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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칼럼]미국 메릴렌드 블러 아티스트 Jason Martin   2012-03-02
이달의 인터뷰는 블러 아티스트 Jason Martin과 함께 합니다. 제이슨은 아주 재미있는 그의 과거 이야기가 많습니다. 예술가의 기질이 있는 부모님과 군대에서 있었던 일 같은 것이죠. 또한 그의 작업방식과 다양한 소프트웨어를 활용했을 때 유리한 점도 말해줍니다.
씨지랜드기자 cgland@cglan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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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메릴렌드 블러 아티스트 Jason Martin

이달의 인터뷰는 블러 아티스트 Jason Martin과 함께 합니다. 제이슨은 아주 재미있는 그의 과거 이야기가 많습니다. 예술가의 기질이 있는 부모님과 군대에서 있었던 일 같은 것이죠. 또한 그의 작업방식과 다양한 소프트웨어를 활용했을 때 유리한 점도 말해줍니다.

안녕하세요 제이슨. 자기 소개와 함께 현재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조금 말해 주시겠어요?

글쎄요 한 번 생각해 볼게요. 얼마나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야 되는 거죠? (웃음) 저는 메릴렌드 주의 맨체스터에서 자랐습니다. 미국 볼티모어에서 약간 북쪽에 있는 작은 마을이죠. 저의 가족과 저는 숲으로 둘러싸인 작지만 매력적인 집에서 살았습니다. 저는 거기서 정말 재미있게 자랐고 지금도 그곳이 그립습니다. 아티스트 가족에게서 태어난 것은 정말 행운이었습니다. 저의 어머니는 일러스트레이터였고 아버지는 애니메이터였고 제 동생 두 명은 아주 재능이 많은 아이들이었습니다. 누가 봐도 창의적인 환경에서 자랐다고 할 수 있죠. 아주 어릴 때부터 저는 무언가를 그려댔습니다. 그때는 'B-17 Flying Fortress'에 약간 집착이 있어서, 그 폭격기를 계속 그렸었습니다.

부모님 두 분은 모두 메릴랜드 공영 TV에서 일했고 그 쪽에서 Peregrine Inc라는 애니메이션 비즈니스를 하셨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집에서 프리랜서로 하던 일이 더 잘되었기 때문에 아버지는 집에 옥스베리 애니메이션 카메라를 들여 놓기도 했습니다. 이런 것을 보신적 있으세요? 인터넷에서 사진을 찾아보면 얼마나 큰 지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집 주방이 그것을 올려다 볼 수 있는 위치에 있어서 대충 봐도 10~12 피트 정도의 높이였고, 아마 더 컸을 수도 있습니다. 제가 밤에 잠을 자려고 누우면 항상 아버지와 그 파트너가 그 기계로 작업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때로는 거기 몰래 숨어 들어서 놀려고 했지만 항상 쫓아내시고 하셨죠. 주말에도 아주 즐거웠습니다. 카메라는 쉽게 만져볼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버지는 관련 학문을 공부하는 학생들을 집으로 불러서 써보게도 하셨거든요.

이런 어릴 시절에 좋은 추억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이 기억이 제가 이 일을 하도록 조종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버지의 직업 사상은 흠잡을 데가 없었고 저를 완전히 물들이게 되었습니다. 제 어머니도 마찬가지로 아주 재능이 많은 분이셨습니다. 저는 지금도 어머니의 작품을 보고 감동을 받습니다. 어머니는 훌륭한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셀 페인터였습니다. 어머니가 쓴 컬러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운데 저도 꼭 그렇게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결국 제 부모님은 집에서 하시던 일을 그만뒀습니다. 생각보다 일이 많다고 느껴졌기 때문이겠죠. 이 즈음, 옛날 방식의 애니메이션은 점차 컴퓨터 애니메이션에 그 자리를 물려주고 있었고 제 아버지도 자연스럽게 그에 대한 준비를 하셨습니다. 무슨 버전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DOS용으로 출시된 3D Studio였다는 것은 기억합니다. 그때 저는 10대였고 미술보다 다른 것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왜인지는 모르지만 이런 것들에 둘러싸여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반항심이 생겼던 것 같습니다. 제가 관심을 가진 것은 스케이트 보드뿐이었습니다. 학교와 컴퓨터(게임은 제외하구요)는 제가 제일 관심이 없던 것이었죠. 지방 대학에 들어가서도 딱히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 없습니다. 아무런 방향성도 없이 빈둥대며 젊음을 즐기기에 바빴던 거죠.

