, 코스프레 규제 등 여러 가지 풀어야 할 숙제를 안고 있다. 하지만 그 엄청난 인원에도 자원 봉사자들인 스텝들의 노력과 참가자들의 질서 의식으로 큰 사고 없이 무사히 치워졌으며, 전단지 등이 바닥에 아무렇게 버려지는 것을 발견하기 힘들었다는 것이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무엇보다도 여전히 코미케는 자유로운 자기발현의 장으로 활기를 띄고 있었으며 그 열기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