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media.cgland.com]

새로운 패러다임, digital

인류사회에 있어서 가장 큰 삶의 질적 변화가 발생한 혁명적 사건을 우리는 '산업 혁명'이라고 부르며, 이러한 중요한 기초적 의식의 변화를 '패러다임쉬프트(paradigmshift)'라고 칭한다. 전반적인 사고 체계와 상식의 기준이 모두 급속도로 변해버리는 시기 혹은 시점을 우리는 이러한 개념으로 부르는데, 앨빈토플러의 제안으로 만들어진 단어이다.

19세기에서 20세기로 전환되면서 인류를 발전시킨 패러다임 변화는 증기기관을 중심으로 한 산업혁명이었으며, 20세기에서 21세기로 전환되면서 등장한 새로운 패러다임은 '디지털(digital)'이다. 이 디지털이라는 개념은 기존의 아날로그 시스템이 지니고 있었던 모든 동선과 산업적 조직, 그리고 직업형태와 생활의 시간대(lifecycle)까지 급격하게 변화시키고 있다. 디지털 영화도 바로 그러한 논의의 중심에 서 있다. 물론 디지털 애니메이션은 이미 9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논의되고 있으며, 픽사(PIXAR)의 <토이스토리>가 개봉되면서 3D풀디지털 애니메이션의 대중적 흥행가능성도 이미 검증된 상태다. 조지루카스의 <스타워즈>가 본격적인 특수효과의 신기원을 이루어냈다면, 헐리우드 불록버스터가 필수적으로 삽입하고 있는 SFX의 기술력 근저에는 항상 컴퓨터 그래픽 애니메이션의 통합적인 솔루션이 자리잡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디지털 애니메이션이 이제 실사영화의 삽입효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헐리우드 영화산업의 핵심적인 요소로, 나아가 주도하는 기술력으로 대체되고 있음은 최근 개봉되고 있는 블록버스터의 완벽한 완성도, 특히 극도의 스펙터클과 스피드, 웅장한 스케일 등을 통해 알 수 있다. 디지털 애니메이션의 역할은 영화산업의 가능성을 더욱 확장시킨 기술력의 진보이며, 보다 나아가 배급과 소비의 시장모델까지도 완전히 바꿀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미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끊임없는 디지털 그래픽 애니메이션의 제작 프로그램이 개발되고 있으며, 온라인과 모바일에 사용할 수 있는 초소용량의 제작 프로그램과 압축기술이 하루가 다르게 개발되며 상용화되고 있다. 미국과 일본의 이러한 제작프로그램 개발 러시는 이런 프로그램을 사용하여 성공적인 디지털 애니메이션을 지속적으로 제작, 개봉할 수 있는 자본력과 제작사의 기획력이 상존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월트디즈니와 드림웍스가 사운을 걸고 지금도 한판을 진행중인 3D풀디지털 애니메이션의 경쟁은 <토이스토리>시대의 독점적 효과를 뒤로하고 <개미>와<벅스라이프>의 영상기술경쟁까지 발전되었으며, <타잔>에서 완성된 3D배경의 2D통합화는 이제 본격적인 디지털 애니메이션의 성황기를 예고하고 있다.

일본에서도 젊은 애니메이션 감독들과 SF사이버펑크 애니메이션을 주도하고 있는 애니메이션 오타쿠 출신 감독들을 중심으로 보다 발전된 디지털 애니메이션의 시도가 본격화되고 있다. <청의 6호>는 이러한 디지털 애니메이션의 급격한 변화추세에서 일본의 세계시장 주도권을 예상케하는 중요한 전환기의 작품이다.

일본 최초의 풀디지털, <청의 6호>

1997년 일본 애니메이션 제작사에 있어서 중요한 일이 발생한다. 일본 최초의 풀 디지털 OVA 작품<청의 6호>의 제작이 무라하마 쇼지를 중심으로한'곤조(GONZO)'에 의해서 발표된돠, '곤조'라는 의미는 일본어로 근성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데, 이 프로덕션의 대부분의 구성원이 <신세기 에반게리온>을 만든 가이낙스 출신들이다. 캐릭터 디자인을 맡은 무라다랑게와 메카닉 디자인을 맡은 가와모리 쇼지 등 화려한 스탭진들의 절묘한 기교들의 배합이 이 작품의 화려함을 완성시킨 것이다. 이'곤조'라는 프로덕션을 기존 플레이스테이션과 같은 비디오게임 프로그램의 그래픽을 많이 제작해 온 전문 제작사로 결국 <청의 6호>의 작품완성도는 우수한 전문제작진과 게임그래픽의 경험으로 무장된 제작력이 에너지를 발생한 것으로 평가해야 한다.