아버지는 저의 미래에 대한 걱정을 하셨습니다. 3D 관련 일을 하기 바라셨습니다. 아시겠지만 그렇게 관심을 가지게 만든 것이 결국 제 직업이 되었습니다. 마치 어제 있었던 것처럼 그 대화를 기억합니다. 아버지가 집에 오셔서 저를 앉히고 3D Studio를 보여주며 말씀하셨습니다. “제이슨, 이 소프트웨어만 앉아서 좀 공부하면 대학을 안가도 지금 당장 취업할 수 있단다” 아버지의 말은 옳았습니다. 당시 3D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조금만 할 줄 알더라도 여기저기서 찾았던 시기였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곧바로 테이블이나 의자를 만드는 튜토리얼을 따라 했습니다. 한 시간 정도를 해보고 난 뒤 저는 생각했죠. ”짜증나, 스케이트나 타러 가야겠다.”

아버지는 저를 그렇게 내버려 두지 않았습니다. 하루는 토요일이었는데 저를 끌고 가서는 인디고사의 실리콘 그래픽 데모를 보여주었습니다. 그 당시 생각해보면 소프트이미지 같은 프로그램을 실행 했던 것 같아요. 장담은 못하겠지만 그 때 제가 관심이 있었던 것은 탁자 위에 있던 패스트리 뿐이었습니다. 완전히 관심이 없었죠. 지금은 아버지가 이때 일을 두고 얼마나 저를 놀려대는지 모릅니다. 생각해보세요. 그때부터 시작했더라면 제 경력이 얼마나 쌓였겠어요. 저는 다른 사람들이 꿈만 꾸는 너무나 많은 기회가 있었는데도 그것을 쓸 줄 몰랐던 겁니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는 것이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 일을 시작했으니까요.

결국 아무런 목적이 없는 제 자신에 이골이 나서 메릴랜드를 벗어나고 싶어졌습니다. 저는 어렸고 세상이 어떤지를 보고 싶었습니다. 워싱턴 DC에서 앤드류 공군 기지 근처의 공사일을 하며 제트기가 날아다니는 것을 구경했습니다. 그걸 보다 보니 공군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6개월 후 텍사스의 샌안토니오에서 군사 훈련을 받고 무기 탑재 시스템 기술자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말은 멋있지만 제가 한 것은 F15와 F16에 미사일과 폭탄을 싣는 일이었습니다. 저한테는 좋았죠. 훈련도 시켜주고 대학에 갈 돈도 주었습니다. 4년 간은 정말 즐거웠습니다. 많은 것을 보고 배웠습니다. 이 때 몸에 문신도 많이 했는데 이것도 어렸을 때 예술가적인 흥미를 일깨워 주었던 것 같습니다.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문신을 그리는 것을 제대후의 직업으로 생각할 정도로 심각하게 고려했습니다. 사실 2001년 12월에 제대를 하게 되면 몇 가지 재취업 과정을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내가 받은 훈련과 대도시가 주는 기회를 잘 활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9월 11일이 그 생각에 대해 종지부를 찍게 했습니다. 사실 9월 11일은 제 경력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군이 적자를 막을 법률을 제정했고 제가 원하는 대로 12월에 제대를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저에게 와서 2주간 생각해 보고 결정하라고 했습니다. 그냥 제대를 하던지 아니면 재입대를 하던지요. 이 시점에서 재취업 과정은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준비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집으로 돌아갈 수도 없었습니다. 군은 엄청난 재입대 보너스를 제 면전에 들이밀었고 제가 군에 머물기를 바랐습니다. 제 생각에 더 큰 도시 근처의 기지로 갈 수만 있다면 타투를 하건 학교를 다니건 더 많은 기회가 생길 것이라 기대했습니다. 제가 처음 선택한 곳은 라스베가스였고 군에서는 저를 그쪽으로 배치해주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4년을 더 복무했고 라스베가스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라스베가스에 도착해서 아주 오랫동안 그리고 깊이 생각을 해 본 결과 타투는 나에게 맞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학교를 다니는 것이 급선무라 결심했습니다. 시간을 낭비하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받은 훈련과 대도시가 주는 혜택을 잘 활용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열렬한 게이머였고 3D가 제 흥미를 자극했기에 라스베가스에 있는 예술 교육원에 등록을 했고 미디어아트와 애니메이션 프로그램을 들었습니다.

3D에 대해서 저는 완전히 초보자였습니다. 저는 어떤 길을 걸어야 하는지 전혀 몰랐고 처음에는 애니메이터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애니메이션은 전혀 구미가 당기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처음 1학기가 끝나고는 별로 재미도 못 느꼈습니다. 다만 포기하지는 않았습니다. 이때까지는 저는 단순히 기초 애니메이션 코스의 입문 단계만을 들은 것이고 실질적인 3D 작업을 해보지도 못했습니다. 이어서 3D 모델링 과정을 들었고 이때는 좀 더 좋은 성적이 나왔습니다. 3ds Max 6를 썼는데 이때가 처음 3D에 흥미를 가진 때입니다. 모든 것이 어느 정도 착착 정리가 되었고 모델링이 저에게 맞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애니메이션에도 게을리 하지는 않았지만 관심은 없었죠. 저는 모델링과 에셋 제작에 더 맞는 사람이었습니다. 스컬팅과 장인 정신 같은 것이 함께 결합해서 저에게 있어서는 천상의 매치를 이루었습니다.

2006년에 졸업을 했지만 제가 받은 교육은 아주 기본적인 것이라 생각해서 모델링 실력을 쌓기 위해 밴쿠버 필름 스쿨을 가는 것이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 생각이 옳았죠. 밴쿠버 필름 스쿨은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싸지는 않았지만 모든 면에서 저는 정말 열심히 노력했고 결과도 만족스러웠습니다.

학교를 졸업할 때 저는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에 정말 흥분되었습니다. 가족과 가까이 지낼 수 있는 메릴랜드에서 일을 찾으려는 생각이었습니다. 거의 10년 간을 떨어져 있었으니까요. 당시에는 Bethesda Softworks에서 일을 하고 싶었고, 논리적으로도 올바른 선택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저는 Blur에서 만든 영화의 엄청난 팬이었고, “알게 뭐야, 한 번 보내보자”하는 행운을 기대하는 심정으로 많은 곳에 지원을 했습니다. 동시에 제가 학생 때 만든 릴을 여기저기 게시하고 다녔습니다. 그게 CGTalk의 대문에 걸리게 되었고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나고 나서 저에게 연락이 온 스튜디오가 있었습니다. 정말 좋은 경험이었고, 그렇게 자신을 알릴 기회를 갖게 된 것을 보면 저는 정말 축복받은 것이죠.

“모두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었다. 그런 분위기에 속할 수 있다는 것이 매우 감동적이었다.”