이처럼 완성도 높은 작품이 1998년 10월 25일<청의 6호 1편 BLUE>라는 작품명으로 공개되었을 때 일본의 애니메이션 매니아들과 평론가들은 흥분하였다. 그러나 흥행측면에서는 결과론적 분석으로 실패한 작품이다. <청의 6호는>원작은 오자와 사토루의 1960년대 해양모험 출판만화에 기반한다. 결국 60년대 원작을 기반으로 작품을 구성하다 보니, 당시의 극명한 선악대결과 기존 만화스토리가 지니고 있는 매너리즘의 함정이 관객들로 하여금 쉽게 흥분한 대신 쉽게 실망하도록 만든 것이다. 특히 유사한 시기에 방영되었던 <기동전함 나데시코>와 <카우보이비밥>의 열풍도 한 몫을 한 것으로 평가되기도 하지만, <청의 6호>의 가장 큰 문제는 화려하면서 아직 어딘지 모르게 어색한 2D캐릭터와 3D배경의 결합문제이다.

감독 마에다 아히로는 게임르롤로그 애니메이션 및 게임 그래픽전문 감독으로 특히 일본식 특촬물(특수촬영물)의 원화 디자이너로 유명한 전문가인데 <청의 6호>는 그의 본격적인 애니메이션 데뷔작품인 셈이다. 특히 2D와 3D의 배합을 전반적인 작품의 중심수위까지 끌어올린 점은 첫 작품으로서는 극히 무모할 정도의 도전 정신을 발견하게 된다. 제작진들은 이 작품의 리얼리티를 극대화시키기 위해 일본 해양 자위대의 협조로 실제 일본에 상존하는 잠수함과 호위함, 그리고 초계기 등을 직접 견학하여 현장에서 사진촬영 킻 내부스케치 작업을 진행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모험이라고 할 수 있는 2D와 3D의 배합이 각각 차별적인 그래픽으로만 평가한다면, 높은 완성도를 유지하게 된 것이다.

게임같은 애니메이션, 애니메이션같은 게임

<청의 6호>의 스토리 시작은 가까운 미래, 지구는 심각할 정도의 환경변화로 도시의 대부분이 바다에 잠기게 되었고, 인류가 살 수 있는 공간은 점점 줄어들어 가며 상대적으로 인구는 증가한다는 가상적 현실에 기반한다. 인류의 마지막 선택은 바다. 그리하여 바다 자체 즉 바다 환경의 안전수호대를 초국가적 조직으로 탄생시키게 되는데, 그 조직명이 바로 '청(靑)'이다. 그리고 이 조직을 중심으로 각 국에서 잠수함을 파견하게 된다. 그 중 일본의 해상자위대가 파견한 잠수함이 이 조직의 6번째 잠수함인 '청의 6호'가 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바다환경의 적극적인 개발프로젝트를 맡고 있었던 천재과학자 존 다이크 박사가 돌연 '청'이라는 조직에 반발하여 해양 테러부대를 결성, 인류의 멸종과 새로운 통제사회의 야망을 갖게 된다. 존 다이크 박사는 인류 자체를 지구미래의 불필요한 존재로 주장하며, 인류의 멸종과 새로운 해양생물의 유전자 조작만이 지구의 희망이라고 주장한다. 존 다이크 박사의 광폭한 야망으로 인해 지구는 황폐화되고, 그가 발명한 곤충형태의 생체병기와 그들로부터 지구를 지키려는 '청'의 전쟁은 점점 극심해 간다. 여기에 여 주인공 키노와 전쟁자체에 부정적 의지를 보이는 블랙전사 하야미, 그들의 지구를 구하려는 노력이 이 작품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대개 우리가 만날 수 있는 SF만화의 스토리라인을 그대로 지니고 있으나, 보다 차별적인 작품의 완성도는 강력한 스피드와 검증력을 높은 3D모델링, 그리고 극도의 스펙터클을 보여주는 압도적인 규모등이 이 작품의 화려한 볼거리를 장식하고 있다. 마치 한 편의 게임을 직접 하고 있는 듯한 환상에 빠지게 될 정도이다.

게임같은 애니메이션, 애니메이션같은 게임, <청의 6호>는 마치 바다속에서 함께 잠수함을 타고 전투를 하는 것과 같은 환상을 관객에게 선사한다. 물론 부자연스러운 해양생물들의 유영과 어색한 3D배경의 과도한 리얼리티가 부담을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청의 6호>가 보여주고 있는 강력한 실험의지는 관객들에게 충분히 미래사회를 준비하는 만족감으로 다가올 수 있다.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면, 문득 제작사나 관객 모두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게 되고, 이러한 시도가 강력한 일본 애니메이션의 포트폴리오로 형성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