Bethesda도 관심을 보인 스튜디오 중의 하나였습니다. 몇 가지 테스트 할 것을 보내주기로 했고 저는 매우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일은 잘 진행되었습니다. 얼마간 지난 금요일 밤 친구 집에서 맥주를 마시며 하루를 마무리하고 있었습니다. 제 전화가 울리며 메일이 와서 제목을 확인했더니 블러 스튜디오의 팀 밀러가 보낸 것이 아니겠어요. 팀 밀러를 모르는 분들을 위해 말씀을 드리자면, 팀은 블러의 공동 소유자이자 창작 디렉터입니다. 그 스튜디오의 팬이 된 이후로 그 이름이 너무나도 익숙했습니다. 또 너무나 흥분되었죠. 어쨌든 메일을 열어보니 대략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작품이 마음에 듭니다. 프리랜서로 6개월 정도 채용해보고 싶습니다. 이쪽으로 2주 후에 와주실 수 있나요?” 짧게 말하자면, 2주 뒤에 LA로 달려갔고 나머지는 아시는 대로입니다. 곧장 블러로 달려갔고 프리랜서 기간이 끝난 뒤 직원으로 채용되어 지금까지 일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성공 뒤에는 숨겨진 모험이야기에 가깝네요. 3D 아티스트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줄만한 조언이 있을까요?

음 조언이라, 글쎄요. 3D 아티스트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프로그램을 만져보기 전에 기본을 아는 것입니다. 언제나 그림을 그리고 많은 참고 자료를 보는 것이 좋습니다. 어떤 툴이나 3D 프로그램도 무엇이 좋은 형태이고 실루엣인지 가르쳐주지는 않습니다. 꼬마 아이가 총을 가지고 뛰어다니는 것처럼 기초 실력이 부족한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단단한 기초가 없이는 좋은 3D 아티스트가 될 수 없습니다. 기초가 곧 모든 것입니다. 사실 저는 가능한 많이 기본으로 돌아가려 합니다. 그럴 수 있는 시간이 더 많았으면 좋겠어요. 저는 일 할 것이 많아서 시간 제약 있지만, 할 수 있을 때는 그림을 그리고 페인팅을 합니다.

라스베가스의 미술 교육원과 밴쿠버 필름 스쿨을 그리 오래지 않은 시기에 다니셨는데, 거기서 배운 것이 지금 도움이 되나요?

음, 여러 가지 면에서 제 경력의 중심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처음 라스베가스의 교육원에 가려고 했을 때 저는 3D 면에서는 완전히 초보였습니다. 게다가 수년 전에 아버지가 작업 하는 것을 봤을 때는 그게 무엇인지도 몰랐습니다. 저는 항상 게임을 했으니 그것이 처음 흥미를 자극한 것일 겁니다. 학교에 가면서 제가 좋아하는 게임을 만드는 어딘가의 게임 스튜디오에 취직하리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프로그램을 만지면서 별로 빠져들지 않았는데, 붙어 있다 보니 푹 빠지게 되었습니다. 첫 3D 코스를 끝내고 나니 경주가 시작된 기분이었습니다. 모델링에 심취하게 된 겁니다. 제가 모르는 것을 알려줄 만한 사람을 계속 찾아 다녔습니다. 결국 학교에서 작업에 열정을 가지고 있는 모든 이들을 친구로 사귀게 되었고 서로의 아이디어나 작업 방식을 주고 받았습니다.


슬프게도 학교는 아주 기본적인 수준이었고 모델링에 주안점을 두지는 않았기에 그런 정보를 찾아서 수없이 돌아다녔습니다. 3D 프로그램의 선구자인 Lee Laneir가 많이 도와줬습니다. 리는 언제나 이런 것을 열망하는 이들을 찾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고마워요 리. 아까도 말했지만 라스베가스 교육원에서는 충분히 배우지를 못 했고 상급 교육기관을 찾을 필요가 있었습니다.

이때쯤 밴쿠버 필름 스쿨이 멋진 모델링 릴로 인터넷을 달구고 있었고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밴쿠버 필름 스쿨은 엄청난 가격표가 붙어 있었고 그것이 약간 걱정되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만들어지는 것들을 계속 지켜보니 제가 만들었던 것과는 비교가 안되게 멋있었기에, 저는 이를 악물고 거기로 결정했습니다.

2006년 봄에 그쪽으로 이사를 가서 5월 초에 시작하는 반에 들어갔습니다. 밴쿠버 필름 스쿨은 힘든 사랑이었습니다. 설명해 드리자면 엄청난 작업량을 부여했고 조금 압도적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럴만한 가치는 있었습니다. 완전히 다른 환경이었습니다. 모두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었고 그런 분위기에 속해 있다는 것이 매우 감동적이었습니다. 제 반은 훌륭했습니다. 제 주위의 모든 이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고, 좋은 친구도 많이 사귀었습니다. 우리 반의 대부분은 업계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실제 커리큘럼 면에서 보면 6개월간 기본적인 입문 형식의 코스를 받고 이후에 특정 진로를 택하게 됩니다. 애니메이션, 모델링, 비주얼 이펙트가 있겠죠. 다음으로는 “개미 농장”으로 가서 6개월 동안 릴을 만들게 됩니다. 이곳이 대부분의 교육을 받게 되는 곳인데 그만큼 밤을 많이 세게 되는 곳이기도 합니다. 좋은 시간이었고 만약 밴쿠버 필름 스쿨이 아니었다면 졸업 후 바로 블러로 오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블러 스튜디오에서 일하는 동안 정말 많은 관심을 받는 게임 타이틀에 작업을 하신 것 같은데 어떤 것이 있었으며 좋아했던 것은 무엇이었는지 말씀해 주시겠어요?

솔직히 말하기가 힘듭니다. 저는 운 좋게도 다수의 상징적 캐릭터를 작업할 수 있었고 모두가 훌륭한 경험이었습니다. 알파 시리즈, 바이오쇼크2의 빅대디, 아캄시티의 조커, 포스 언리쉬드2의 다쓰 베이더 같은 것이 되겠네요. 이 중에서 고르자면 결국 다쓰 베이더 같습니다. 저는 스타워즈를 보며 자랐고 어떤 모델러라도 다쓰 베이더를 만들 기회라면 주저하지 않을 겁니다. 꽤 멋진 기억이라고 말해야겠어요!

조금 덜 상징적인 캐릭터도 작업했는데 이것도 마찬가지로 재미있었습니다. 재버워키의 동영상에 나오는 촘피나 매스 이펙트의 그런트가 생각납니다. 크리처는 아주 욕이 나오는 작업입니다. 무언가를 설명해주는 것이 필요하고 아주 지루합니다. 그래도 휴머노이드 같은 것은 좋아합니다. 이 작업을 하는 것은 도전 의식을 자극하니까요. 사실적인 얼굴을 만들 수만 있다면 크리처도 만들 수 있습니다. 리얼리즘은 가장 큰 난관입니다.

영감을 받게 되는 소스나 인물이 있나요?

아주 많습니다! 재미있는 것도 아닌데 무지 많습니다! 저는 모든 것에서부터 영감을 얻습니다. 3D 장르에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블러에 들어오니 Laurent Pierlot나 Alessandro Baldasseroni 같은 훌륭한 캐릭터 아티스트와 일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이 둘은 모두 저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고 도움도 주었습니다. 현실적이고 겸손하면서 열정적인 사람들이죠. 물론 회사 밖에서도 영감을 얻습니다.

“일을 하면서 자부심을 많이 가지지 않는다. 언제나 현실적이면서도 작업에 집중하는 것이 좋다.”

셀 수 없이 많은 모델러, 스컬터, 페인터가 있고 이들이 저를 자극합니다. 저는 Jordu Schell, Rick Baker, Stan Winston이 만든 작품을 좋아합니다. 이들이 영화에 기여한 바는 믿을 수 없음 그 자체입니다. 또한 저는 판타지 아티스트 Richard Corben의 팬이기도 합니다. 그의 컬러 구성과 페인팅을 아주 좋아합니다. 마찬가지로 Frank Frazetta도 그렇습니다. Zdzislaw Beksinski는 언제나 제 영감의 원천이 되었습니다. 그의 작품을 보다 보면 시간 가는 줄을 모를 겁니다. 제가 말한 이 사람들 중에는 자주 언급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물론 좋은 이유에서죠. 정말 실력 있는 사람들입니다.

흔히 저급하다고 하는 것들도 좋아합니다. 거기서는 정말 멋진 아이디어로 무장된 것들이 있거든요. Robert Williams부터 시작해 Robert Crumb까지. 문신을 그리는 사람들 중에서도 그런 씬에 기여한 바가 있습니다. 거기에는 피부에 뿐만이 아니라 다른 멋진 것들도 많습니다. 지금 생각나는 이름은 Timothy Hoyer, Aaron Coleman, Tim Lehi, Watson Atkinson 입니다. 또 다시 3D로 돌아오자면 디지털 웹사이트의 선두주자인 ZBrush Central, 3DTotal, CGHub, CGTalk 같은 곳을 조금만 둘러보더라도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릅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작업한 것을 보면 믿기지가 않습니다. 솔직히 두려울 정도예요. 하지만 이것이 우리를 긴장시키는 것들이죠. 멋진 것들이 너무 많아서 하루 종일 얘기할 수도 있을 것 같네요!


현재의 작업 흐름에 대해서 좀 말씀해 주시겠어요?

그러죠. 제 생각에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혼란스러울 것 같습니다. 이유는 제가 XSI와 Max를 복합적으로 사용하면서 ZBrush와 Mudbox도 쓰기 때문입니다. 저는 XSI의 모델링 툴을 정말 좋아합니다. 제 생각에 제가 써본 어떤 프로그램도 XSI 폴리곤 툴의 정밀함에는 쫓아올 수 없을 것 같습니다. Tweak 툴, Proportional 툴, Move Proportional 툴은 폴리곤을 조종하기에 너무 멋진 기능입니다. 아주 유기적인 느낌이 듭니다. 또한 XSI는 밀집된 메시를 아주 잘 다룰 수 있으므로 제가 만든 ZBrush 메시를 아주 쉽게 다룰 수 있습니다. 블러에서는 두 프로그램을 주로 채택하므로 둘 다를 아주 잘 활용하게 되었습니다. XSI에서 폴리 모델을 다 만들고 ZBrush, Mudbox로 갔다가 다시 Max로 가서 페인팅을 하고 텍스처를 입힙니다. 블러는 XSI를 애니메이션에도 쓰지만 렌더링은 Max에서 합니다. 그래서 Max에서 텍스처를 입혀야 합니다.

보시는 것처럼 이만큼의 소프트웨어를 넘나듭니다. 보통은 아주 부드럽게 넘어가지만 너무 자주 왔다 갔다 하다 보면 메시가 깨지거나 포인트 카운트가 변합니다. 아주 괴로울 수도 있지만 관리할 수는 있습니다. 사실 이 두 가지 프로그램을 넘나들며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 것이 좋습니다. 각각의 프로그램은 장단점이 있고 어떤 작업을 위해서 둘 모두를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은 좋은 것이니까요. 작업의 대부분에는 XSI에서 폴리 모델링을 하고 Max에서 텍스처링을 합니다. 스컬팅이 필요할 때는 ZBrush를 활용하는 것이 90% 정도이지만 Mudbox에 대한 관심도 계속 유지하는 편입니다. 그만의 장점이 있으니까요.

캐릭터 제작을 시작하기 위해 보통은 컨셉이나 게임 에셋을 넘겨 받아서 참고로 활용하게 됩니다. 대부분 그 에셋이 작업 중인 것이거나 완성된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요. 거기서 출발하여 XSI에서 베이스를 만들고 모든 폴리 모델이 정돈 및 언랩(Unwrap)되도록 합니다. 다음은 스컬팅을 위해 ZBrush로 갑니다. ZBrush에서 텍스처링을 위해 Max로 가고, 모든 기술적인 과정을 거쳐서 리깅(rigging)을 준비합니다. 최종 렌더링에는 V-Ray를 씁니다. 지난 몇 년간 멘탈레이에서 V-Ray로 넘어 오게 되었고 대부분의 파트에서 부드럽게 이전되었습니다. 저는 비록 스킨 쉐이더는 아직 익숙하지 않지만 저는 V-Ray를 좋아합니다. 사실 멘탈레이의 스킨이 아직도 그립습니다. 그래도 카오스 그룹 사람들은 아주 대응을 잘 해주어서 지원을 잘 받고 있습니다.

“나는 다수의 프로그램을 쓰고 있고 이 프로그램들 사이의 상호 작용이 실망스러울 때도 있다.”

일반적으로 이것이 저의 작업흐름입니다. 거의 정주행에 가깝습니다. 가끔 불안정한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잘 되는 편입니다. 가능하면 새로운 것을 자주 시도해 봅니다. DC 유니버스에서 이 과정을 약간 바꾸어서 모델링 과정에서 ZBrush를 좀 더 일찍 투입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사이보그는 거의 ZBrush에서 기본 모델을 다 만들었고 나중에 Max에서 다시 토폴로자이징(topologizing) 했습니다. 이 캐릭터에는 이 방식이 매우 편리했습니다. 장갑 부분의 스컬팅 컨셉을 아주 빠르고 효과적으로 잡을 수 있었습니다. 혹시 관심이 있는 사람이 있을까봐 ZBrush Central에 이 과정을 올려놓기도 했습니다.

오늘날의 소프트웨어에서 무언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이 있나요? 아니면 특정 영역에서 작업의 어려움을 해소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이 있나요?
(소프트웨어만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저는 다수의 프로그램을 쓰고 있고 이 프로그램들 사이의 상호 작용이 실망스러울 때도 있습니다. 프로그램을 더 많이 오고 갈수록 틀을 깨는 것을 만들 기회가 더 많습니다. 말할 필요도 없이 그런 파일을 꺼내고 넣는 것은 시간이 많이 듭니다. ZBrush가 이 과정을 Goz로 통합시킨 것은 올바른 방향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모든 것에 적용하기는 힘듭니다. 모든 것이 하나의 패키지로 들어가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현재 XSI와 Max의 조합으로 일을 하고 있는데, 이 둘이 OBJ를 통한 것 말고 서로 호환이 가능했으면 좋겠습니다. FBX 포맷이 있지만 아까 말했듯이 항상 잘 작동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처럼 OBJ말고 메시에 쓸 수 있는 더 좋은 스탠다드 파일 포맷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단지 메시와 UV 좌표만이 아닌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었으면 합니다. 채널에 걸친 복수의 UV셋과 더 나은 텍스처 정보(.mtl보다 많이)를 유지 시킬 수 있다면 좋을 겁니다. OBJ는 이제 정말 옛날 방식입니다. 모든 프로그램이 더 나은 파일 포맷을 채택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향후 10년 동안 자신의 모습을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그때 기술은 어느 정도로 발전하게 될까요?

와, 어려운 질문이네요. 그때도 멋진 작품을 만들고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경력에 대해 지나치게 생각하는 편은 아닙니다. 오히려 110%의 노력을 하고 매일 매일 스스로에게 시련을 부여하려고 합니다. 기술은, 누가 알겠어요? 한계가 없겠죠! 더 많은 것들의 경계가 사라지고 빨라졌으면 좋겠습니다. 언젠가 폴리곤 제한 없이 일할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네요. 아니면 이 모든 것을 통합하여 작업할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이 나오면 더 좋겠죠.
?


캐릭터를 만들 때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요?

솔직히 저는 캐릭터 제작에서의 모든 과정을 좋아합니다. 특히 모든 것이 하나로 되는 완성 과정에 가까울수록 보람이 있습니다. 모델링만큼이나 텍스처링도 좋아합니다. 그러니 이 둘이 하나로 합쳐져 최종 결과가 나왔을 때 정말 감동적입니다!

훌륭한 캐릭터 아티스트가 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할까요?

끊임없는 노력과 탄탄한 기초입니다! 겸손한 태도 또한 도움이 될 것입니다. 저는 일을 하면서 저만의 자부심을 내세우는 것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언제나 현실적이면서 작업에 집중하는 것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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